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방은 6층, 한참 창밖 뷰 감상에 빠져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아마 아까 맡긴 발렛차량 차키를 가져다주다보다 싶어 무심코 문을 열었더니
“서프라이즈~~!! 해피벌쓰데이!!”
상냥한 미소의 직원이 눈을 찡긋하며 들고온 자그마한 케익과 샴페인을 내밀었다.
와..! 오늘 남편 생일인 거 까묵고 있었다!!!
농담으로 내가 시킨 거다 둘러대보려 했지만, 나 역시 서프라이즈에 너무 당황한것을 이미 들켜버렸다. 게다가 생일주간 놀러오면서 미리 준비한것이 아무것도 없어 부끄럽고 미안함이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언제쯤 준비력이 갖춰진 사람이 될까. 다시 태어나야 되나 ㅋㅋㅋ)
어쨌던 기분좋게 샴페인을 받았으니 이걸 다 먹고 나가기로 했다. 잠시 쉬기도 하고 풍경도 보면서. 시원하고 상큼한 샴페인은 금세 훌라당 먹어버렸다. 창밖이 생각보다 공사판 크레인 뷰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훨씬 좋아졌고 텐션이 많이 올랐다. !
기분이 꽤나 거나해진 채로 다시 길을 나섰다.
텐션이 상당히 올랐다. ! 낮술의 효과는 굉장하다!! ㅋㅋㅋㅋㅋㅋ
아까와 똑같이 지하철을 타고 하드락카페 앞 정거장에 내린 뒤 이번엔 알파마 언덕 반대쪽인 바이후알투 지구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아까전에 눈여겨봤던 트램이 그자리에 서 있었다. 분명 언덕 위로 올라가는 푸니쿨라같은 놈이렷다. 트램이 떠날세라 뛰어가 탔다. 앉을 자리는 없었지만 맨 앞 차장 바로 뒤 좋은 목에 자리를 잡았다. 오분 쯤 지난 후 트램이 움직인다.
실내는 대략 요런 분위기. 막상 출발하고 나니 위에 다다를 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이삼분? 언덕 경사가 심해 그렇지 아주 먼길은 아니었다.가끔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보다 아예 이렇게 급경사라도 숏컷이 좋은 것 같긴 한데, 물론 눈이 오지 않는 그런 동네여야 할 것이다 리스본이야 워낙 날씨가 좋으니까 눈걱정은 좀 접어둬도 되나. 그렇지만 정말 이상기온으로 눈이라도 한번 올라치면, 이 매끈한 돌바닥 타일 때문에 여기저기서 큰 사고가 많이도 날 것이다.
아센소르(=트램이름)가 내려준 곳에 또다른 전망대가 있었다. 그 전망대의 이름은 상 페드로 알칸타라 (sao pedro de alcantara ) 아까 알파마 지구에 있던 전망대와는 또 다른 뷰가 펼쳐진다. 아까는 가까워서 잘 보이지 않았던 리스본의 상징 ‘상 조르주 성’ 이 시원하게 모습을 드러냈고, 폼발부터 코메르시우광장까지 쭉 뻗은 도로가 한눈에도 짐작이 될법한 큰 스케일이었다. 그리고 물론 그 도로 끝에 펼쳐진 넓은 강변도!!
벤치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가운데 길게 난 흙길 사이로 가로수가 나란히 정렬해 있었다. 이곳은 왜인지 전망대 끝에 철창으로 가림막을 해놓아서 시원스런 느낌은 덜했지만, 그전 전망대들보다 사이즈가 좀 큰 편이고 구석에는 스낵바 같은 것도 하나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다들 좀 편안히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느낌
우리도 지나가다 있는 그늘진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서 좀 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둘이 나란히 앉은 사진을 부탁하기도 했는데, 새하얗게 날아가는 뒷 배경 때문인지 어둠의 자식들이 되어버리곤 어쩔 수 없이 사진 포기 -
중간중간에는 마치 롤러코스트타이쿤에 나올것만같은 멋들어진 원형 분수들이 있었는데, 이거 뭐 별것도 아닌것 같은데 어찌나 유럽감성 뿜뿜 하는지, 적당히 바랜색깔의 돌과 연꽃잎을 붙여만든것 같은 둥글둥글한 가생이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흔한 분수와 다른것은, 애프터눈 티에 내어온 층층히 쌓인 접시 같은 비주얼이었다. 뭔가 제기같기도 하고, 모니카같기도 한 그 고풍스런 무늬에 홀딱 반해버렸다.
