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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Portugal

포르투갈 8 - 신트라 : 알록달록 레고같은 페냐성

호카곶에서 나온 우리는 차를 돌려 다시 신트라로 돌아가는게 아닌, 카스카이스로 향했다. 벌써 3시가 넘어간 시각이라 숙소에 체크인을 먼저 하고 재출발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선택도 기대만큼 효과는 없었다. 이것 역시 결과론적 이야기긴 하지만.

카스카이스로 넘어가는 길은 그 와중에 너무나도 예뻤다. 헤어핀을 도는 동안 예쁜 뷰가 나왔다 가렸다 또 나왔다가 무한 반복. 탄성의 음도 점점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크로아티아와 비슷한 바다 뷰이기긴 했는데, 그만큼 심한 절벽은 아니라서 덜 무서운 것이 내게는 개인적으로 좋았다. 해안가의 경도만으로는 제주도와 비슷한 그런 지형이라 할까.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니 또 회전교차로가 나왔다. 포르투갈은 차량이 적어선지, 효율적 도로교통 설계때문인지 유독 회전 교차로가 많은 느낌이다. 교차로를 몇개 돌아서 조금 완만한 내리막길로 계속해서 직진했다.

 회전교차로를 여섯개정도 돌았을 때 드디어 바다가 보이고 바다로 쭉 뻗은 그 길 끝 코너에 우리 호텔이 있었다. 호텔 바이아.

 호텔은 더없이 완벽한 위치였다. 주차장 진입로에 차를 대기 위해 줄을 사면서 벌써 이 도시와 그리고 이 호텔과 사랑에 빠졌다. 신트라에 다시 가고싶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얀색 건물이 호텔 바이아다

이 숙소의 예약으로 말하자면, 어제 한 블로그에서 우연히 본 포스팅 때문이었다. 셋째날 묵을 도시를 오비두스가 아닌 카스카이스행으로 결정하게 해준 결정적 포스팅엔 , 다른 모든 요소를 감안할 수 있는 호텔의 위치와 전망이 나와있었더랬다.


그러나 문제는 ..!
우리의 방이 반대쪽 이란 것이었다..

 

호텔 앞이 이런데! 오션뷰가 아니라니 ㅠㅠ

변명을 좀 해보자면, 전날 예약시 포스팅에 나온 그 호텔에 예약가능한 방이 남아있다는 것에 환호하며 서둘러 예약을 했는데 우리가 클릭을 완료하자마자 이호텔은 솔드아웃 되었었다. 우리는 그마저 럭키하다며 낄낄 거렸지. 그러나 그 방이 마지막 자리였기 때문에 다른 아무것도 써있지 않아 이 호텔에 '오션뷰'라는 것이 원래 있는지 몰랐고 이곳에 오고나서야 비로소 그걸 알게된 것이다. 이런 좋은 위치의 호텔을 전객실 오션뷰로 하지 않고 굳이 반대쪽 뷰를 만들어 놓은 것을 믿을 수 없었던 우리는 며칠뒤 날짜로 굳이 예약을 찍어본 후에야 다른 타입의 객실(낫 오션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약한 방이 다른 포르투갈의 숙소보다 비교적 고가인 15만원의 가격이었지만 죄다 위치값이었다. 우리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이자 굳이 뷰라고 이름붙이는 것조차 분노를 일으키는) 월뷰, 그것도 가장 낮은 2층을 받았다.
기분좋게 체크인을 하고 방에 입장하기 전까지 이러한 상황을 전혀 예상조차 못했던 우리는 곧바로 로비에 내려와 직원에게 항의했는데, 그는 딱 잘라서 우리방이 싼 방이라 그런거라고 했고, 오션뷰는 이미 만실인데 그렇게도 꼭 오션뷰여야 한다면 스위트룸이 하나 남아있는데 78유로만 더 내면 바꿔주겠다고 했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굳이 스케줄을 바꾸어가며 일찍 온다고 4시에 왔는데 만실이라는것이 사기당한 기분이어서였고 부족한 영어로 더 진상부리지 못하는 것이 속상해서였다.

방에 돌아와 한 10분 간 말없이 망연자실 앉아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이 먼곳까지 와서 이 수렁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다. 벽뷰가 너무 속상하면 벽에 물고기라도 그려줄까 하는 남편의 말에 웃음이 터지며 그래 이렇게 무너지지 말고 더 신나게 놀아주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고쳐먹고, 직원에게 알겠다 그럼 맨바닥이니 슬리퍼라도 달라고 전화했는데 그마자도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또한번 이 호텔에 빈정이 상했지만 굴하지 않겠다. 흥 호텔에서 벗어나겠어!

