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Book

퀴즈쇼


"인생의 큰 시험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어"
계속 알 수없는 소리였다.
"기회는 신선한 음식같은 거야.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이 떨어져. 젊은이에게 제일 나쁜 건 아예 판단을 내리지 않는 거야. 차라리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게 더 나아. 잘못된 판단을 내릴까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 이게 제일 나빠."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퀴즈를 계속 주고받다보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퀴즈방 밖 세상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조금은 재수 없는 자아도취 성향을 서로 눈감아주는 데에서 오는 은밀한 해방감도 있었다.
말하자면 퀴즈방에서는 어느정도 잘난척을 해도 제지나 지탄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적절한 매너만 뒷받침한다면 얼마간의 자기 과시는 용인되었다.



퀴즈쇼 중에서 -


 
#
게으름의 다른 이름일지 모르는 치열하지 않은 삶의 태도
지적(이다못해 현학적)인 사고를 주고받는 쓰잘데기 없는 유희
부질없고 부박한 세상에 대한 필요 이상의 냉소
묘하게 나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굳이 연남동의 단독주택과,
서교호텔 뒤 감자탕집,
산울림소극장옆 다리,
세브란스와 서강대교,
홍대 정문앞 커피빈을 들먹이지 않아도
 



#
사지 멀쩡한 신체,
스물일곱쯤의 나이,
사년제 대학을 나와 인문학과 역사철학과 예술의 복잡 다단한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퀴즈와 같은 단순한 승패에 열광하며,
쓸쓸한 독방에서 갑작스럽게 친구를 잃은 경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글쓴이가 삼은 모델에게 놀랍도록 가까운 나를 볼 수 있었다.  


#
20대가 겪어내는 정신적 성숙, 삶의 장면장면들이 이야기 각 페이지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가족과 가까운 사람의 죽음.
한정상속 연봉과 같은 사회의 물질에 대한 생소하지만 필연적인 대면,
내 모든 걸 걸고 맞장뜨는 운명의 퀴즈쇼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조바심과 지옥같은 고뇌와 제어 안되는 폭주,
끝도없는 자기비하와 근거없는 자신감의 끝없는 반복



모든 것이 20대의 전유물.
지금 내가 , 내 옆의 친구가, 모든 20대들이 고민하는 아직 말랑말랑한 찰흙같은 삶
너무 복잡해서 풀어낼 수 없는 엉켜진 실같은 머릿속이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미성숙하고 유치한
오히려 단순한 리비도로 설명되는 삶의 동력.


#
그동안 나에게 소설을 읽는 재미 중 일순위는 흥미 있는 스토리 전개였는데, 짧은 글이라도 매일 조금씩 끄적거리기 시작하면서 재미있고 독창적인 표현과, 두루뭉술한 감정을 짚어내는 정확한 묘사, 처음보는 단어의 알아감에 대한 즐거움을 깨닫고 있다. 이래서 책을 봐야 어휘력이 늘어간다고 했구나. 스물여덟에 이걸 느끼는 난 뭐지?

#
400여페이지가 되는 소설을 간만에 몰입해서 후루룩 읽고 나서 마지막 문장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바로 다음장, '복도훈' 문학평론가가 쓴 서너줄되는 짧은 평론을 봤다.

‘삶의 자본화’ 또는 ‘삶의 생존전략화’라고 총칭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젊음의 고단한 세상살이에 대한 김영하식의 답변이자 뛰어난 성장소설인 ‘퀴즈쇼’에서 형상화된 젊음에게 모험이란 그 답의 정오에 따라 생존의 당락이 결정되는 퀴즈쇼로, 자기 형성의 교양은 퀴즈쇼를 위해 마련된 무질서하고도 단편적인 정보의 집적으로 코드화된다.

아 끝내주는 한문장 요약이다. 이런 사람이 문학평론가 하는구나 난 더이상 할말 없다.  끝 -


퀴즈쇼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영하 (문학동네, 2007년)
상세보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