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수님의 책은 산문집 '소설가의 일' 이후로 처음이다. 정작 소설가의 '소설'은 처음인 셈이다. 그때 '소설가의 일'을 나름 재밌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의 소설을 한권도 읽어보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한국소설이 흔히 가진 "신파 내지 처절함" 같은 것이 나오지 않을까 경계했기 때문 같다. 난 소설을 보면서 감정소모하는 것을 그렇게 내키지 않아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어쩌다 이 책을 집어들었을까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소설이 보고 싶었다. 기쁨과 낙담을 조울증처럼 오가는 시기에 책을 고른다면 팩트보단 판타지였다. 그때 행자언니가 늘 추천해 마지않던 김연수 작가님이 생각이 났다.
김영하 작가님이 알쓸신잡에서 언급했던 '문장수집가' 가 나의 꿈 중에 하나라면, 이 책은 내게 그 꿈의 조각들을 많이 제공해 준 셈이 되었다. 그 결과로 내용을 좀 받아 적는다는 것이 이렇게 길어져버렸네 ㅎㅎㅎ (처음엔 옮겨쓰다가 은행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발견하고는 캡쳐본을 첨부했다)
"한국소설 = 처절함" 공식이 이번엔 오해인 것이 분명하다. 건조하면서도 유려한 단어와 문장의 조합이 마음에 들었다. 추리소설급 진행 속도도 놀라웠다. 70년대생 젊은 작가님(?)이라 가능한 이야기였나보다.
(김연수님이 생각보다 젊으셔서 놀랐는데, 작가님 스스로도 청춘의 문장들+ 대담집에서 68년생 이후의 작가들은 균질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물리적 나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젊은작가로 불리우게 된 이유로 꼽아주셨다. )
이 책을 읽으며 한편으로 입양 따위를 감히 운운했던 건 나의 오만한 생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본래의 것. 100% 가 아니면 안되는 것.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영원불멸한 한가지 진실인 나를 낳은 엄마. 친모를 모르는 채 자라난 아이가 본질적으로 품고 있는 상실감과 욕망에 대해 나는 어떤 이해와 위로를 해 줄 수 있나. 있었다가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나는 해줄말이 없는데, 처음 알게되어서 죽을 때까지 삶의 단계마다 평생 마주쳐야할 아이의 심정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 말이다.
입양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처음 보아 그런지 모르겠지만, 주제가 신선하고 사고의 영역이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다양한 소재의 한국작가의 소설들을 가볍게 시작해보잔 생각과 더불어 접하기도 전에 지레 너무 손사래부터 친 것 같다는 반성이 드네. 생각해보면 "일의 기쁨과 슬픔 " 같은 소설도 재밌게 보았는데 말이지.
그는 내 귀에다 대고 나를 만난 뒤 새로 쓴 시들을 들려주곤 했다. 그럴 때면 폐 안의 공기가 유이치의 목젖을 울려서 음파를 발생시키는 장면을, 그리고 그 음파가 내 귀에 들어가 고막을 흔드는 장면을 상상했다. 지극히 단순한 그 과정이 지난 21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고통과 고독과 절망과 분노를 말끔히 치유했다. 건기의 방글라데시와 우기의 방글라데시는 서로 다른 나라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불행은 건기나 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곳 방글라데시에서 저는 수많은 개인사적인 불행을 만났습니다.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 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 그 불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의 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 길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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