호텔은 모르겠지만, 카스카이스에서 넉넉한 오후를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만큼 이 도시의 빛나는 햇살이 탐이 났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트라를 마무리해야 한다. 특히 신트라성과 함께 끊은 페냐성 티켓도 남아있어서 주차지옥 헤갈레이아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페냐성은 가야했다.(사실 헤갈레이아 주차장에 다시 갈 엄두가 나질 않기도 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페냐성으로 향했다. 네비에 페냐성을 찍으니, 아까 그 신트라와는 사뭇 다른 길을 안내한다. 비슷한 지역에 있지만, 그래도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있었다. 고속도로도 심지어 다른 입구를 안내하였는데, 구글지도와 네비가 조금 다른 길을 안내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조금 긴장이 되었다.

우리의 네비는 음성부터 아주 얌전한 양반인데, BMW가 그런건지 외제차가 그런건지 길찾기 주소는 구식 전화기 다이얼을 돌리듯 동그란 원을 돌리며 알파벳을 한땀한땀 찾아서 찍어줘야 하고, 그렇게 찾은 주소와 최대한 일치한 몇가지 추천후보와 남은 거리를 보여주지만,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어떤 길을 타고 가는 것을 선호하는지(추천길) 그런 간략한 리뷰 없이 바로 길안내로 접어든다. 게다가 외국답게 최소한의 정보로 심플한 맵을 띄워주는 타입이었다. 좌회전과 우회전, 노선 번호 등 안내는 운전석의 계기판 아래 어딘가에 화살표로 등장한다고 하고, 길은 다이얼을 좌우로 돌리면 자동으로 줄었다 늘었다 했다.

구글이 아주 잘되어있긴 하지만, 또 로컬의 일방통행과 도로폭까지 커버하기엔 무리가 있었는지 좀 다른가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어째 도착하고 내리려는 주차장이 휑한 것이 이곳이 페냐성은 아무리 봐도 좀 아닌것 같은 것이다. 차로 들어갈 수 있는곳까지 들어가봤는데,(오다가다 차를 마주치면 한놈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아주 작은 길에서는 한놈씩 건너갈 수 있게 외길 신호등이 나오기도 했다) 갈수 있는 가장 마지막까지 차를 집어넣은 순간, 한 아저씨가 포르투갈어로 뭐라고 손짓하며 차를 빼라는 손짓..! 여기는 걸어서는 페냐성에 닿을 수 있는데 차는 안된다며 , 네비를 켜서 xxxx를 검색하라고 했는데, 그 xxxx를 알아들을 턱이 네, 없습니다

결국 또한번 구글과 네비를 살핀 결과, 이곳과 다른 주차장을 찾아내어 또 산을 굽이굽이 돌아서 (수없이 말하지만 일방통행이라 가까워도 돌아간다) 겨우 페냐성 주차장에 다다른 시간은 거의 5시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아 정말 오늘 왜이러는지. 이곳도 혹시나 지나가면 돌아올 수 없는 치명적인 곳인지 주행중에 또 고민했다 신트라 트라우마가 생길듯 ㅎㅎ

페냐성은 아까 신트라와는 좀 먼곳에 자리잡고 있었고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입구를 지나 초반에 마주한 셔틀버스는 3유로라고 하니 걸어서 언덕길을 올랐다. 페냐 공원은 꽤 큰 곳이라서, 지름길로 꽤나 올라갔음에도 고개를 들면 더 높은 곳에 성의 테두리만 희미하게 보였다.

예상치 못한 등산길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구에 다다를 쯤 아치형 출입문이 나타나고, 노란색과 팥죽색깔로 알록달록 칠한 담이 눈에 들어왔다. 담사이 요철은 장난감처럼 네모낳고 세모난 블럭이 달려있고, 지붕은 둥근 게 덮여있다. 넓다란 터가 있는 것은 아니고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곳이었다.

아니 도대체 이런 색깔 취향은 어디서 누구에게 나온건지? 궁전이 빨간색 노란색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는건 난생 처음본다 ㅋㅋㅋㅋ

그래도 덕분에 귀욤귀욤한 맛은 일품이다

신트라지역중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라더니 소문대로 굉장히 높은 곳이라 사실 전망이 잘 안내려다보일만큼 자욱한 안개가 가득했다. 페냐성의 내부를 보려면 티켓을 끊고 들어가야했는데, 사실 내부가 인상적이었다기보다, 그냥 이 산자락 끝에 이 높이에 구름사이에 마치 장난감 성처럼 만들어져있는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다고 할까. 특히 wall walk라고 하여 벽 사이로 나있는 산책(방어)길을 걷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모두 다 발아래 두고 산속에 산신령처럼 살아왔던 이 왕궁속 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창문사이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 안에 화려하게 자리잡았던 다이닝 룸에 한번 앉아보고 싶었다.

상점에서 소소한 추억팔이용 잡동사니를 몇개집어들고 터벅터벅 내려올때쯤에는 8시까지라던 이곳도 한시간 먼저 문을 닫는 듯 했다. 산은 어느새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고, 어둑해져있었다.

