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7-8
춘천 이상원 미술관 뮤지엄 스테이
번개같이 여행을 기획하여 보름만에 떠났다. 날이 따뜻해지고 휴직 1년이 가까워지자 마음이 요동친 탓이다. 빨리 흘러가는 시간 탓은 그만하고 부지런히 누려보기로 했다. 엄마아빠는 아주 흔쾌히 여행에 참여하셨다.
차를 각각 타고갈지, 한 차로 같이 갈지 고민하다가 결국 작은 우리 차에 모두들 구겨져서 함께 가기로 했다. 역시 여행은 한 차에서 쿵짝쿵짝하는 그런 맛 아닙니까. 유모차 실었더니 트렁크는 꽉 차고 짐은 좌석 발 밑까지 그득그득한 소형 해치백에서 가장 좋은 일등석은 등받이 조절 되고 여유공간이 넘치는 좌석인 카시트가 분명해 보였다.
점심에 만나 집에서 다같이 짜장면을 시켜먹고 커피도 테익아웃하여 여행기분 한껏 내고 왔더니 오후 5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관리동에서 체크인을 하며 물으니 5시 반까지 미술관 입장이라길래 숙소에 짐만 놓고 10분 남은 사이에 싹 준비해서 미술관 먼저 들렀다.
이번에 들른 이상원 미술관 뮤지엄 스테이는 우리 둘이 재작년에도 들렀던 곳이다. 고요하고 맑은 계곡이 흐르는 화악산 중턱에 미술관과 숙소가 함께 있는 곳. 깨끗하고 잘 관리된 침구와 숙소, 미술관 스테이답게 기품있는 독특한 인테리어가 훌륭한 곳이다. 미술관 관람도 포함이고 디너와 조식 레스토랑이 적당히 만족스러운 것도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에 적합할 것 같았다.
평일이기도 하고 폐관 시간이 다 되기도 해서 미술관 건물 전체에 관람객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아주 큰 규모도 아니고 해서 천천히 둘러보아도 충분했다.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 밖으로 나와 조성된 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이곳 기념물인 청사과 앞에서 일단 사진 한장 찍고
내친김에 타이머로 셀카도 도전해보았는데 쭈글이 같아 보이는 건 왜죠? 😅
숙소는 테라스 B. 거실이 좀 작긴 했지만 방이 두개로 나눠져 있어서 부모님과 함께 묵기에 좋았다.
7시에 예약해 둔 레스토랑을 찾았다. 관리동 5층에 자리한 식당. 아기는 하이체어에 앉히고 우리 넷은 코스 맞이 준비를 했다.
아기에게 처음엔 치발기를 쥐어주니 비교적 얌전했지만 갈수록 지겨웠는지 쥐는 물건마다 바닥에 내팽개치는 통에 조마조마했다. 식사는 단품으로 시킨 메뉴와 코스 메뉴가 이것저것 섞어 나오는데다 양과 가짓수도 적지 않아서 부랴부랴 먹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아기와 첫 식당 경험 치고는 이정도면 선방.
그래도 여유를 가지며 먹어야 하는 디너가 살짝 부산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부모님께 나름 대접해드리고 싶었는데 그런 걸 느낄 새가 있으셨을지 좀 아쉬웠지만 배부르게 먹고 적당한 때 마무리 되어서 나쁘지는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아기 재롱을 얼마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졸려한다. 아기는 재우고 남은 가족은 와인 두병(?)을 기울이며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엔 다들 좀 피곤했는지 늘어져있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쉬우니 레드와인이나 한병 간단히 먹읍시다” 하고 시작한 것이 결국 화이트와인도 마저 따서 잘 먹었다.
아침 일찍 6시에 일어나 화악산에 올라갔다온 아빠와 7시에 일어나 아침 기도를 마치고 산책을 다녀온 엄마.
우리는 8시에 겨우 일어나 아기 아침을 챙기려는데 두 분 다 숙소로 돌아오셨다.
