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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나에게 너무한다 싶은 순간이 오면 애가 나에게 너무한다 싶은 순간이 오면 그건 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번아웃이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잠과 체력이 부족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갑자기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이라면 꼭 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마음의 문제랴, 가능한 마음을 다잡고 달리 먹어보려하지만 잘 안될 때는 스스로에게 자책하지 말고 인정해야 한다. 평소같은 옹알이도 견디지 못하고 소음으로 느껴질 때는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한다. 부모의 편안한 마음 상태가 매우 중요하다. 더보기
연말정산 때문에 집앞 지점에 갔다가 팬을 만났다 뻘쭘하게 은행 직원 공간 뒷쪽 구석에 스캔피씨 쓰고 연말정산 서류를 인사부에 전달해주십사 근처 있던 직원에게 행낭 봉투를 건넸다. 첨에 쭈그리고 컴퓨터 쓸때는 이상하게 쳐다보던 직원이 봉투에 쓰여진 내 이름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어머 윤** 과장님이세요?” 라며 말을 걸었다. 나의 지난 역사인 외센과 충정로도 알고 있는 이아이는 자기 신입 때 내가 강의 연수도 하러 왔단다. 나는 모를 테지만 자기는 안다고. 휴직은 언제했냐 첫째냐 둘째냐 묻는 것이 어색했지만 사실 좀 반가웠다. 들어갈 땐, 업무적으로 이름만 알고 있던 한 차장님한테 "저 아시죠?"하고 사원증 들이밀고선 반응이 시큰둥하여 뻘쭘했는데 나올 땐 조금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나왔다. 아주 조금 아주 조오금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더보기
태도에 관하여 워낙 유명한 책이어서 기대했는데 나쁘진 않지만 백퍼 와닿지는 못한 느낌이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허지웅이나 정문정의 글이 더 기억에 남는 걸 보니. (물론 정문정도 몇편의 글 이상의 감동을 에세이 집 전체에서 전달해주진 못했지만) 그러고 보면 나는 조금 더 엄격한 문체를 선호하는 것 같다. 이동진의 '기생충' 영화평과 같은 밀도있는 단어의 조합. 그러나 이 책이 꽤 오래전 책인데(2015년작) 최근에 이런 류의 자기 위안 힐링에세이를 너무 많이 봐서 그저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당시에 이렇게 솔직하게 '나'와 '관계'를 돌아보는 책이라면 당연히 주목받았을 것 같네. 에세이도 가끔 보면 마음이 말랑해지고 좋은 것 같다. 소설과는 다른 일상 문장의 향연들에 눈이 즐겁다. 좋은 에세이를 추천받아 .. 더보기
쉽게 설득 당할지라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지인에게 선물을 하려고 덴마크산 꽃병을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직구를 하기엔 일정이 촉박하여 3일이면 배송해준다는 국내 공식 판매처를 찾아 회원가입까지 하고 주문했다. 며칠 후 박스로 배달되어 온 걸 뜯어보았는데 이런, 화병 박스가 구겨지고 더럽혀진 것은 물론이고 새것이라 하기엔 택도 없고 지문도 덕지덕지 묻어 좀 중고 같은 느낌? 근데 이것이 그릇을 판매하는, 특히 상품 검수차 여러 번 박스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그런 것들의 특징인지 (브랜드 있는 그릇가게에서 포장해줄 때 상상을 해보면 그렇다) 고민이 됐다. 그렇지만 오프라인에서 여러 사람 손 닿은 상품조차도 정품 스티커는 딱 붙어있는 편인데, 이건 새 상품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인 1센치가량의 스티커마저 떼었다 붙여낸 흔적이 있는 것이다. 선물용.. 더보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깁초엽 먼저 작가에게 사과해야겠다. 책 제목이 좀 만화적인 느낌이라, 책 표지가 너무 샤방샤방하고 핑쿠핑쿠해서, 그리고 마지막에 붙은 그녀의 이름까지 특이하고 트렌디한 느낌이라, ‘귀여니’가 등단했을 때 같은 오해를 했지 뭐냐. 포항공대 석사님에게 이 무슨 실례를. ​ 일단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수록작 중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인 '관내분실'을 읽어보았다. ​ SF는 독자(인 내)가 잘 모르는 기술분야를 소재로 하여 신선함을 갖는다. 그리고 (나는 모르지만) 기술자들은 알고 있는 현재에도 충분히 구현 가능한 현실의 모습과 조금 더 나아간 상상의 모습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물론 나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할 수 없을만큼 과학 문외한이라 더욱 .. 더보기
