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디션 회복한 사과양이 마지막날쯤 되니 다시 해사한 미소를 뽐내어 주었다. 생전 처음 겪는 신대륙의 강렬한 더위에 깜놀한 그녀의 유리바디가 이번 여행을 통해 강화유리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
마지막날 아침, 우리의 목적지는 저곳 프라도 미술관이다 👉🏻
이 미술관의 터줏대감이자 초유명인사 벨라크루즈 선생.
아침이라 아직 체력이 좋구만
멀리 스페인 고전미술계의 쌍두마차 고야 선생님도 보인다.
프라도 미술관!
사실 방문 전에 잘 알지도 못하던 미술관이었는데 (일자무식) 와 정말 너무나 대박 감동하고 돌아왔다.
다채롭고 선명하고 화려한 그림들도, 쾌적하고 품격있는 미술관 내부도, 크지도 작지도 않은 미술관의 사이즈에 붐비지 않는 밀도도 좋았다. 박물관보다 미술관이 더 내 취향에 맞는 것도 처음 알았다. 역사적 이해가 없어도 그림 자체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어서겠지. 난 역시 '얼마나 오래되었는지'에 별로 감동하는 타입은 아닌것 같다.
프라도미술관 토막 감상평
* 루벤스는 둥글게둥글게 토실토실 금빛금빛 아기자기 화려함
* 카라바조는 작가특징처럼 명암처리가 눈에 띈다. 카라바조의 자화상에 가깝다는 ‘다윗과 골리앗’작품 속 고독감이 눈에 띔. 에스카냐의 카라바조라는 '수르바란'의 그림도 감탄의 연속이었다. 두 작가들처럼 대비가 강한 그림들은 워낙 인상이 강렬해서 호불호가 있는데 난 그래도 호쪽에 가까운 것 같다. 그 표정이나 행동 묘사가 직접적인 것도 좋아하는 편.
* 그림 속에서 ‘질감의 표현’ 이 얼마나 가능하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는 듯 하다. 아기의 살결이 만져질 듯. 털의 느낌이 따뜻할 듯 보석장식 옷의 무늬가 까끌할 듯한 것이 신기했다.
* 또 하나 ‘표정에 감정을 싣는 방법'을 구사할수 있는 것 역시 대작으로 가는 지름길이겠다. 엘그레코의 절망의 눈빛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그림은 정말 명작
* 결국 빛의 활용이 전부이지 싶다. 그림과 사진에서 빛은 모든 것이다.
* 정물화가 재미없는 건, 이야기가 없어서...?
* 조각이 있는 미술실이 무서운 이유는 눈동자가 없기 때문이다. 근데 있으면 더 무서울지도 ...?
* 고야 그림은 특별하다. 고야는 스페인에서만 주로 활동한 탓에 프라도 미술관에 그림이 유독 많았는데 각기 다 다른 느낌이고 그 편차가 매우 컸다. 어떤 그림은 그리 선명하지도 콘트라스트가 강하지도 않은데 빛이 나는 얼굴과 동그란 눈이 왜인지 생동감 넘치게도 슬펐다. 어떤 그림은 배경도 어둡고 눈이 검고 흐릿하다. 그림 속 인간이 아닌 얼굴 형상은 뭘까. 황폐한 대지와 사람 잡아먹는 표정은 전염병 때문이었나? 배경지식이 적어도 조금은 필요하겠네.
미술사적으로 고야를 알아주는 것은 기술보다도 정신세계의 가치? 상상력? 혹은 표현력, 색채가 주는 느낌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미술관엔 아주 정교한 사진같은 정물화도 많았지만, 결국 미술관을 나올때 생각나는 건 '1814년'과 같은 영감을 주는 잔상이었다.
적당한 점심을 먹고 이제 특별한 일정 없이 거리 구경& 쇼핑 좀 하며 마지막 날의 여운을 즐기기로~
스페인 zara에 드디어 입성! 자라는 다 거기서 거기 같은 느낌. 헝클어진 매대가 꼭 내 탈의실 같구만 ㅋㅋㅋ
사과양과 함께 마욜광장 노천카페에 앉았다.
오늘은 마드리드, 그리고 스페인의 마지막 밤. 마지막은 아쉽지만 떨어질 수 없어 눈물 흘리는 그런 이별은 아니다. 하긴 엊그제 처음 만나 며칠만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언제나 가능한 일은 아니지. 이곳의 신선함과 활기참과 고풍스러움 이면에는 어색함과 불편감도 분명 존재한다.
샹그리아가 싱겁다. 사이드로 시킨 타파스는 이국적인 이름이었으나 받아보니 그냥 오징어튀김이다. 한국이랑 맛은 똑같은데 조금 더 느끼함. 하늘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조금 떨린다.
마욜 광장은 펠리페 4세 기마상을 중심으로 사면이 전부 4층 쯤 되는 건물로 둘러싸인 가운데 100m ×100m 쯤 되는 광장이다. 르네상스 분위기 물씬 풍기는 가로등이 다섯 개 전구를 달고 서 있고 , 그 아래 붉게 반짝이는 돌 바닥이 낭만적이다.
마임하는 사람 근처로 모여 있던 군중은 이제 흩어졌고 아코디언 연주자만 근근이 동전을 받으며 시간을 100년으로 되돌리는 클래식을 연주하고 있다. 광장앞 노천카페에 홀서빙을 하느라 바삐 움직이는 종업원들은 대개 백발의 코안경을 낀 할아버지 들인데 이 광장의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려 멋지다. (왜 우리나라는 이런 문화가 결코 될수 없는 건지 궁금하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데도 광장은 늦게까지 음식과 술을 먹는 사람들과, 광장을 오가는 데이트 족 관광객들로 분주하다. 광장의 진출입로 중 하나인 카페 옆 골목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토해낸다. 이 분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 줄은 모르겠지만 아직은 사그라들 기미는 아니다. 지하철도 새벽 두 시까지라 하고 더군다나 오늘은 금요일 밤이니. 헬싱키나 앤트워프 아베이루 같은 다른 유럽의 소도시들에서 저녁 6시만 되면 상가 문을 다 닫아 낭패였던 기억에 비하면 늦은 시간에 활황인 것이 관광객에겐 어찌나 고마운 일인지. 계절이 한창 여름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오늘 마드리드 하늘은 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젖히니 건물 바로 위로 빼꼼이 겨우 한개의 별만 수줍게 빛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같은 하늘일까?
같은 하늘 아래, 결국 하루 안에 모든 싸이클이 도는 조그만 별에 살면서 우리는 다들 뭐가 그리 얼마나 다르다고 아우성치며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지금 이 땅을 밟고 있는 의미와 내 여행의 목적은 뭘까? 쓸데없는 생각만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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