이 나라 공원의 뷰는 분수와 동상이 다하는듯, 물론 부족함 없이 박혀있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와 벤치가 있어야 하는건 기본이다. 그 멋을 더해주는건, 반질반질한 바닥타일에 한번 더 감고 나가는 검은 돌 줄무늬들!!
전망대에서 슬슬 걸어내려 오면서 상로케 성당에 들렀다. 포르투갈의 독특한 문양인 탈라도라냐 양식이 화려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처음 보는 금박에 눈이 팽팽 돌아가 넋을 놓고 감상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 포르투에서 상 프란체스코 성당에 입성하여 탈라도라냐 끝판왕을 만나게 된다)
탈라도라냐는 포르투갈이 부유했던 시절, 넘쳐나는 금을 이용해 나무조각 베이스에 금으로 화려한(투머치가 생명임) 장식을 덧붙인 양식을 말한다.
금박이 찬란하게 빛나기보다는 좀 어두컴컴한 느낌이 있었는데, 아마도 전체가 금덩어리가 아니라, 나무에 금박을 씌운 것이기 때문일 거다. 세월이 지나면서 전체적으로 어두워진 느낌. 그리고 하나 더 특이한 건 마리아상 발치에 아기천사들이 많았는데, 머리만 떼어내서 표현한 것도 많았다는 것이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좀 무섭기도 하고.
유럽의 다른 성당과 확연하게 다른 점은 (상로크 성당이 포르투갈 어느 성당과도 다른점이기도 했다) 천장이 아치형이 아니라 네모낳고 판판했으며 그곳에 천장화가 그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시스티나 대성당처럼. 압도적인 사이즈는 아니었으나 편평하고 낮은 천장에 그려진 아담한 그림이 소박하고 안온했다.
벽타일은 아줄레주. 바깥은 흰색에 아주 심플해서 지나치기 십상인 성당인데, 안쪽이 이리도 화려하다니 인디아나존스의 진퉁 나무성배 같은 느낌인가.
길을 따라 더 걸어내려와 마주한 것은 카르무 성당이었다. 이곳은 리스본 대지진때 건물의 축만 남기고 나머지는 무너져 내려벼려서 지금은 그 뼈대와 안쪽의 박물관만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리스는 실제 가본적이 없지만, 사진이나 영상에서 늘 보던 것처럼 옛 양식의 기둥만 남은 것이 해봤자 얼만한 감동이겠냐 싶은 마음이 좀 있었는데, 의외로 파란 하늘과 마주하는 아치 회랑의 뼈대는 생각보다 오묘한 느낌을 주었다. 완벽하게 보존된 건물보다, 훨씬 장고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절로 느껴지는 세월에 조금 엄숙해지기도 하고.
안에 있는 페루의 미라니, 석관이니 유물들보다, 그냥 그 부서진 건물이 주는 느낌이 더 좋았다. 그래서 입장후에 모두들 한켠 계단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터키에서 한면만 남은, 그 셀수스 도서관이 난 참 기억에 많이 남았던 것 같은데, 그것도 이것과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러한 하늘과 조화된 미완성 건물은 바탈랴에서 또 끝판왕을 만나게 된다. )
카르무 수도원 옆으로 예의 유명한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가 붙어있다.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아래에서 타고 올라오는 코스가 아닌, 엉겁결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코스를 타게 되었다. 비바비아젬 카드로 탑승이 가능하다니,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적은 반대방향에서 예정에 없던 엘리베이터 맛이나 볼까 하고 기다려 보았다.
안에서부터 엘리베이터할배 같은 분이 나와 나무문을 드르륵 열고, 빗금진 철창을 허리춤 열쇠꾸러미를 동원하여 열어주었다. 내부는 꽤나 컸는데, 서넛씩 앉을수 있는 벤치도 양쪽에 있었고 안에 족히 20명은 탈수 있을 듯한 넉넉한 사이즈. 하지만 엘리베이터의 운행 시간은 고작 길어야 20초에 불과한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내려와서 보니 그리 허무할수가. 심지어 바깥도 그닥 잘 보이지 않는 반 불투명 엘리베이터였고, 끼긱거리는 모양새가 내게는 감성보다는 불안을 야기하는 그런 친구.
밖으로 내리고 나니, 꽤 많은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이 좀 안타까워보이기도 하고. 분명 타고 나면 엄청난 허무감을 느끼겠지.. 틀림없다.
augusta거리를 따라 걸어서 아치형 개선문쪽으로 향했다. arco da rua augusta라는 곳에 올라가서 저녁 노을을 좀 보기로 했다. 아까 엘리베이터 전망대를 올라가지 않았는데, 이곳을 향해 아껴두고 있었다. 코메르시우 광장 뷰를 위에서 꼭 보고싶었는데 , 언젠가 지나면서 봤던 인터넷 사진 중에 이 광장의 강쪽 뷰가 꽤나 멋졌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낮에도 좋지만, 저녁노을때 시간을 맞추면 꽤나 멋진 뷰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오르는 길은 좁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 끝은
사면벽 광장은 유럽대륙 어디에나 있지만, 바다같은 강을 마주한 광장은 처음이었다.
