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호한 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애
"왜 한쪽에서는 음식이 남아돌아 음식쓰레기를 처치하느라 곤란을 겪는데 다른쪽에서는 식량부족으로 고통당할까? 한쪽에서 남는 음식을 다른쪽에 퍼다주면 될텐데..평소 정치나 시사문제에 특별히 관심이 많지 않던 나는 그냥 후원자들이 더 많아지면 상황이 개선되겠지하고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
옮긴이의 말은 정확하게 내 생각과 똑같았다.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로 인해 구호조치가 무색해지는 현실
구호조직의 활동상과 그 딜레마
소는 배불리 먹는데도 오히려 사람은 굶는 현실
사막화와 식민지정책(단일경작)의 상흔
경제합리성만을 외치는 금융과두지배
이들중에 내가 알고 있던 문제는 거의 없었다. 지원을 효율화 하고 원조보다는 개혁을 앞서하며, 인프라를 정비해야한다는 저자의 해결제시는 오히려 친숙했다. 책을 읽는 독자에게 필요한 건 저 문제에 대한 이해 수준도 아니다. 그저 '접함'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관심이 아니라, 인식이다.
# 멜서스의 자연도태설
서구의 부자나라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이것은 정말 가혹한 신화가 아닐 수 없어.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이 기아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그러니까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고 보는 거야.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소비하고 활동하다 보면 지구는 점차 질식사의 길을 걷게 될텐데.기근으로 인해 인구가 적당하게 조절되고 있다는 얘기지.
얼핏보면 먹고 살 길도 없으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하면 그건 무모한 짓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근거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이 책에서 언급되는 기근에 시달리는 수 많은 농가의 가족들이 자신들이 먹고살만큼의 식량을 충분히 농사로 짓고 있음에도, 부당한 세금과 폭력적인 군벌과 비정상적인 국가의 수출정책에 그 식량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 권리, 발언의 권리, 종교의 권리 같은 현대사회의 모든 중요한 권리에 앞서, 먹을 권리를 찾는 것은 얼마나 절박한 일인가. 내가 태어난 나라가 복지사회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그같은 상황을 그저 '도태'라고 부를 수 있을까?
# 북한
세계의 최빈국 시에라리온을 비롯해 소말리아, 부르키나파소, 인도의 극심한 기아문제를 이야기하던 작가가 연달아 북한을 언급했을때, 예상하지 못한바는 아니었으나 적잖은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다. 이 책을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독자들이 읽을 텐데 그 독자들에게 S.Korea는 N.Korea와 한데 묶여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심각한 기아 문제에 대해서 기본 의식을 갖추고 적극적 활동을 모색하자'는 이 책의 취지에 조금은 턱이 높아진 채 있던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남보고 이렇게 저렇게 행동해라 할 수 있는가 돌아봤을때 낯이 부끄러웠다고 할까.
# 신 자유주의에 대한 비난
2010년 최대의 화두 '정의는 무엇인가' 에서 빨갱이 논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 그게 놀라웠었다는 네이트온 베플을 본 적이 있다. 정의를 논하는 마이클센델은 분배중심 공동체주의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저자 장 지글러 역시 분배중심 공동체주의자에 상당히 근접해 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민영화, 규제철폐, 거시 경제 안정, 예산 감축을 골자로 한 워싱턴 합의에 대해 비난하며, 신 자유주의와 폭력적인 거대금융자본에 대한 직접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청개구리같은 나는 이상하게도 강한 어조에 반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의 논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자유주의와 세계 기아는 상당부분 '정'의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일방의 의견만을 듣는 것은 균형적인 태도는 아닐테니, 약간의 거부감을 적절한 긴장감으로 승화시킨 채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
# 한 사람을 살리는 문제
기아원조 가운데 반절을 군부와 경찰이 가로채고 있는 상황에서 원조는 오히려 전쟁을 연장시키고, 살인자들을 배불리고 있다. 원조를 계속하는 건 옳은 걸까? 장 지글러는 구호단체는 극단적인 조건에서 활동하고, 갖가지 모순들과 싸우지만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는 없다. 단 한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현재의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할 것인가. 우리가 원조를 통해 지속시킨,그 비뚤어진 사회구조속에서 계속 양산될 수많은 생명, 그리고 그 사회가 일으킬 수 있는 전쟁속에 노출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지금은 그 한 아이의 목숨을 희생할 것인가.
정답이라는 건 애초에 없다. 그저 자기가 믿는 방식대로 행동하고 움직일 뿐이다. 중요한 건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이 낳을 수 있는 오류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변화에 희망이 있다.
# 은행 도서관에서 이 책을 포함하여 3권의 책을 빌렸다. 난 여러 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읽는 편이라 3권 다 적당히 들춰보고 반정도씩 읽고 있던 중이었다. 대출상황을 계속 살펴봤는데 빌린 지 한달이 다 되도록 셋다 다음 예약자가 없어서 연장에 연장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이 책만 갑자기 예약이 4명이 걸렸다.아 이건 갑자기 무슨 일이람,. 반납해야겠네..
그날 저녁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난 그 이유를 찾았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을 보던 중이었는데 하지원이 청소기를 반납하러 현빈에게 오토바이를 타고 찾아온 바로 그 씬에서 정확하게 그 책을 발견했다. 자기 집 정원에 앉아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던 현빈. 교양있는 현빈씨, 친절하게 책 표지까지 들어서 보여주던데? 왠지 기분이 좋아서 나머지 반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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