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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Portugal

포르투갈 10 - 바탈랴, 미완성의 미학

오후 1시가 좀 넘은 시각. 카스카이스를 떠나 북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바탈랴를 들렀다가 아베이루까지 가는 여정. 출발할 때 네비에 바탈랴를 찍었더니 150km가 나왔다. 카스카이스에서 리스본 근처로 돌아가 북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탈 것이다.

산이 없어 어색한가, 우리나라랑 뭔가 다른 분위기

포르투갈은 우리나라(99천km2)와 비슷한 면적(92천km2)에 비슷한 위도에(북위 39도) , 심지어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북동쪽에 비교적 높은 산맥이 있고 서쪽으로 서서히 산맥줄기가 뻗어있는 구조까지도.

우리는 리스본 남쪽과 포르투 북쪽을 포기하고 대략 리스본(in) -> 포르투(out)로 북상하는 여행을 짰는데 , 그 중 오늘이 가장 긴 거리를 이동하는 날이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곧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산이 높지 않아서 그런지, 토목기술이 달라 그런지, 포르투갈은 고속도로에 터널이 별로 없고 좌우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가는 길의 연속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운전자가 졸음운전할 틈이 없는 길이랄까.

리스본 도시 북쪽경계에 높은 산을 하나 넘으니 롤러코스터를 타듯 쭉 내려가는 길에 좌우에 구리색 지붕들이 가득한 길이 나온다. 이것이 수도권의 빽빽한 베드타운인듯. 우리나라와는 사뭇다른 풍경의 밀도가 신기한 한편, 360도 펼쳐지는 가득한 동화속 집들의 향연에 압도되었다. 비행기도 아니고 고속도로에서 이런 광경을 목격하게 될줄 몰랐다. 동영상을 미처 못 찍은 것이 아쉽네 ,, 이런길이 나올줄 알았나.

오늘 중간 목적지인 바탈랴에 도착!

고속도로에서 미처 빠져나오기도 전에 누가봐도 이것이 명물인걸 알아챌 수 밖에 없는 거대한 위용의 건물이 등장했다. 높은 건물이 많이 없는 도시인지라 높이만으로 압도했을 뿐 아니라, 검은 이끼들이 낀 벽돌들의 중후함이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거대한 수도원의 규모에 비해 바탈랴는 자그마한 시골 같은 느낌이었다. 도착한 것이 오후 3시쯤 되었는데, 한껏 달아오른 대지에 잎이 많이 달린 고목들이 흔들리는 수도원의 모습은 시대를 잊게 만드는 타임머신 같은 느낌. 건물이 만들어낸 그늘에 들어가 그냥 여기에 자리깔고 누워서 하루만 빈둥거리며 보내면, 내가 어느 세계에서 뭐하다 왔는지 죄다 잊어버려도 좋을만큼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수도원 입구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해바라기모양의 스프링쿨러 장난감을 팔고 있었는데, 물분사헤드가 해바라기 머리에 달려 미친듯이 춤을 추는 모양이었다. 유리박스에 넣어놓은 그 춤추는 해바라기는 쳐다보면 누구라도 웃음이 날정도로 장난스런 장난감이었는데, 그 넓디넓은 조용한 길가에, 그 몇백년전 수도원 앞의 묘한 분위기와 섞여 이상한 위화감을 주었다.​

의아할 정도로 너무나 큰 수도원의 사이즈에 비해 사람이 너무 없는 거리도, 수도원과 마을사이에 미세하게 흐르는 어색한 공기도, 수도원 벽 조각들이 이미 검게 변해버린 것도 모두 뭔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게 했다. 

 

 바탈랴의 첫인상은 아무래도 기둥 같은 곳에 수수깡으로 단을 만들어 덮어 씌운 것 같은, 저 알수 없는 부분이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 건축 구조상으로도 보수적일 것이 분명한 수도원이라는데 흔히 보는 좌우대칭도 아니고 구조물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마치 건물 외벽을 계속 꾸역꾸역 덧붙인 것 같은 그런 느낌. 이스탄불의 하기아소피아를 처음 볼 때 같은 그런 알수없음??

 

이리저리 둘러봐도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 그러니까 처음 보는 모양새의 건물이었다. 보통 유럽 성당이 가지고 있는 탑 두개와 성당, 내부 아치, 플라잉버틀라스 등 알고 있는 구조로는 담을 수 없는 모양. 밖에서는 감히 안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복잡한 모양새에, 그 높이, 그리고 그 수도원이 가진 경계(수도원과 다른 건물 사이에 떨어진 공간)만으로 밖에 있는 일반인들이 얼만큼 위압감을 느꼈는지 알만하였다.

포르투갈의 중부에는 유명한 수도원이 세곳 있는데 1) 토마르 2) 알코바사 그리고 3) 바탈랴이다. 오랜 세월동안 내노라하는 왕들이 포르투갈 영토싸움에서 승리하고 신에게 공을 돌리기 위해 건설한, 거대한 규모의 역사속의 수도원이다. 그 중 바탈랴는 카스티야(스페인 동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주앙1세가 만든 수도원이다. 바탈랴라는 이름은 포르투갈어로 '전투'라는 뜻이라고 한다. 