내가 가진 카메라론 도저히 한 화각에 찍을수 없다. 180도 장엄함은 맨눈으로 봐야됨 ㅜㅜ
후면에는 아까 걸어온 그 길이 쭉 뻗어있다. 이쪽을 바라보는 것 역시 절경.
6유로였나. 이 가격은, 이날 썼던 모든 비용중 최고의 값어치였다. 정말 이곳에서 보았던 광장의 풍경과 바람과, 노을지는 사방의 풍경이, 그 어느 도시에서 만났던 저녁무렵과 비해도 견줄만 하였다.
이래저래 코메르시우광장은 리스본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공간으로 나에게 각인되었다. 그 세련된 마름모꼴 무늬, 우뚝 서있는 동상, 그리고 삼면이 웅장한 광장의 벽이지만, 한쪽에 넓디넓게 펼쳐진 강변의 시원스러움. 마치 바다라고 해도 믿을만큼 탁트인 공간. 사진을 찍고찍고 또 찍어도 계속 찍고 싶었다. 하하
한편으로 상 조르주 성도 보이고 -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우리 말고 한 대여섯명정도 더 있었던가. 기껏해야 가로세로 한 20여미터 되는 지붕위 공간에서 거의 한시간을 내려올 줄을 몰랐다. 앉을 곳도 없고 대단한 것도 없었지만 그저 기대서서 바라만 보는 것으로 충분한 곳이었다. 코메르시우 광장을 찍고, 뒤에가서 augusta거리에 쭉 켜진 조명과 반짝거리는 바닥 타일 무늬를 찍고 감탄하고 또 코메르시우 광장을 찍고 또 서서 바라보고 무한 반복 -
뒷쪽 거리는 정교하고 모서리 촘촘히 들어찬 무늬의 바닥 타일 덕분에 마치 거대한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내려다보는 느낌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마치 이 세계가 하나의 궁전과 같은 느낌으로 보이는 기분.
포르투갈을 두고 남편은 세상 끝의 감성이라는 말을 했다. 언젠가 유럽사람들이 말했을것 같은 말. 이길 끝으로 가면 이런 도시가 있대. 거긴 말이야. 이런 광경이 있대. 이런 노래가 있대. 그런 전설 같은 느낌의 도시.
그중에 하나가 코메르시우 광장일 것이다. 거대한 도시사이에 마침내 나오는 광활한 바다와 파도물결. 그리고 그 바다로 나아간 사람들을 바라보며 만든 활발하지 않은 노래. 조금 슬프고 처량한 노래
그런 구전되는 이야기와 노래자락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마치 어디선가 금세라도 들릴 것 같은 기분.
광장에서 내려올때 쯤에는 진심으로 거듭 충만한 마음이 들었다. 이 광장에 오게 된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아까 위에서 보았던 그 아름다운 조명이 켜진 양탄자 같은 거리를 걸으며, 염소치즈빵을 하나 사먹었다. 정처없이 걸어만 다녀도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노을을 다 보고 내려오니 저녁식사 시간을 놓쳐버렸고, 식사를 위해 원래 가려고 예정했던 타임아웃 마켓에 가려니 핸드폰 밧데리도 간당간당에 날씨가 추워서 어쩔 수 없이 숙소에 들렀다 가기로 하였다.
버스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와 물건을 챙겨나왔는데 너무 오랜시간 무리해서인지 몸이 좀 으슬으슬한가 고민되는 사이, 밧데리는 갖고 나왔으나 충전줄을 안가져온 남편의 귀여운 실수에 우리는 발길을 돌려 그냥 숙소 근처에서 적당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나호텔이 바로 마주보이는 건너편 옹기종기 모인 식당들 중 케밥을 발견하고는, 신이나서 플래터 두개를 시켰는데, 수퍼복(맥주1)과 사그레스(맥주2)가 각각 1.5유로씩밖에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포르투갈 물가를 실감하였다.
조금 추운듯도 했지만 역시나 노천에서 먹는것이 제맛이라. 길가쪽 플라스틱 테이블을 점령하고 맥주를 먹는 사이 밤은 깊어지고, 쌩쌩 달리는 차량의 매연이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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