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Book

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

 

최근에 김영하님의 인스타를 팔로우하게 되었는데, 일상생활로 넘어온 작가의 글쓰기에 하루하루 감탄해 마지 않고 있다. 소설을 읽을 땐 잘 몰라서 짐작도 할 수 없는 경지였을테지. 이 책도 '여행기'이고 일상의 범주인지라 ,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사소한 일상 속 글쓰기에 계속해서 감탄하며 읽었다. 

요새 인스타에서도 (요리시간 15분 이하를 지향하는) 요리 이야기 많이 하시던데, 이 책에도 요리 이야기가 꽤 많이 나와서 신선했다. 마치 하루키가 재즈와 와인 이야기를 썼듯, 김영하님도 소설과 여행기 말고 미식에 관한 에세이 하나 쓰셨으면 좋겠다. 여행기는 그래도 꽤 대중화된 분야인데, 아직 요리에세이는 많지는 않은 듯 하여. 에세이 분야도 자기위안과 여행 이외의 분야로 조금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 그나저나 하루키는 유럽에서도 그리스에서 살더니 김영하님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머무시는 건, 역시 작가님들이라 대충 골라도 헤브라이즘인건가 싶다. (아님 운명적으로 끌리셨나 ㅎㅎㅎ) 

한편 이만큼 글을 쓸수 있어야 글로 먹고 사는구나 하는 감탄은 내게 곧 좌절감과 질투심을 동시에 주었다. 뭔가 잘하고 싶은 분야가 생겼는데 (순차적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 분야의 대가를 만나면 동기부여보다 자괴감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조금씩 따라 써보면서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사소한 일상에 끌고 들어오는 적확한 단어와 표현에 나는 쉬이 감탄했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표현을 고심하였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짐작이 갔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 글은 반드시 나아진다지만 그 과정이 얼만큼 지루할 것인지 알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읽어버리는 것이 작가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역시 최대한 되짚어 읽으면서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없겠다.   

 

#1

시칠리아의 와인은 싸고 훌륭하다. 대체로 5유로에서 7유로 사이의 와인들을 사다가 식사에 곁들여 먹었다. 술은 가능하면 언제나 그 지역의 것을 먹는다는 게 내 원칙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라는 책에서 하루키는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다’는 더 멋진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2

모두 자기 아파트를 설명하는 명함 크기의 광고지를 들고 있었다. 그 광고지는 하나같이 ‘발코니, 냉장고, 샤워, 부엌’을 강조하고 있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한 후,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발코니에서 맥주를 마시고 동네에서 사온 신선한 토마토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또한 그것은 다소 억지스럽지만, 세계가 물, 불, 흙 그리고 공기라는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리스 철학자(그러나 그는 지금의 그리스가 아닌 시칠리아의 아그리젠토에서 태어났다) 엠페도클레스의 학설을 연상시켰다. 샤워는 물, 부엌은 불, 발코니는 흙, 마지막으로 냉장고는 (차가운) 공기와 관련돼 있었다. 이 네 가지는 현대의 인간이 조금이라도 오래 어딘가에 머물고자 할 때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3

점심시간이 된 것이다. 햇볕은 뜨겁고 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나는 사람들이 사라진 한낮의 거리가 좋아 꼭 그 시간에 슈퍼마켓에 간다. 문득 이 거리가 알베르 카뮈가 『페스트』에서 묘사한 오랑의 거리처럼 보일 때가 있다. 지중해에 면한 알제리의 해안도시를 모델로 했을 오랑과 그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리파리의 거리는 어쩌면 그 기후나 풍토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뜨거운 태양,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네모진 건물들,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두가 다른 모두를 아는 도시에서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 그리고 바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지중해는 그들에게 희망과 열정 대신 막막한 고립감을 부여한다.

#4

“산 위에 뭐가 있어?”

글쎄, 산 위에는 뭐가 있었을까? 포도밭, 절벽, 바위들과 금잔화, 레몬이 열리는 나무와 농부들, 트랙터 같은 것들. 나는 그런 것들을 주절주절 이야기했고 카메라에 담아온 이미지들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풍경은 그대로 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와 맹장이나 발가락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런 풍경을 다시 보게 될 때, 우리 몸의 일부가 갑자기 격렬히 반응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십대의 나는, 자연이 만든 것보다 인간이 만든 것에 더 끌린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다녔다. (중략)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인은 아마도 내가 오만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연에 대해 품어야 할 마땅한 경외가 결여된 것은 그에게는 비윤리적이기까지 한 태도로 보였던 것 같다

#5

애절하고 한편 요란한 이별이었다. 나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들의 따뜻한 배웅에 문득 마음이 울컥하여 괜히 더 수선스럽게 떠들어댔다.