공부란 무엇인가 - 김영민 이정도 거창한 제목을 달게 된 이유는 저자가 예전에 ‘추석이란 무엇인가’ 라는 칼럼으로 히트를 친 이력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 칼럼 나도 읽어봤는데, 명절을 앞두고 가족간 싸움을 줄이기 위해 명랑하게 주위환기를 시키는 내용이었다. 요새는 그런 기사를 철마다 보아서 신선할 법도 별로 없지만 그땐 그 칼럼이 나름 힛트작이었겠다. 교보에서 둘러보다가 강렬한 제목에 눈길을 빼앗기고 한번 들춰본 목차에서 흥미가 당겼던 책. 소제목들은 재미있겠고 문체는 유머러스하였다 (이번 책은 유머가 다소 과했다고 평하는 팬들도 있던데 공감한다) 지적 흥미에 관한 책들은 늘 구미가 당기는데 그것이 나의 결핍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대학생 때 보았으면 더 좋았으련만. 대내외적으로 공식적 글쓰기가 필요했던 당시보다 오.. 더보기
비뚤어진 자유론 (중략) “노동자에게 일할 자유”를 말하며 주 52시간 근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의 시간을 빼앗는 착취를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 둔갑시킨다. 누군가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조건에서도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언급하며 최저임금이 높아서 고용이 안 되는 것처럼 말했다. 물론 사람이 너무 절박하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뭐라도 할 수밖에 없다. 그 절박함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에서만이 아니라 신체를 변형시키고 심지어는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일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것이 개인의 ‘선택’인가. 이것이 일할 ‘의사’인가. 저소득 계층을 그렇게밖에 살아갈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면서 마치 개인의 주체적 선택인 양 호도한다. 이런 말들은 선택의 자유가 없는 사람들의 현실을 개인.. 더보기
아껴주세요 무릎에 누워 우유를 받아먹는 아기를 보고있자니 아기는 정말 한없이 작고 연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왜 결핍의 어른들이 이런 작은 아이에게 학대를 하는 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아이들은 작고 약하다.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면 맞받을 수 없는 게 아이들의 힘이고. 정신적으로도 어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어 두려움과 간절함으로 공포에 질린 눈이 그렇다. 어떤 이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책임감이 무한대로 증폭되어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런 마음이 드는데 어떤 이에게는 그게 자신의 권력과 존재감이 무한대로 증폭되어 무엇이라도 된 듯한 느낌을 겪는 것이 아닐까. 현실에서 눌린 존재일수록 아기와의 세계에서는 군림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는 요새 부쩍 아기와 아이들.. 더보기
유모차는 장갑과 함께 몇일동안 뿌옇던 미세먼지가 걷히고 한파가 찾아온 날, 오랜만에 보는 흰 구름에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남편은 출근한 주간 근무날, 여유있는 산책을 나갈 계획을 꾸렸다. 날씨가 추워 걱정이 될만도 했지만, 언젠가 제대로 겨울맞이 산책을 해봐야겠다고 한 것이 바로 오늘 그날이다. 오후 세시. 먹고 싸기를 마친 아기 컨디션은 최상. 유모차와 함께 물려 받은 풋머프란 물건을 유모차에 처음 장착해보았다. 방풍커버는 없지만 방한복을 방불케하는 이정도 두터운 겉옷이면 이 날씨에도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샘솟았다. 비닐 안에 꽁꽁 싸매고 다니는 다른 유모차가 늘 답답해 보이기도 했고. 두꺼운 내복과 양말을 챙겨입히고 아기 몸을 풋머프에 끼워보았다. 전에 사둔 파일럿 모자를 씌우고 마스크와 손수건으로 볼도 가려주니 .. 더보기
백일 아기에게 의지하는 엄마라니요 남편이 분리수면을 시작하는게 어떤지 물었다. 혼자서 아기침대에서 잘 잠드는 우리 아기는 꽤 높은 확률로 ‘따로 자기’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기와 우리 부부의 수면 질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머릿속으로 계산이 끝났음에도 난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이유인즉 4일에 한번씩 돌아오는 남편의 야간출근날에 현재 아기와 한 침대(어른침대)에서 나란히 자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그날도 평소처럼 아기침대에서 재우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그렇게 하기가 싫었다. 난 임신 전, 임신 중에도 ‘혼자자기’를 썩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다 아기가 태어나자 남편이 없는날 내가 아기를 한 침대에 끼고 자기 시작하면서 큰 만족감을 느꼈다. 물론 아.. 더보기
