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ravel/Portugal

포르투갈 19 - 아쉬우니 암스테르담

 

 

 

공항에 붙은 호텔에서 눈을 떴는데 바깥이 또 흐리다. 스탑오버 하루를 틈타 암스테르담 시내를 둘러보기로 한 날인데, 일년중에 삼백일은 비가 온다는 이 죽일놈의 네덜란드 날씨가 그런 찬스를 살리게 둘것 같냐며 우리를 비웃는 것만 같다. 일기예보에 하루 왼종일 비라는데 부산스럽게 경유까지 계획한 우리가 갑자기 비참해지는 기분이다. 그나마 부슬비 정도가 내리는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나가보기로 하였다.

 

 

문득 어제까지의 여행이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다른 나라에 도착한 걸 내 몸이 아는 건가. 아마도 마지막 날인지를 내가 알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가기 싫은 마음. 짝꿍과 함께하는 장시간의 여행이 싫지않다. 충분한 돈을 써서인가. 그가 매우 배려깊은 성격이기 때문인가. 누군가는 흔히들 싸우고 온다는데, 뭐 우리는 앞으로도 그럴 일은 많이 없을듯 하다. 여행이 모지리도 꼬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의 여행이 대부분 계획대로 된적이 많았다는 걸 인정한다. 렌트카여행을 하는 우리는 교통수단에서도 자유로운 편이고, 일정도 빡빡하지 않게 짜지 않았으니까. 기차라도 하나 놓쳐봐야 인내심을 시험하고 싸우고 극복하고 하는 것이다.

 

 

9시 반쯤 되었나. 슬슬 출발 준비를 시작하여 여유롭게 씻는동안 멜론DJ에서 ‘이탈리아 감성 메들리’라 이름붙은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리플리에서 들었던, 'DO A AMERICANO' 가 나오네- 갑자기 신이나는걸??

 

 

​우리가 묵은 쉐라톤은 공항에 붙은 호텔이라 방 자체는 정말 미니멈의 극치다. 호텔방 필수인 커피포트나 커피티백 하나가 방에 없어 층마다 엘베 앞에 커피머신을 하나 갖다놓았다. 옆에 아이스머신도 눈에 띄어 커피 하나와 아이스(슬러시를) 담은 아이스커피를 하나 제조하여 만들어놓았다. 옷도 한벌 뿐이고 짐도 조금이라 준비가 빠르고 간편해 좋다.​

 

 

커피옆에 티백이 색깔별로 예쁘게 진열되어 있어서 몇개 집어왔는데, 로네펠트 브랜드이다. (이날 여기서 가져온 로네펠트 페퍼민트에 반하여 지금도 주문하여 사먹는 중인데 매우 만조크!! )

 

 

열시반쯤 호텔을 나와서 짐을 맡기고 스키폴 역에서 트레인 티켓을 두개 샀다. 전광판을 보니 오분후 출발이다. 공항역인 스키폴에서 시내까지는 단 20분 거리. 역시 이 도시는 경유지로 구경하기 여러모로 편리한 곳이다.

 

 

익숙한 공간이 나타난다. 2년 만인가 - 평생에 한번 올지도 모르는 외지에 이리 빠른 시일내 또 들렀다는 것이 신기하다.  바로 이 앞 뷰가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역 앞인데, 고층 건물 대신 고풍 건물이 가득한 것이 분위기 있다. 그나저나 부슬비가 계속 오니 아마도 우산을 하나 사야할 모양이다.

 

 

우산을 먼저 살까 좀 기다려볼까 고민하다가 일단 트램을 탔다 24번 트램. 익숙한 돔 광장을 지나서 하아네켄 익스피리언스 앞에 선다. 이곳엔 2년전에 방문한 타코집이 있다. SALSA SHOP- 우리에겐 네덜란드 최고의 맛집이다. 벌써 세번째 방문. 멕시칸음식 익스프레스 버전 같은 구성이다.

 

 

요새는 한국에 치폴레도 들어오고 메세나에도 쿠치나인가 이름붙은 비슷한 타코집이 생겨서 신비감은 좀 사라졌긴 하지만, 기억대로 역시 이곳은 풍부한 재료의 양과 맛이 훌륭하다. 기대감도 있는데 만족감을 주는 게 얼마나 어렵게요 

 

 

비 예보 때문에, 별다른 계획을 세우고 오지 않았지만, 막연히 생각한 것이 있다면 2년전에 들르지 못했던 반고흐 미술관이었다. 워낙 명성있으신 분(?)이니 그래도 대표 미술관 하나는 들러줘야지. 

 

앞에 보이는 회색 라운드 건물이 반고흐 미술관

 

비내린 풀밭길을 따라 걷는 길이 나름 상쾌하다. 산책이라도 하듯 발걸음을 가볍게 옮겼다.

 

 

그러나 상콤한 산책길의 끝은, 매진된 미술관........

어째 밖으로 보이는 늘어선 줄이 좀 적은가 싶더니 줄 선데와 다르게, 티켓판매기가 따로 있었다. 날짜를 찍어보니 오늘은 물론 내일도 전부 매진. 내일 모레 오후 표부터 구매할 수 있다. 여행을 부지런히 준비하지 않은 나의 안이함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유명관광지의 위력이 실감이 났다.

그나저나 우리네 같았으면 정원 상관 없이 죄다 밀어넣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세심하게 인원수 관리하는 것도 좀 놀랐다.