#6

팔레르모에서 A29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달리면 마치 애리조나 같은 미국 서부를 달리는 기분이 들 정도로 기괴한 풍경이 펼쳐진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않는 심란한 산들이 해변을 끼고 소심하게 돌아가는 고속도로를 내려다보고 있다. 너무 삭막하여 차라리 압도적인 이런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왜 한때 이탈리아의 감독들이 마카로니웨스턴이라는 장르에 탐닉했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국 서부의 사막과 시칠리아의 여름 풍경은 아주 흡사한 데가 있다.

 

#7

차를 몰아 에리체로 올라가는 것은 진귀한 경험이다. 나선형의 2차선 도로는 커브를 돌 때마다 아찔하다. 운전을 하는 게 아니라 작은 경비행기를 모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시각각으로 운전자의 시야에 나타나는 것은 텅 빈 허공이며 파란 하늘이다. 근처에 아무 거칠 것이 없기에 땅 위를 달린다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커브마다 운전자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하늘로 날아가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한다. 그럼 다시 길이 보인다. 그러나 잠시 후, 커브가 다가오면 다시 허공이 눈앞에 나타나 운전자를 유혹한다. 그렇게 한참을 감아올라가면 고대도시 에리체가 모습을 나타낸다.

#8

1693년의 지진으로 도시가 완전히 파괴돼 새로 지었다. 도시의 귀족들이 힘을 모아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을 세웠다. 그 덕분에 시칠리아 최고의 바로크 도시로 남게 되었다’는 식으로 담담히 적고 있다. 엄청난 사건들도 시간이 지나면 말 그대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렇게 태연하게, 그리고 기습적으로 알려주는 책은 여행안내서밖에 없는 것 같다.

 

#9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많은 지식인들이 할 수 없이 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정치철학은 발전하지만 그때 발전한 사상들은 그 당대에는 별 쓰임이 없는 경우가 많다. 마키아벨리 역시 피렌체의 혼란스런 정치상황을 보며 『군주론』을 집필했지만 문제의식은 세월이 한참 흘러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10

그리스극장이 연극을 위한 것이라면 로마식 원형경기장은 게임을 위한 것이다. 타원형의 이 경기장은 관객들이 서로를 바라보도록 설계돼 있다. 이런 곳에서는 흥분이 쉽게 번진다. 자기 소리보다는 건너편 관객의 소리가 더 잘 들린다. 그래서 관객들은 이어폰을 낀 사람처럼 더 큰 소리를 질러대게 된다. 이 로마식 원형경기장에서는 주로 전차경주와 검투사들의 경기가 벌어졌다.

 

#11

6월의 시라쿠사를 돌아다니다보면 누군가 죽비로 내려치기라도 한 듯 번쩍, 카라바조를 이해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좁은 골목 사이로 다투어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은 카메라의 자동 노출계마저 무력화시킨다. 안전한 성 안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지은 집들 때문에 오르티자에서 골목이란 말 그대로 골목이다. 팔을 흔들며 걸어다니면 팔꿈치가 벽에 부딪칠 것만 같다. 그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은 여간해선 인물의 전신을 비추지 못한다. 그렇다고 광량이 약하거나 희미한 것은 아니다. 퇴락한 바로크풍 건물들 사이를 뚫고 내리꽂히는 이 무시무시한 빛은 인물의 세부, 이를테면 이마나 어깨, 볼이나 목을 강렬하게 비춘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춘다. 빛이 예리한 작살처럼 사물을 꿰뚫는 곳, 그곳이 오르티자다.

 

 

#12

노토는 작은 도시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비토리오에마누엘레 거리를 따라 그리스극장까지 십 분쯤 걸으면 된다. 최근에 대대적인 보수를 했는지 18세기에 지어진 바로크 건축물들이 얼룩 하나 없이 환해 보였고, 건물에 인접한 인도에는 상향으로 건물을 비추는 조명이 섬세하게 매립돼 있었다. 그래서인지 관광안내 팸플릿 속의 노토는 언제나 야경이었다. 아프리카의 기운이 지배하는 한낮의 노토, 맨얼굴의 노토는 그만큼은 화려하지 않았다. 

