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ravel/Portugal

포르투갈 20 - 에필로그

포르투갈에서 공수해 온 포트와인을 준비하고, 오빠네 부부를 집에 모셔 저녁을 먹고 여행담을 늘어놓던 날, 포르투 숙소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리저리 자랑을 했더니 두분이 갑자기 그곳에 가겠다 했다.

원래 여행을 즐겨하지 않는 오빠인데, 도시의 분위기와 매력에 빠진 게 분명하다. 나름 두분의 여행 타이밍에 부합하기도 했고, 와인도 숙소도 한적한 도시 분위기도 여러모로 적절하였나보다. 앉은 자리에서 검색한 비행기표가 마침 두바이 경유하는 에미레이트 항공기로 70만원대 가격이었던 것이 결정타였다.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나혼자 블로그에 여행기를 써서 추억하곤 했는데, 이렇게 가족끼리 같은 추억을 공유하게 되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은 우리 둘의 경험과 에피소드 때문이 아니라 포르투갈 이 나라의 매력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 여정 

리스본 -> 신트라 -> 카스카이스 -> 바탈랴 -> 아베이루 -> 코스타노바 -> 브라가 -> 포르투 

여행 중 총 8개 도시를 거쳤고 그 중 4 도시에 묵었다. 

총 들렀던 숙소는 다섯군데인데 차례로 소개해보자면

1. 리스본 - 사나호텔
첫날과 둘째날 묵은 곳, 방을 한번 바꾸었는데 전망이 확 바뀌어 깜놀ㅎㅎ 마르케스 드 폼발 광장 근처에 있었는데 교통이 좋지도 안좋지도 않았다. 쾌적하고 무척 친절한 곳. 2박에 32만1천원

 

2. 카스카이스 - 호텔바이아
애증의 호텔 바이아
바다 바로 앞, 그림같이 자리한 완벽한 위치의 호텔에서 하필 벽뷰로 묵은 1박. 17만2천원

3. 아베이루 - 호텔 다스 살리다스 
자그마한 도시라서 위치가 별반 중요하지 않다. 작은데도 깔끔 세련된 공간이 매력적인 곳. 스튜디오형으로 작지만 원룸처럼 규모있는 숙소.
1박에 13만1천원. 부페형 조식 포함. 엄청 느린 엘리베이터 보유

4. 포르투 - 할리데이인 포르투 가이아
호텔스닷컴 10박 무료쿠폰을 이용하여 5만원만 더 주고 묵었다. 그냥 묵으면 1박에 25만원짜리인 시티뷰 방이라 (우리 여정 중) 단연 최고가의 숙소.

눈웃음을 치는 귀여운 점원 마크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가까운 식당과 주차 기타 등등에 대하여 설명해준다. 20여층이 넘는 고층에 배정된 룸에서는 마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와 도시를 내려다 보는 느낌이랄까. 엄청 큰 방과 엄청 큰 창문이 시원시원하여 좋고 포르투 시내가 말 그대로 한눈에 담기지만, 좀 높은 언덕에 자리하여 뚜벅이는 가기 힘든 단점. 호텔서 5분 내 거리에 JMT 피자 맛집이 있다.

 

5. 포르투 - 로코스트아파트먼트

이 숙소의 가격은 69유로. 이름값 제대로 하는 숙소다ㅋㅋㅋ 그러나 우리가 묵었던 방 중 최고의 뷰를 선사했다. 포르투에 다시 간다면 무조건 이곳을 골라야지. 긴 복도의 주방 한면으로 벽면 가득 크디큰 창문이 있고 도루강이 너무 예쁘게 내려다 보이는데 이정도면 하루종일 숙소에 있어도 손해보지 않을 듯한 느낌. 숙소 자체는 옥탑방 같은 느낌이라 여름겨울 춥고더울 수 있지만 , 그냥 들어서는 순간 다른 모든 건 괜찮아지는 마법을 맛보게 될 것이다.

 


# 포트와인과 미식여행 

리스본에서 처음 맛본 포트와인이 너무 신세계여서, 가는날 밤마다 와인한병씩을 구매해서 곁들였다. 와인과 양주가 결합한 달고도 향긋한 맛이라고 일찍이 소문은 들었지만 솔직히 이렇게 맛있을 줄까진 몰랐다. 특히 포르투 강변에 펼쳐진 와이너리들과 낭만적인 분위기는 그 중에서도 정점이었다. 

우리에게 신세계를 선사한 이 술을, 주변의 애주가들에게 선물하고자 트렁크에 네병을 구겨넣고 마지막으로 면세점에서 데낄라까지 한병 구매하여 총 다섯병의 주류를 반입할 때, 다섯병은 처음이라 세관에 신고를 해야하는지 문득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와인은 68% 위스키는 156% (음 포트와인은 두개가 섞인건데 뭘로 적용될런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고민하다가 그래도 떳떳하게 살자(?)고 신고서를 작성해 들고 서 있었더니, 컨베이너벨트에 돌아가는 우리 트렁크에 이미 노란색 벨트가 채워져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자물쇠도 채워짐) 캐리어 안에 나란히 세워놓은 술병이 아마 엑스레이에 너무 보란듯이 걸린 모양이다. 벨트로 채워져 나왔어도 '자진'신고를 받아주는 것이 놀랍다. 그래 우린 자진신고 맞지 암 . 단가도 그리 비싼 술은 아니고, 자진신고로 경감도 되어서 몇만원 정도를 내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 와중에 아베이루에서 산 진자 체리주와 화이트 포트와인은 둘다 내취향이 아니라서 이불에 성질내며 엎어져있다가 잠들어버린 말로를 맞았다

 

# 음식

포르투갈의 음식들은 대체로 양이 많고 맛이 좋은 편이었다.