 

 

어쩔수 없이 반고흐 미술관 대신 근처에 있는 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아마 상설전 말고 기획전이 열리는 공간인 모양이었다. 이름 처음보는, 우리는 알 수 없는 작가의 기획전이었는데, 반고흐 대신 이 걸 선택하기엔 우리가 전시를 볼 준비가 너무 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전시 관람은 포기. 비도 오고 하니 로비에서 나가지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한켠에 마련되어있는 문구 코너에 눈길이 갔다. 문구 코너에서 이거저거 둘러보다가 ART ORACLES 카드게임을 발견하고 냉큼 구입, (사진에 보이는) 포토그래프 툴도 탐나보였는데, 돌아와보니 좀 아쉽네?

 

 

현대미술관 한켠에 그림포스터 중 살만한 게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살펴봤는데 생각보다 금액도 비싸고 역시 재작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서 본 것 만하지 못하여, 이곳으로 다시 가보기로 했다.

비를 뚫고 방문한 시립미술관. 타코집과 더불어 여기도 벌써 3번째 방문이다. 엄마와 시어무니에게 그림을 한장씩 선물해보려고 심사숙고끝에 시어머니께는 풍경화를, 엄마에겐 치즈덩이가 그려진 정물화를 골랐다. 좋아해주시면 좋을텐데 ㅎㅎㅎ

 

“비 + 미술관 매진" 콤보 때문에 갑자기 할일이 없어져서. 정말 정처없이 거리를 싸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비가 계속 와서 마트에 들어가 결국 작은 우산을 하나 샀다. 마땅한 게 없어 가격으로 골랐더니 호피무늬가 최종선택안이 되었다. 마지막까지 버텼는데 가기 바로 전에 우산을 굳이 사게 되다니 비용이 좀 아까워지지만 이제 우산이 없으면 도저히 다닐수 없을만큼 폭우가 쏟아진다. 마트 들어간 김에 벨지안스쿠룹 미니와플도 사고(JMT) 밖으로 나와 담광장 근처에서 쇼핑을 좀 해보려고 이곳저곳 가게를 들락날락하였다. 길거리에 늘어선 몰에서 신발 잡화 옷가지를 구경했다. 평소에도 쇼핑은 별로 안하는 우리여서 과연 이번 여행의 끝이 이런 모양새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돌아다닌 보람은 있어야 하므로 큰 맘 먹고, 검은색 가죽워커를 하나 샀다. 평소에 원하는 디자인이었어서, 그나마 쉽게 고를 수 있었다. 먼길 떠나는 길에 쇼핑백 들기도 번거로와 가방에 (신발케이스도 빼고) 가죽신발을 구겨넣었더니, 매장 직원이 어처구니 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비에 젖은데다 바람도 불기 시작하여 으슬으슬 추워진다. 이곳저곳 정처없이 구경하다 흘러 들어간 곳은 안네의 집 건너편에 있는 작은 카페. 

창가에 앉아 멍 때리면서 아까 샀던 신탁카드를 개봉해보기로 한다. J.M.W. TURNER와 MARINA ABRAMOVIC 가 등장했다. 둘다 모르는 분이네. 인터넷에 찾아보니 나만 모르는 유명인사다. 분발해야지. 이 카드에 있는 사람 다 알고 싶다 (욕심) 

창밖으로 안네의 집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줄지어 서있는것이 보인다. 안네는 네덜란드로 망명 온 아버지를 따라 암스테르담에 숨어있다가 발각되어 마지막을 맞았다고 한다. 따져보면 불과 몇십년 전 일이다. 지금 이렇게 관광객이 넘쳐나는 자유스러운 도시가 , 당시에 그렇게 삼엄하고 걸리면 죽는 분위기였다니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문득 비교적 평화로운 세대에 태어나 자라온 걸 감사하는 마음..(갑자기?)

네덜란드 기념품이라면 단연 치즈쥐. 공항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치즈가게에 들렀다. 형형색색의 치즈가 우리를 유혹한다. 손바닥만 한 베이비고다 치즈 한개를 겨우 골랐다. 결정장애자에게 지옥같은 곳일세
(돌아와 먹은 베이비고다 치즈가 눈물나게 맛있어서 더 사오지 않은거 또 후회 ㅋㅋㅋ)

대왕치즈 위에 살포시 얹어진 저 베이비 고다가 우리가 사온 그 녀석

돌아갈 시간이다. 아직도 미련이 남은 네덜란드의 붉은 벽돌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걸어서 트램 정류장으로 향했다. 

물론 스탑오버이지만, 짧지 않은 하루인데 애매한 게 되놓으면(날씨와 스케줄 미정) 이렇게까지 갈 시간을 기다리는 심정이 되는구나. 갑자기 여행지에서 돌아갈 걸 기다리는 한시간과, 이륙 전 공항에서의 한시간은 뭐가 다른가. 똑같이 내가 느끼는 것인데. 사진과 풍경의 부재인가. 문득 여행은 어디까지가 여행인지 궁금해진다. 나는 여행에서 정확히 뭐가 달라지는 건가. 예쁜 시각적 풍경? 맛집? 공기? 심상? 아니면 이곳에 발을 디뎌본 적이 있는 경험이 생긴, 이전과는 달라진 나? ​

글쎄 여행의 정답이 어디 있겠나. 다음 여행이나 기약해봐야지. 포르투갈 진짜 안녕~ 암스테르담도 안녕~ 즐거웠어 이번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