공부와 창의성 그 자신이 과학자인 동시에 과학소설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창의적인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창의성에 대한 글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별로 상관 없어 보이는 두 생각을 연결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의 생각이 아니라 두 개의 생각, 즉 복수의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서 생각을 하나만 해서는 창의적이 될 수 없다. 여러가지 잡다한 생각을 해야 한다. 잡념이 많은 인간은 일단 창의적이 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춘 셈이다. 생각 자체가 아예 많지 않다면 일단 경험을 확대 해야 한다. 인간은 대개 대상이 있어야 비로소 생각한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 할 수 있는 여행이나 독서가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 더보기
아기랑 좋은 시간 보내 "아기랑 좋은 시간 보내" 가끔 이 말이 실감이 난다. 한 때 많이들 했던 '행복하자'라는 말처럼. 의식하지 않으면 이 시간이 좋은 시간인지 모르고 그저 흘러가게 둬버릴 것 같다. 나중에 돌아보면 좋았는데 왜 더 즐기지 못했나 했겠지. 오늘 아침은 일곱시쯤 일어나 세수를 하고 수유를 하면서 엄마아빠에게 안부문자를 했다. 일어나 목이 말라 어제 한시간 끓여 식혀둔 상황버섯물을 한 잔 마셨는데 나와 아기의 면역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아빠가 강화도 야생에서 캐 가져다준 귀한 것이다. 바로 끓일 수 있게 유리냄비까지 대령해다 주셨는데 나는 고작 불만 켜면 되는 것을 귀찮다며 미뤄뒀었다. 요며칠 날씨가 춥고 건조해져 서랍 깊히 박아둔 냄비와 말린 버섯을 꺼내어 물을 끓였다. 구수한 버섯냄새가 온 집에 가득하다... 더보기
크라우드웍스 탐방기 세상 만물의 관심과 재테크로 24시간이 모자른 킴밍 덕에 알게된 크라우드웍스. 6개월 미만 아기의 눈동자를 찍는 영상 작업을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다. 포인트도 꽤 많고 현금전환도 가능하니 꽤 쏠쏠한 제안이다. 임신출산과정에 개인정보와 맞바꾸는 무료샘플과 행사에 하고싶은 맘과 싫은 맘 반반이 뒤섞여 늘 죽도밥도 안되었던 나. 근데 이건 개인정보라기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수집하는 회사니 초상권 문제는 없을 것 같고. 합리화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중에 인공지능이 활성화된 시대에 평균이상으로 매칭률이 높은 눈동자형, 얼굴형, 표정형 원판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 ㅎㅎ 진행절차를 위해서 크라우드웍스에 가입하고 프로필도 작성하고 폼도 제출하고 이것저것 사이트를 둘러보며 구경을 하였는데, AI를 위한 기본 데.. 더보기
백일상 이야기 돌아보니 아기 백일 잔치를 준비하며 예상 외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대단한 처음보는 손님이 오는 것도 아니고 흔히들 불편해하는 시댁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심지어 백일 사진은 스튜디오를 예약해 놓아서 집에 차리는 백일상은 약식이었는데. 일단 내가 이런 행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해 본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기 때문인 것 같다. 회사가 바쁘다는 이유로, 철부지 둘째라는 이유로, 오래된 연인이자 꽁냥거리는 기념일은 오그라든다는 이유로, 자칭 스타일이 형식파괴적이라는 이유로, '본 행사'의 무게를 제대로 감당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한 아이의 엄마의 입장이 되어 온전히 아이를 키우도록 시간이 주어졌고 그 아이의 처음 맞는 기념일로써 백일을 준비하게 되니 더는 빠져나갈 구실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 더보기