관광안내소는 한시 반까지 일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한시에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광장을 둘러보았다. 작은 분수 너머로 공용주차장이 있었고 그뒤로 테아트로 그레코, 즉 그리스극장이 있었다. 그제야 노토가 어떤 곳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13

건물들이 즐비한 대로를 한낮에 걷는 기분은 기묘했다. 마치 영화촬영을 마치고 모두 떠나버린 세트장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간혹 맥없는 노인들만 그늘에 앉아 큰 짐을 끌고 지나가는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노토 사람들은 자기들로선 감당하기 벅찬 이 호사스런 건물들과 널찍한 대로를 부담스러워하며 살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는 익숙해져서, 그냥 거기 그게 있나보다 하고 살아왔을 것이다. 로마의 콜로세움도 한때는 채석장 대용으로 쓰였다지 않는가. 그러다 최근에 누군가가 “여기 시칠리아 최고의 바로크 도시가 숨어 있었다!”고 외쳤을 것이다. 그제야 노토 시민들도 자기 주변을 돌아보고는, 어쩌면 여기 뭔가 그럴듯한 게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14

노토 사람들은 먹는 문제에 대해 대단히 진지하다, 라고 『론리플래닛』 시칠리아편의 저자는 적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시칠리아 최고의 음식들을 노토에서 먹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15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그리젠토에 온다. 바로 ‘신전의 계곡’을 보러 오는 것이다. 신전의 계곡에는 이 도시가 그리스문명의 일원이던 시절에 건설된 거대한 신전들이 남아 있다. 시칠리아의 여행안내서 대부분은 이 신전의 계곡 사진을 표지로 하고 있다. 특히 거의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콘코르디아신전을 이렇게, 또는 저렇게 찍어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아그리젠토에 도착할 무렵이면 그 이미지가 식상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막상 신전의 계곡에 와보면 왜 수많은 편집자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만큼 압도적이고 인상적이다. 아그리젠토가 시칠리아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책상 위에 사진들을 늘어놓고 단 한 장의 사진을 뽑으라면 콘코르디아신전의 사진을 집어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연기력 뛰어난 조연들이 많아도 감독이나 제작자는 언제나 스타를 주연으로 쓰게 된다.​

#16

그들은 여행안내서에 나온 유명한 호텔을 사칭해서 살아가는 기묘한 존재였다​

​​

#17

무엇보다 전망이 근사했다. 방으로 들어가 발코니로 난 문을 열어젖히면 눈앞에 콘코르디아신전이, 마치 투숙객 개인의 소유물처럼 나타난다. 이렇게 신전의 계곡에 근접한 호텔이 있을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방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보았다. 그러나 콘코르디아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콘코르디아신전은 너무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어서 마치 기념품상점에서 파는 가짜처럼 보였다.

 

 

#18

“난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었어.”

아내는 정말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걱정을 해놓아야 그 일이 일어나더라도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특히 여행 같은 거 떠날 때는 더더욱 그랬지. 예약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 보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뭔데?”

“그냥, 그냥 사는 거지. 맛있는 것 먹고 하루종일 얘기하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그러다 자고.”

“맞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가이드북 보니까 이탈리아에 이런 속담이 있대.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19

전광판을 보며 나는 지난 세월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장뜨는 야성을 잊어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서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20

비슷한 옷을 입고 듣던 음악을 들으며 살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어느새 그토록 한심해하던 중년의 사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애써 외면해왔을지도 모른다. 정말 젊은 사람들은 젊은이의 옷을 입는 사람이 아니라 젊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젊게 생각한다는 것은 늙은이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늙은이들은 걱정이 많고 신중하여 어디로든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반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향도 내세우지 않으며 낯선 곳에서 받는 새로운 감흥을 거리낌없이, 아무 거부감 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게 하고 이미 알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

 

#21

우리가 묵은 호텔의 주인은 아그리젠토 남자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어가자 그는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나비넥타이를 매고 흰 양복 윗도리를 걸치고서야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무뚝뚝했지만 정중했다. 자신의 힘과 위세를 충분히 과시하면서도 필요한 친절은 잊지 않았다. 허겁지겁 메뉴를 결정하려는 우리를 만류하며 그는 우아한 태도로 차가운 물 한잔을 권했다.

“부인, 천천히 하시지요. 날이 덥습니다.”

흰 양복을 입은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의 말대로 차가운 물 한잔을 마시고 링귀니와 조개 리소토를 시켰다. 어린 웨이터가 사장을 어려워하며 종종걸음을 쳤다. 우리는 그와 시칠리아의 기차 시스템에 대해 격의 없는 환담을 나누며 느긋하게 시칠리아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만족스럽게 해치웠다. 택시에 짐을 싣고 역으로 떠나는 우리에게 그가 잘 익은 오렌지 두 개를 쥐여주었다. 오렌지 역시 아편과 마찬가지로 아랍인들이 아름다운 섬에 전해준 것이다.

그후로 오랫동안 아내와 나는 힘든 일을 당하며 낙심할 때마다, 혹은 당황하여 우리 중 누군가가 허둥댈 때마다 그 멋쟁이 사장의 느긋한 대사를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이탈리아어 원어로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은 간결하고 산뜻한 표현이 된다. “Signora, prego. È caldo.” 우리는 마법의 주문처럼 이 말을 외우고 그럴 때마다 거짓말처럼 다시 인생에 대한 느긋한 태도를 되찾을 수 있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