하루종일 근방의 산에서 길찾느라 헤메었는데 빠져나오듯 차로 미끄러져내려와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며 멀어지는 신트라 지역을 바라보니, 높은 산맥과 산들 사이로 구름이 잔뜩 걸려있었다. 날씨가 흐려진 것이 아니라, 그냥 저곳이 높아서 고도 차이로 인한 안개가 아닌가 싶었다. 신비스러움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오는지도 모를일이다.
하루종일 미로같은 산길에서 헤매고, 구름속에서 성 구경을 하던 것이 문득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뭔가 홀린 것처럼 말이지.

카스카이스로 돌아왔다. 차를 주차장에 대고 저녁을 먹으러 거리를 휘적휘적 걸어나갔다. 시간도 여유로운 가운데 휴양지의 저녁은 고양된 느낌이었다. 때마침 무슨 컵인지 유럽축구도 하고 있었는데, 바깥에 큰 티비 화면이 대여섯개씩 걸린 가운데, 손흥민이 뛰는 토트넘과 뮌헨 경기도 중계되고 있었다.

모니터가 쫙 깔리고 노천 좌석이 쫙깔린 고조된 식당거리를 지나서 영훈이가 검색한 '오 페스카도르’라는 음식점을 찾아갔다. 티비가 하나인 그곳에는 유벤투스의 경기를 하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국민영웅 호날두가 뛰는 유벤투스가 모든 식당의 TV채널 제1픽일 수밖에 없다는 거- 인정ㅋㅋㅋ

좀 좋은 자리를 얻고 싶었는데 누가봐도 예약없이 온 동양인 뜨내기라 그런가 티비 바로 앞 자리를 주었다. 티비가 너무 가까워 고개가 아픈 자리라는 것만 빼면 나름 괜찮았다. 더 좋아뵈는 나머지 자리는 비어있지만 예약석이라는데 진실은 알게뭐람. 웨이터가 하라는대로 왠지 기가 죽어 따라가야 하는 유럽식 스타일이 썩 편하지는 않은 느낌. 돈내고 먹는데 눈치까지 먹는게 별로인데 이거야 말로 문화이겠지. 그래도 손님이 지나치게 기다리거나 차별받는 느낌을 주는 건 별로 선진적이진 않다. 손님은 왕이다까진 아니어도 친절은 해야되는 거 아니요?

오기 때문인지 뭔가 그럴싸하게 시켜먹고 싶어졌다. 파스타와 포르투갈 전통식 생선요리를 시키고 전채요리도 주문하였다. 그린와인이란 것도 (화이트와인과 비슷) 한병 시켜먹기로. 요런데 와서 쪼잔하게 아껴먹기만 하는 것도 우스꽝스런 일이다.

와인을 따주고는 먹는 속도에 맞춰서 계속 첨잔해주는 것이 좋았다. 손이 많이 가겠네 와인 손님들은. 우리를 위한 아이스칠링 소쿠리를 테이블 옆에 아예 세워놓은 것이 은근히 기분 좋았다.

뭔지 모르고 '전통요리'라고 시킨 음식이 있었는데, 론리 가이드북 그림에서 봤던 모자모양의 음식이 똑같이 나와서 탄성을 질렀다. 이미 와인을 좀 먹고 기분이 올라있던 상태라서 아까 그 무뚝뚝한 서빙 아저씨애게 이게 우리가 사진에서 본 요리라며 막 흥분해 말했는데 희미하게 표정이 일듯 말듯 했지만 활발한 리액션은 역시 없었다.

꽤 오랜시간을 저녁식사를 했던 것 같다. 적당히 쾌적한 밀도와 바람의 노천카페. 어느 유럽의 노천식당보다 좋았다고 생각한 건 이 곳이 춥지 않아서이다. 더운 날씨엔 놀러가지 않은 덕분도 있지만 대개 유럽의 날씨들은 남유럽에 비하면 모두 추운데도 그놈의 낭만 때문에 구태여 밖에버티고 있는 기분이 든다.

식사를 끝내고는 술보단 이 분위기에 취한 탓일까. 잔뜩 고조된 상태로 근처에 았는 포트와인집을 찾아 술을 한병 사가기로 했다. 웃음 좋은 아주머니에게 추천을 받아서 20유로가 좀 안되는 그라함GRAHAM 10년산 한병을 사다가 옆구리에 끼고, 어둑한 그러나 로맨틱함이 저물지 않은 거리를 걸어서 숙소로 들어갔다.

적당히 늦은 시간이라서 와인을 까서 나눠먹으며 이야기도 한참 나누었고, 틀어놓은 bgm에 맞춰 힙합꼰대도 부르고 (?) 시끄럽게 떠들다 잠들었는데 , 돌이켜보면 방 상태는 가장 별로였던 그날밤이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재미있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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