달리기 두번째 이야기 작심삼회가 아니라 작심일회였다. 거창하게 글까지 써놓고서는 두번째 달리기는 한달하고도 오일만에 이뤄졌다. 게으른 나를 반성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뛰었는데도, 그저 20여분 투자한 그 시간에 대한 소감을 또 한번 거창하게 밝히는 포스팅이다. 뛰고 오니 놀랍게도 기분이 무척 심플해진다. 주변의 몇가지 묵혀둔 걸 자신있게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살까말까 할까말까 고민되는 것들? 정리하는 것? 연락하는 것? 그냥 하면 된다. 혹은 하지 않기로 하던가. 깔끔하게 어두운 방에 박혀 고민하고 주저하는 시간에 뭐든 시작하고 지속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몸의 세포가 깨어 그런지 활력이 생겨 그런지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땀 흘린 후 개운함 때문인가. 나처럼 생각만 복잡한 걱정인.. 더보기
아기 앞에서 춤을 추었다 계절이 바뀌어 옷장정리를 하다가 미국에 여행갔을 때 샀던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글씨가 샛노랑색이라 알록달록해보여 그런지 아기가 내가 입은 티셔츠를 유심히 바라 보았다.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비치에서 산 기념 티셔츠. 정면엔 서핑하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정확히 무엇이 써있는지 몰랐던 나 역시 고개를 내려 읽어 보았고 핸드폰을 열어 정해진 운명처럼 Surfin USA를 틀었다. 그리고 아기 앞에서 춤을 추었다. 처음엔 내 몸짓에 반응하는 아기가 귀여워서 팔을 조금 흔드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 노래가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어느새 거의 막춤에 가까워졌다. 아기 가재 손수건을 깃발처럼 한손에 들고 저녁무렵 어두워진 거실 한가운데서 온몸으로 춤을 추었다. 비치보이즈와 비틀즈 척베리 듀란듀란의 음악에 춤을 추었.. 더보기
아기는 엄마의 미안함으로 키운다 오늘로 아기는 90일이 되었다. 부쩍 이 아이가 사랑스럽다. 아기는 이제 피부에 동전 습진 같은게 생기거나 눈물샘이 확연하게 안터지거나 뒤통수가 균형이 안맞는 등 조금씩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나는 이 친구를 더 관찰하고 아끼고 그리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갓 태어난 상태의 아기에게 나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그 당시의 난 아기란 완전무결의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이 생각도 지금 돌이켜보면 옳지 않았다. 아기는 아무리 예정일을 채웠어도 모든 장기의 성숙을 다 갖추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며, 태어날 때 문제가 없었어도 어떤 장기들은 단지 신생아라는 이유로 쉽게 이상을 보이고 특별한 조치 없이 단지 월령을 채우는 것만으로도 .. 더보기
날 닮아 잘 자요 가끔 아는 언니 동생들이 연락와서 아기는 잘 기르고 있냐고 묻는다. 한 언니는 그 시절의 자기는 거의 좀비였다고 했고, 또 한 친구는 2년이 넘도록 새벽에 두세시간마다 깼다고 했다. 기적이 온다는 백일까지는 잘자고 잘먹으면 그것으로 백점짜리 아기라고. 그때마다 난 '아기가 날 닮아 그런가 잘 잔다'고 대답하곤 했다. 우리 아기는 신생아시절이 갓지난 한 45일 무렵, 그러니까 9월 들어선 첫 날 밤잠 8시간을 기록했다. 그날 새벽에는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미동없이 잠자는 아기의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대보았지. 그날을 기점으로 하루가 다르게 시간이 길어졌다. 어느날은 6시간 5시간 7시간. 불규칙 했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초반엔 10시 가까이 되어 재우다가, 재우는 시간이 8시쯤으로 좀 일러지.. 더보기
우는 인간 제3의 인물은 과연 어떤 인간으로 자라날 것인가. 아직은 그 어떤 다른 수식어를 붙일 수도 없이 그저 우는 인간이다. 누가 내 애는 울지도 않을 것 같다고 했나. 임신 중 우리 부부조차도 우리 애는 얌전하겠지? 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왜죠? 누가 뭐래도 아기는 운다. 밑도 끝도 없이 우는 생명체에 대처한 경험이 난 별로 없다. 1. 신생아의 울음은 몇 안되는 상황밖에 없다고 했다.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젖었거나, 졸리거나, 지겹거나, 너무 산만하거나 명확한 알고리즘이 있으니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이다. 다섯가지 조건을 하나하나 점검하면 답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답은 늘 쉽지만은 않다. 2. 임신 전에 식당 같은 데서 엄마가 애를 울리면, 남편은 한 번씩 꼭 돌아보곤 했다. 징징.. 더보기
