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와의 전쟁이다. 유투브에 검증되지 않은 가짜 뉴스들이 넘쳐나고, 이는 또 집단 간에 차별과 혐오를 양산하고, 고정관념을 고착화 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가짜뉴스와의 전쟁이 절박한 이 때, 그런 가짜뉴스의 정체를 판별할 수 있는 눈을 갖추는 것은 무엇보다 핵심이 될 것이다.
팩트풀니스는 탈진실 시대에, 막연하기만 한 두려움과 편견을 상대하는 ‘팩트’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책이다. 책 제목인 ‘팩트풀니스’는 ‘사실충실성’이란 뜻으로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태도와 관점을 의미한다.
이 책은 세상이 우리의 통념보다 괜찮은 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세상은 분명 괜찮은 편인데, 우리가 오해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어떤 극적 본능들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이 과연 괜찮아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제시된 이 본능들에 집중하여 읽는다면 꽤 만족스런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다.
‘느낌’을 ‘사실’로 인식하는 인간의 비합리적 극적 본능에 대해서는 아래처럼 10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생각하거나 의견을 표시할 때 자신의 세계관을 참고하는데, 위에 나열한 여러 가지 비합리적 본능으로 세계관에 오류가 발생하면 구조적으로, 심지어 체계적으로 틀린 답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이다. 이것은 비단 교육수준이 낮거나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에 걸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실 여기에 사용된 본능이라는 용어는 엄밀하게는 실제 의미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거나 공포상황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져 우선순위를 잘못 결정한다거나 크기에 압도된다는 이야기들은 ‘본능’이라기보다는 ‘인식의 오류’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인식의 오류들은 흔한 심리학적 오류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예의 그 문제들을 여러 통계 근거들로 꼼짝 못할만큼 단호하고 대범한 결론을 내는 것만은 주목할 만 하다.
그 중 간극 본능은 나열된 사안들 중에서도 가장 의미심장한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관점(필터)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간극 본능이란 사람들은 극과 극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현실은 그렇게 극단적으로 갈리지 않고 사람들이 간극이 존재한다고 믿는 곳에 사실은 대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된 예외사항 즉 극과 극의 사례를 보고 그것이 대다수라고 믿어버리는 문제 말이다.
사회 현상을 깊게 살펴보고 내 예상과는 다를 수도 있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떠한 사회 현상을 이분법적으로 쉽게 결론 내리고, 그것을 믿고 확대 시킨다. 정확한 근거 없이 상대방을 쉬이 비난하며, 자신이 속한 조직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를 원한다. 무분별한 간극 본능이 사회 분열의 무기가 되는 셈이다. 간극 본능을 똑바로 인식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책 말미에는 ‘네 단계 소득수준의 삶’을 한눈에 그림으로 알아볼 수 있는 표가 나와 있는데, 식수, 이동수단, 요리방법, 식사, 잠자리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이 책에서 제시된 4단계 국가 분류법은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하루에 2달러 남짓을 벌면 1단계, 2~8달러는 2단계, 8~32달러는 3단계, 32달러 이상은 4단계다. 어떤 국가는 대부분 4단계의 생활, 어떤 국가는 대부분 1단계의 생활을 한다. 그러나 어떤 국가는 1단계에서 4단계까지 모든 생활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개인의 삶의 양상은 국가별이 아니라 소득을 기준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이 이 책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기초 이해이다.
잘못된 기초 이해 위에 덧붙여 사람들은 비율을 왜곡해 실제보다 부풀리는 경향도 있다. 통계는 항상 사용하는 자에 맞는 결과치로 가공된다. 어떤 숫자로 결과를 추론할 때 큰 수는 항상 커 보이고, 수치가 달랑 하나만 있으면 오판하기 쉽다. 이로 인해 우리는 세상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뉴스는 극적이고 부정적인 소식을 주로 보도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극적인 상황에 주목한다. 사건사고를 좆는건 미디어의 근본적 성질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보다 극적인 사건 사고, 화재, 전쟁, 자연재해, 테러, 부패, 대량 해고, 폭력 사태 등 빈도수가 낮은 일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뉴스생산자는 물론, 뉴스소비자 역시 불균형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의 틀을 만들게 된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언론 등에 휘둘리지 않고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일 게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확대해석하거나 관점을 왜곡하지 않는 법을 늘 생각하여야 한다.
저자는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는 긍정의 시각을 제시하는 동시에 독자들 모두가 자기 신념이 정말로 사실과 부합하는지 돌아보라는 충고를 던지고 있다. 우물 안에 갇혀 살기보다 올바르게 사는 데 관심이 있다면, 고통이 동반되더라도 세계관을 흔쾌히 바꿀 마음이 있다면, 이 책의 본능들을 살펴보고 각기의 삶의 적용해보려는 노력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상욱 샘이 책에서 말했던 “과학 하는 사람들은 증거가 불충분할 때는 모른다고 말하며,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과학적인 자세” 라던 말이 기억이 났다.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발전의 가장 첫 단계가 되는 것이였다는 거. 어디서 많이 봤었지.
결론적으로 우리가 이 팩트풀니스 책에서 얻어야 할 것, 저자가 몇십년간 목소리를 내왔던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가 항상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직관적이자 본능적인 신념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까지 인식의 변화와 고통을 수반한다. 한 인간이 태어나 가정과 학교에서 십여년간 사회화를 하는 동안 갖춰온 세계는 한 인간의 인생 전체적으로 따져 볼 때는 시간적으로 일부에 불과하다. 또한 그 부모님과 선생님이 최대한 많은 다양한 시각을 갖춰주려 노력했을지라도 공간적으로 환경적으로도 일부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이 가져온 세계관을 점검하고 수정해야 한다. 직접 경험을 하고, 간접적으로 책을 보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계관은 점점 정확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겸손과 호기심을 가르쳐야 한다. 여기서 겸손이란 본능으로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것이고,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는 것이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겸손하면 모든 것에 대해 내 견해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고, 항상 내 견해를 옹호할 준비를 해야 할 필요도 없어 마음이 편하다.
호기심이란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아울러 내 세계관에 맞지 않는 사실을 끌어안고 그것이 내포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실수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실수에서 호기심을 이끌어 내자. “내가 그 사실을 어쩌면 이렇게 잘못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중략)
하지만 세계는 계속 변할 것이고, 무지한 어른의 문제는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학교에서 배운 세계에 관한 지식은 졸업하고 10-20년이 지나면 낡은 지식이 된다. 그래서 어른의 지식도 계속 업데이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팩트풀니스 > 中 page 357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필터)를 늘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건 자식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 이 작가는 그 관점 중 중요한 열 가지 본능을 들어 충분한 통계학적 근거와 함께 나열하였지만, 정작 내가 느끼기엔 이 근거들을 들여다 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들을 자세가 된 사람에게라야 이러한 이야기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