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를 떠나 마드리드로 가는 날, 아침 일찍 기차에 올랐다.
그라나다를 출발해 마드리드로 가는 기차에서 체력 충전을 좀 하려고 했는데 의외로 잠들기에 불편했다. 좌우로 지속적으로 흔들리는 바람에 머리를 가누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십여분간 눈을 감고 잠을 붙여보려 했지만 목이 아파 이내 포기하고 책자와 지도를 꺼내들었다.
전체 길이가 10여미터쯤 될까. 한줄에 네좌석씩 여섯줄이 있는 이 칸은 기차 전체에서 마지막 칸인데, 여기만 사람이 다 차서 시끄럽고 조금 덥다. 앞에 마주보고 앉은 출신불명의 남녀학생 무리는 안방에 앉은 듯 신발도 벗고 맞은편 친구에게 다리를 올려 짖궂은 장난을 쳐대는데, 그 맞은편 애가 나와 눈이 딱 마주치는 자리라 힐끗힐끗 보이는 시선 피하기도 어색하다.
오른쪽 끝에는 핸드폰을 든 백발 선그라스 할아버지가 한분 계신데,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통에 아까부터 시끄러워 죽겠다. 벌써 출발한 지 한시간 쯤 지나 다들 잠들 기색인데도 제 분위기에 취해 노래를 불러댄다.
뒤의 뒷칸에는 애기를 데리고 탔는지 울어대는 울음소리와 뿌르르르 장난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필터 청소한지 꽤 된것 같은 먼지 섞인 에어컨 바람. 뒷문을 열 때마다 간간히 들어오는 담배냄새. 이 칸에서 가장 좋은 건 끝없이 펼쳐지는 이색적인 황야의 풍경 뿐.
그러고보니 알함브라 이야기 책에서도 이 황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었다.
"일부 해안지방은 예외지만 에스파냐 대부분은 울퉁불퉁한 산들과 나무 한 그루 없이 길고 밋밋하게 펼쳐진 평원들만 이어진 황량하고 침울한 고장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쓸쓸하며 아프리카의 야생적이고 고독한 느낌마저 풍긴다"
여름 아침이라 그런지 황량하긴 해도 침울한 느낌까진 아니었는데, 또 어느 계절에 오면 고독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점점히 줄지어 박힌 나무송이들이 이색적인 풍경인 것만은 분명하다. 코르도바 역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벌써 출발한지 두시간. 기차표에 써진대로하면 두시간 뒤에는 도착해야되는데 지도 거리상으로는 마드리드까지의 고작 1/5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밖에 오지 않았다. 라만차는 황량해서 빠른 속도에 주파하는 건가. 아니면 꼼짝없이 연착인 건가? 걱정이 좀 된다. 계속 앉아있었더니 허리도 아파오고, 글씨가 흔들려 멀미가 날 지경이다. 제시간에 도착해서 빨리 내렸으면.
도 to the 착 마드리드 기차역: Madrid Puerta de Atocha
코르도바를 지나더니 미친듯이 달려왔다. 수고했어 기차야 ㅎㅎ
기차역 차양막을 벗어나자 숨이 막힐듯 뜨거운 공기가 확 끼쳐들었다. 마드리드가 그라나다보다 북쪽 도시인지라 덜 더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무가 가득한 작은 휴양도시에 비해 대스페인의 수도에서 내뿜는 아스팔트의 열기는 오전인데도 벌써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일단 호텔로 찾아가보기로 한다. 짐을 들고 도시를 이동하는 때에는 늘 체력이 딸린다. 여행자의 구질구질함을 한껏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가방을 숙소에 던져버리고 나온 우리의 첫 목적지는 마드리드 왕궁
동상을 보면서 늘 생각하는건 우리나라 양반들은 포즈가 차렷 아니면 뒷짐, 아님 칼자루 쥐고 허리춤에 손 올리는 정도로 얌전한 데 비하여, 서양의 양반들은 역동적이기 이를데가 없다는 것이다. 저렇게 낙마하기 직전의 말에 타고 있는 건 너무 위험한 거 아니오??
하긴 같은 아시안이라도 몽골 징기스칸 동상은 심지어 부처님 손바닥마냥 눈앞에 손바닥을 펼쳐보인 그 위에 전망대를 만들어놓기도 했었지. (손바닥 위에 올라간 관광객 그의 손아귀 안에 있소이다)
무엇보다 날씨가 너무나 좋다. 한여름 7월이기도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비한톨 안 만나고 내내 화창하게 쨍쨍 내리쬐는 것만은 맘에 들었다.