일기는 집어치우고 새벽에 일어난 아기 때문에 눈을 떴다. 동이 트고 있었다. 고운 푸른 빛을 띤 아침의 하늘이 사랑스러웠다. 창문에 바싹 붙으니 왼쪽 건물 끄트머리로 해가 낼롬 보였다. 앞동 아파트 때문에 가려서 온전히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이 예쁜 날씨를 즐기는 방법은 밖에 나가는 것이다. 요새 주변 몇 지인들처럼 달리기를 하고 싶다고 , 지금같이 좋은 날 새벽공기 맞으며 아침달리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소파에 누워 일기를 줄줄 쓰다가 집어 치우고 그래 그냥 나도 뛰러 나가보기로 했다. 남편도 아기도 자고 있었다. 산책 좀 다녀오겠다고 문자를 남겨두었다. 런데이 앱을 받으며 반팔 티와 긴 레깅스를 챙겨입었다.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충전해둔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생각이 복잡할수록 발을 못 떼고 이것저것 걸리는 법.. 더보기
완벽한 새벽 오늘 아기는 새벽 4시반에 깼다. 야간 출근한 남편은 오늘 당직이라 밤을 새고 새벽 5시에 일찍 퇴근하기로 했다. 수유를 마치고 나니 5시가 좀 넘었다. 아기를 토닥이며 다시 침대에 뉘였다. 몇 주전만 해도 5시가 좀 지나면 어슴푸레 밝아졌는데 해가 부쩍 짧아졌다. 아직 컴컴한 실내에서 거실 스탠드를 끌까말까 망설였다. 곧 해가 뜰 것이다. 등록된 차량이 주차장에 들어왔다는 멘트가 월패드에서 조그맣게 들렸다. 리모콘을 들어 TV를 켰다. 오늘은 US OPEN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다. 오늘 조코비치의 캘린더 그랜드슬램이 결정될 것이다. 일년에 네번 열리는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그는 올해 세 경기를 모두 이기고 마지막 한 대회 결승만 남겨놓았다. 누가 이겨도 기록적인 우승이고 누가 이길지 예상되지 않을만큼 .. 더보기
없던 모성애가 생기는 것 까진 아니지만 친한 친구가 연락이 와서 아이 키우는 건 어떻냐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아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은근히 좀 감동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팔 안쪽으로 머리를 실어 품 안에 안아주려 할 때 보이는 표정이나, 품에 안겨 노래를 불러주면 무장해제하고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나.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건 아무래도 수유시간이다. 배가 고파서 신경이 곤두 서서 마구 우는 와중에도 수유를 하려고 품에 가까이 안으면 본능적으로 입을 오물거리며 먹을 것을 위해 집중하는 그 모습. 나만이 아기가 원하는 것을 가진 유일한 자로서 기꺼이 젖을 물려줄 때. 그 입으로 허겁지겁 가져가 곧 만족스러운 듯 빨아먹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이 작은 일이 그 친구에겐 세상의 전부인 일이라고 하니 그게 좀 감동적인 것 같다. .. 더보기
수유의 역습 그러게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할때 귀담아 들을 것이지 백일천하를 낭낭하게 누리다가 출산 직후 급습을 당한 기분이었다. 임신 1일차부터 280일차까지 쭈욱 마라톤 달리기를 하다가 열달만에 결승점을 마지막 피치를 올려 전속력으로(진통끝에) 통과했으면 이제 좀 누워서 쉬게 해줘야지. 방금전에 결승 통과했는데 헉헉거리고 앉아있는 애한테 이제 허들 경기 하러 갈까? 몸좀 풀래? 하는 기분. 제왕절개 수술한 당일날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전동베드의 도움으로 겨우 상반신만 일으켜 세운 다음날 오전, 신생아실 간호사가 와서 안내를 했다. "내일 오전 11시에 첫 수유하러 4층 수유실로 오세요." "네? 지금 걸을 수도 없는데 내일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컨디션 봐서 해도 되죠?" 간호사는 "뭐 이런 애가 다 .. 더보기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는 것이 확실하다 예전에 난 아기를 볼 일이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작은 신생아는 거의 처음 보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니 이전의 내가 아기에 대해서 뭔가 말했었다면 다 모르고 한 말임이 분명하다. 며칠째 아기와 가까이 지내다보니 아기를 점점 더 사랑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왜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천사같다 하는지, 아이는 선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배가 고프거나 졸리거나 안아줄 엄마를 찾는 것 말고는 다른 욕망이 없는 아기는 순수함과 심플함 그 자체다. 세상에 순수한 인간을 만날 일이 잘 없는 내 나이쯤 된 사람이 그런 순수함을 목격하는 일은 감동적인 일이다. 사람이 태어날때부터 선하니 악하니 이야기들 하지만 막상 태어난 아기를 직접 이리 보자니, 이 아이가 무슨 다른 뜻이 있어 악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