의외의 엄청난 맛집은 포르투 노바드가이아의 피자집이었다. 피자 , 파스타, 샐러드 모두 푸짐할대로 푸짐하면서 풍부한 맛이었다. 다만 깜빡하고 포장할 때 식당에서 포크와 젓가락을 챙겨오지 않았는데, 근데 그 여파가 ...!

호텔로 돌아와보니 아무리 뒤져봐도 연장이 작은 티스푼 하나와 녹색 빨대 하나 뿐이다. 외부음식이라 호텔 래스토랑에 빌리러 가기도 뭐하고 ..고민하다 하는수 없어 그냥 먹기로 했다. 비싼 전망 좋은 호텔방에 앉아서 파스타를 티스푼으로, 샐러드를 빨대로 긁어먹는 장면은 코메디 같긴 했지만 우리에게 안어울리는 기분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피자파스타가 심각하게 맛이 좋아서 원시인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다만 이날 이후로 플라스틱 포크를 캐리어에 여분으로 하나 담아놓고 언젠가 쓸데가 있는 날이 오길 기다리는 중이다. 

 

포르투갈 전통 바칼라우 요리
해물밥, 소울푸드 자격이 있다
내장파괴버거 프란세지냐.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클레리구스 탑

# 날씨

보통 유럽이 생각보다 춥고, 날씨가 변덕스럽거나 괴팍했던 기억이 많이 있다. 프라하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등등 갈때마다 비가 오거나 해가 보이면 감사할 지경의 몇 도시들.
그 중에서도 포르투갈은 단연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를 자랑했는데, 남쪽나라라 그런 것도 있겠고 특히 대서양에 붙은 지리적 위치 덕에 정말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포르투갈 길거리에 다니는 자동차들이 매연 저감 장치가 아마 잘 안되어있는 듯 , 길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엄청난 매연을 내뿜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공기가 얼마나 맑은지를 대조적으로 더더욱 깨닫게 하였다.
나이가 들면 지중해의 따뜻한 도시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도 있는 것처럼, 온화한 날씨는 사람정서에 큰 역할을 한다는 걸 다시한번 느낀다.

게다가 다른 유럽보다 훨씬 여유롭고 한가한 인구 밀도도 관광객에겐 좋은 포인트였다. 따지고보면 포르투갈이 우리나라와 면적이 거의 비슷한데 인구수는 1천만정도 되는걸 생각해보면 적을 만도 하다.  포르투나 리스본의 유명 관광지에 몰린 사람들 일부를 제외하면, 줄서서 뭘 기다리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개 한적하고 조용했다. 그리고 건물마다 푸른색 아줄레주와 예쁜 타일들에 눈도 즐거웠고. 포르투를 제외하면 요샌 어딜가나 많은 한국인 관광객도 거의 보지 못했고, 근처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마찬가지로 그냥 동양인 자체가 별로 없었다

 

#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인가 아님 한없이 느린 한량들인가

솔직히 성격 급하단 말 많이 듣지 않았었고, 어지간한 유럽에서도 잘 지내왔거늘, 포르투갈에서는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아 이나라 따뜻하고 여유로운건 좋은데 심각하게 느리다. 그리고 뭐랄까 대체로 오너십이랄까.. 그런게 좀 없나, 아무리 관광객이라도 친절함을 기대하는 건 고사하고 너무 내팽개쳐진 기분이 듬 ㅠㅠ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자마자 만났던 오지랖이 넓던 우버 아저씨 둘과 사나호텔 할리데이인 로코스트아파트의 따뜻한 환대. 와인샵마다 만났던 활달한 사람들. 길거리에서 각종 악기를 연주하던 낭만 버스킹러들.  


반면 브라가 성당 티켓부스에 싹퉁머리 없는 여자애는? 무표정하다 못해 히죽거리며 놀림받은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한 호텔바이아의 프론트데스크는 또 뭔가 - 코인락커 넣을 동전을 바꾸러 찾아가니 커피를 사먹는게 어떻냐고 대답을 하지 않나.  밥먹을때마다 한 세월씩 기다리게 만든 식당의 서버들, 내돈내산 밥먹는데 눈치까지 사먹게 만드는 그들의 당당함은?  

시스템이 고장(혹은 매진)나게 운영을 하면 운영자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드는 나와는 달리, 그것은 점주의 잘못은 아니다,떨어진걸 어쩌냐 하는 분위기도 여전히 사뭇 다름을 느낀다. 내가 한국사회에서 '왕'이 되어버린 고객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린건가 싶기도 하고.  