파란하늘 가운데 넓디넓은 마드리드 왕궁이 정말로 그림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정도 공간낭비 해줘야 권위가 산다.
아 근데, 좀 .... 덥긴 더운데 -
사과가 냅다 도망치는 이 장면, 나에게는 가장 명장면으로 등극 !
"엄마가 얼굴 타면 촌스럽다고 했단말야 !! (총총) "
와, 정신을 잃을 뻔 했다!! 급한대로 설탕가루를 좀 집어먹었더니 몸에 기운이 도는 것 같다.
마드리드 왕궁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방을 돌던 중 어지럽고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싶은 상태가 되었다. 왕궁 궁실 안에 들어서기까지 땡볕을 백여미터 걸어가다가 갑자기 일사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게다가 촬영금지라고 카메라까지 욱여넣은 가방은 어찌나 무거운지. 에코백 가방끈이 빨갛게 탄 내 어깨를 파고들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가방을 무슨 책보 메듯 오른쪽 허리춤에 꿰고 어지러운 이마를 한 손으로 짚고, 비몽사몽 나머지 방을 돌고 도망치듯 나와 앞에 보이는 커피점엘 무작정 들어왔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설탕을 집어먹고 에스프레소를 작은 컵채로 들이부은 후 잠시 후 정신을 차렸다. 체력의 한계인가. 시차 부적응인가. 단순 수면 부족인가 . 아무튼 나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 이렇게 무리해서 다니는 게 맞는건 분명 아닐 거다. 다시 되돌아가자.
이번 여행동안 몇번의 고비가 있었다.
1) 피카소 미술관 돌고 나와 덥고 시끄러운 곳을 탈출하여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몸 쉬일 곳을 찾는데 여의치 않던 순간
2) 까사밀라를 보고 귀가 중 버스 정류장 착오로 결국 걸어걸어걸어 지하철 타던 그 순간
3) 새벽 4시부터 움직인 그라나다 첫날. 종일 깨어 바삐 움직이고 저녁 9시에 숙소에 잠깐 들렀다가 다시 동굴 타블라오에 플라멩고 공연을 보러 갔다가 밤 12시가 넘어도 귀가하지 못했을 때. 그리고 돌아와 물을 사고 싶다는 사과양을 주려 자판기에 갔는데 자판기 고장
4) 그리고 지금 이 왕궁. 탈진
힘든 건 힘든 것이고 마음까지 불편하면 그만 둘 것
게르니카를 보기 위해 마지막 필사의 발걸음. 스페인의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장 누벨이 지은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외관도 멋지지만 무엇보다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가 마드리드 대표 프라도 미술관이 아닌, 이곳 REINA SOFIA에 소장되어 있다.
어떤 그림을 이해한다는 건, 그 그림의 생김새 뿐 아니라 그 실제 사이즈를 짐작해보는 것을 놓치면 안된다.
스페인 내전이라니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 같았는데, 이런 추상적인 흑백 그림에서도 참혹하다는 것 자체는 너무 와 닿는다. 파블로 피카소는 내게는 여전히 20세기 최고의 미술가! (뒤샹 싫어하는 편😅)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색깔이 화려하고 묘사가 작은 것 까지 아주 섬세하며 광기가 어려있어 시선을 엄청나게 사로잡았다.
저녁식사는 동양인의 '구해줘 입맛' 중식으로 대동단결
당최 뭘 먹었는지 기억도 안나네 ㅋㅋㅋㅋ 정신은 없었지만 팁은 잊지 않았다. 근데 지금 보니 유로가 아니라 달러네??
활기찬 스페인의 밤이 늦도록 이어진다. 체력을 아껴서 더 놀았어야 했는데 퀭해진 눈으로 광장에 앉아있다 발길을 옮기는 것이 고작이었네 그려
'Travel > Spa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19 - 에필로그(사진대방출) (4) | 2020.10.26 |
---|---|
스페인 18 - 프라도미술관으로부터 마욜광장까지 (0) | 2020.10.21 |
스페인 16 - 세상 평화로운 그라나다의 오후 (0) | 2020.10.12 |
스페인 15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6) | 2020.10.07 |
스페인 14 - 플라멩고 (0) | 2020.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