숙박에 포함된 조식세트. 그나마 어제 왔다고 한결 적응된 듯한 아기와의 식사. 비록 조식플래터를 먹을 수 없는 아기이지만 내것만 다른 드레싱으로 (안 매운) 챙겨준 식당의 센스에 조금 감동.
식사를 마치고 뮤지엄 스테이 산책로를 한바퀴 돌아 들어왔다. 계곡물도 보고 공방도 구경하고 수영장도 둘러보았다. 날씨가 덥지 않게 적당히 따뜻하고 바람도 솔솔 불어 조용하게 산책하기에 완벽했다. 불과 2주 전 예약할 땐 날이 꽤 추웠었는데 자연은 정확하게 봄을 맞아들였다. 역시 이번 여행 날짜 선정은 기가 막혔다고 스스로 칭찬. 미술관 공원에 다시 올라갈까 하다가 이미 부모님 두분은 충분히 보신듯 하여 여유있게 짐 챙길 겸 생략.
산에 올라갔던 아빠가 팔뚝만한 길이의 수국 가지를 들고 오셨는데 저 마른가지로 삽목을 해서 뿌리내려 살 수 있다니 믿을 수 없을 지경이지만, 아마 몇달 뒤 강화도에 가면 보란듯이 펴 있겠지. 사진은 수국 가지 밑작업을 하느라 집중한 아빠와 신기한 지 지켜보는 아기
떠나기 전에 기념으로 셀카를 좀 찍어보았는데요. 이번 여행의 단체사진 컨셉은 아무래도 쭈구리인가 봅니다.
점심 먹으러 춘천 시내로 향했는데 아직 배도 좀 부르고 날씨도 좋고 하니 소양호 산책을 좀 해보기로 했다. 유모차를 끌고 한적한 소양강 댐 둑방길까지 휘적휘적 걸었다. 춘천은 아직 봉오리가 맺히기엔 조금 이른 날씨인지 꽃나무는 없어 아쉬웠지만 따뜻하고 맑아서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이어 찾은 곳은 아기와 함께 점심을 먹기위해 미리 찾아놓은 캠핑 컨셉의 닭갈비 가게. 잘 익은 숯불 닭갈비와 맥주 두병을 나눠먹고 늦지 않게 서울로 출발했다.
엄마아빠와 함께 놀러 온 건 6년 전 순천에 사촌오빠 결혼식 이후로 처음이다. 결혼 후에는 막상 이래저래 부담을 핑계로 많이 가지 못했으니.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엄청 대단하게 준비하고 그럴 것이 있나, 우리 좋고 부모님 좋으면 언제든지 가능한 것인데. 이렇게 보내는 짧은 시간들도 돌아보면 너무 소중한 꿈 같은 시간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조금 부산스러웠지만 식당에서도 배부르게 잘 먹고, 미술관도 틈내어 잘 보고, 가는 길 오는 길 차안에서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순서는 바뀌었지만 준비한 와인 두병을 잘 마시고, 이것저것 먹을 것도 잘 챙겨 먹고 좋았다. 아빠의 군대이야기, 정치와 교육 이야기, 나의 요리 이야기, 엄마의 커피 습관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아빠가 한 침대에서 주무시는 걸 오랜만에 보았고,건강에 대한 진지한 걱정도 나누었다. 부모님 두분 사진을 찍자고 하니, 아빠가 사진을 지울 때지 찍을때가 아니라는 농을 하셨는데 조금 슬펐다.
평소 아빠의 지론인 '알아서 해라'가 아니라 젊은 세대들에게 나중에라도 깨닫기 위해서 조언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며 달라진 아빠를 보았다. 경쟁 교육과 보수에 대한 의견,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아빠는 여전히 멋있고 설득적이고 논리적이었다.
갑자기 동했고 열심히 준비했고 금방 지나가서 돌아오니 더 아쉽고 허전했던 삼대의 일박이일. 앞으로 차곡차곡 더 많은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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