 

# 여행에서 아쉬웠던 것
포르투갈의 소울이라는 ‘파두’를 못 들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아리랑쯤 되는 이 나라의 정서가 담긴 노래. 파두 공연은 리스본 골목의 작은 식당들에서 새벽까지 이어진다고 하는데 여건상 스케줄에 넣지 못했다. 유형의 무엇들보다 더 뚜렷한 추억으로 남는 것, 이 도시에서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가장 최우선적인 것이 되었어야 했는데 좀 많이 아쉽다.

해리포터의 원형이 되었다는 그 유명한 렐루서점은 줄이 너무 길어 결국 가보지 못했다.  안에가 그렇게나 예쁘다며? 그렇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더 소중했었다.


아프리카를 마주보고 있는 바다쪽 도시들, 파로 라고스 등 남부 지역도 들르지 못했다. 원래 이번 포르투갈 여행을 처음 계획할 때는 세비야와 지브롤터도 가고 싶었었었는데 너무 멀어서 포기. 운전도 못하는 주제에 로드무비 찍자기엔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남부를 면한 바다는 또다른 분위기의 바다라는데, 어떤 느낌인지 짐작도 안되네-

한편 나름대로 여러 도시를 최대한 간다고 동선을 짰는데, 어렵사리 늦게나마 방문한 도시의 볼거리들이 너무 일찍 닫아버리는 상황이 아쉬웠다. 6시가 지나면 가게들이 불을 끄고 관광객은 갑자기 갈데가 없어지는 건 고사하고 저녁을 해결하는 것도 걱정이 된다. 이럴때야말로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되는데 어째 기상시간은 변할줄을 모름? 

아악 - 해야 아직 지지 말아줘!!!

매일매일 이동계획이 있어서 운전하다가 시간 다가는 것도 한몫했다. 외부요인으로 중간에 시간이 짤리는 것만큼 여행지의 하루를 충만하지 못하게 보내게 되는 것도 드물다. 다음엔 방문도시 개수 욕심을 좀 줄여야 하나. 그나저나 렌트카를 사용하는 건 좋은데, 운전은 언제쯤 나눠할 건지????

야심차게 기획했던 어반드로잉이 실패한 것도 아쉬운 점. 해외에까지 여행을 나오면 시간을 쪼개 써도 부족할 판에, 한갓지게 앉아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체감했다. (시간이 남으면 차라리 체력보충을 위해 잠을 자야 한다.)  어디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내겐 국내에서조차 어렵다는 걸 최근에 깨닫는 중 ㅋㅋㅋㅋㅋ

DSLR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돌아와서 사진을 비교해보니, 역시는 역시 DSRL 카메라로 더 찍었어야 했다. (아님 아이폰6S를 좀 바꿀 때가 된건가?) 해외에서는 무거운 카메라를 매순간 들고 다니기를 쉽게 포기하지만,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보면 늘 아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방문하고픈 도시와 그곳의 매력들을 미리 알아보면 너무 알아버려서 신비감이 사라지고, 모르면 못가서 또 아쉬운 그 어디쯤 경계에서 적절한 수준을 찾는게 어려웠다. 볼수도 없고 안볼 수도 없고 그야말로 계륵. 더불어 시간이 갈수록 길거리 구경 이상의 테마여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중국에 가면 삼국지 테마여행이라도 하는데,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 여행을 했어야 했나? 그것도 애초부터 원했던 테마여야지만 가능할 것이다. 그럼 나는 왜 도대체 포르투갈에 오게 되었나...?

 

# 기념품
집에 있는 장식장이 각종 잡다구리들로 넘쳐흐르는데 또 이렇게나 많은 잡스런 기념품들을 구해왔다. 
포르투갈 정취가 물씬 나는 멋들어진 레터링의 비치타월부터 포스터, 포트와인, 올리브오일, 정어리통조림, 향초, 기념아줄레주타일, 마그네틱,  암스테르담에서 구입한 가죽워커까지 -
내가 물욕이 없다고 내가 그랬던가? 허허
기념품을 한데 모아놓고 찍는 사진은 물욕오브물욕이 따로 없다

 

 #진짜 마지막

포르투갈을 잊지 못한 첫번째 증거
우리의 술장고에 포트와인 목록이 추가되었다. 빈티지는 비싸서 잘 못 사먹지만 3만원대 LBV 라도 발견한 날에는 아묻따 구입하여 뱃속으로 투입 ㅋ
사진은 몇주전 연남동 샹볼뮈지니에서 발견하고 재난지원금으로 구입한 마데이라 주정강화 와인이다. 본토와는 다르게 단맛이 좀 덜하고 도수는 여전하다는데, 언젠가 귀한 날을 맞아 개봉박두 예정

포르투갈을 잊지 못한 두번째 증거
아줄레주 타일을 형상화한 보드게임 구입ㅋㅋㅋㅋㅋㅋㅋ

 

포르투갈 즐거웠어, 또 만났음 좋겠다!

포르투갈 여행기 진짜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