일정상 세군데를 들르기가 어려워 한곳만 골라야 했는데, 그중에 바탈랴의 수도원이 가장 인상적이라는 사전 정보를 접해서 이곳을 고른 터였다. 뭐 다른 곳은 결과적으로 들르지 않았으니 모르겠지만 이런 건물이라면 어떤 품을 들여서라도 보고 갈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원 정문이 어딘지를 몰라서 한참을 헤메였다. 출구로 보이는 듯한 곳 두군데에서 (입구아님) 빠꾸를 맞고 건물을 돌아서 겨우 입구를 찾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실내로 들어서니 익숙한 모양의 성당이다. 십자가모양을 한 내부공간. 십자가의 긴 마디 쪽으로 뻗어있는 미사객들의 의자.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들어온건 십자가의 짧은 마디쪽이다. 맙소사 거대한 규모에 좌우 쪽문을 정문으로 착각했다. 아 이건 어디선가 경험했었던 쎄한 느낌..? 생각이 났다. 러시아의 엠게우(모스크바 국립대학교)가 그랬었다. 미친 규모로 인해 사람을 바보만드는 건물.

정문으로 다시 나가서, 정문샷을 찍으려는데, 걸어가도 걸어가도 한 프레임에 담기 힘든 그런 느낌 오랜만에 들었다. 완벽한 대칭구조의 건물이 아니라서, 그게 더 좋았다. 예쁜 건물이다.

이곳은 한마디로 복합 종교시설이다. 하나의 교회와 두개의 중정, 왕실의 무덤과 대예배당이 하나의 수도원 안에 모두 몰려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기에는 너무나 압도적인 규모에 놀랄수밖에. 

 

정문에 오니 티켓을 판다. 바탈랴 수도원의 티켓은 6유로. 성당출입은 무료이고 일부 유료입장 구간이 있다. 이곳에 오니 나까지 시간을 잊는 기분이라서 바쁘게 가던 길은 잊고 좀 느슨해졌다. 거대한 관광명소이지만 사람이 꽤나 적은 편인 걸 알게되니 나 스스로가 흔한 관광객 중에 특별히 이곳을 선택한 관심과 의지가 있는 이가 된 기분이다. 그러려면 오롯이 이곳을 느낄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된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들게 된다.

성당 정문 옆에 붙은 첫 장소는, 포르투갈의 역대 왕들이 가족묘로 묻혀있는 무덤구역이다. 항해왕 엔히크의 무덤도 있다.  이름이 '설립자들의 예배당' 이라고 붙은 이 장소는 무덤구역이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밝고 화사하고 안온한 공간이었다. 황금으로 치장하고 어두컴컴한 성당들과는 달리 그냥 고요하고 웅장한 느낌. 아마도 돌의 색깔이 화강암 계열의 밝은 돌들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의 카렐 성당도 그랬고 실내가 밝은 성당들은 돌의 영향과 채광의 영향이 큰 듯하다.

무덤을 구성하는 돌도 거의 흰색에 가까운 색깔. 거기에 정교한 조각들을 해놓고, 생전의 모습을 조각하여 자리 위에 올려놓았다. 미라처럼. 

특히 저 천장! 천장이 엄청나게 높고, 스테인드 글라스 창을 빼곡하게 둘렀으며 맨 위는 마치 별을 보는 것 같이 반짝거리고 아름답게 마무리지었다. 이슬람의 느낌이 살짝 배어나오는 섬세한 레이스 같은 조각(돌로 레이스라니 말이 쉽지) 과 팔각형 구조가 작지도 크지도 않지만 너무나 완벽하다.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도 다른 어떤 곳보다 명확한 그림체와 색깔로 장식되어 있었다. 어지간한 스테인드 글라스에 눈길을 잘 안주는 나인데, 이것 역시 놀라운 수준이라는 직감이 든다.

 더 놀랄공간은 성당 내부가 아니라, 성당옆에 붙은 카를5세의 회랑이었다.

작지 않은 규모에 산뜻하게 자리잡은 그 초록색 정원도 정원이지만, 그 네모난 정원을 둘러싸고 회랑을 칭칭 장식한 기둥과 건물의 세부 조각들이 압권인 곳. 장식의 정식 명칭도 있다. ‘마뉴엘 양식’ - 포르투갈의 눈돌으가는 장식물은 다 요놈이다. 혼천의, 식물줄기, 방패문장 등등으로 어지럽게 늘어놓은 장식이 기둥마다, 천장마다 가득하다.​

이런 회랑 구조는 이슬람에서 온 것인지 궁금해진다. 예전에 스페인에 갔을때 좀 본 것 같고, 다른 동 서유럽에서는 별로 본것같지가 않네.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때도 그랬지만 (사실 두 회랑은 포르투갈 회랑 유산의 두 대표주자이기도 함) 복도를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힐링이 될만큼, 그자체로 좋은 공간이었다. 이곳에 한번 들르고 다시는 올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뿐.

마침맞게 복도로 조금 비춰 들어오는 빛이 오후나절의 기울어진 햇빛이라서 사각의 회랑 난간에 걸처앉아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보았다. 아무것도 안하고 서있기만 해도 훌륭한 배경이었다. 푸른 녹색의 잘 정리된 정원이 인위적이라고 해도 사실 너무 예뻤던 것만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었다.

화려한 회랑을 지나 두번째 회랑으로 들어섰다. 이번엔 조금 소박한 회랑이다. 아까의 카를5세 회랑도 본래는 이런 모습이었을 텐데, 왕가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점점 화려해지다 저렇게 되었겠지. 보통은 소박한 것-> 화려한 것으로 마무리하는 관람순서가 여기선 거꾸로 되어있어 좀 의외였다. 그렇지만, 가이드북에는 '화려함의 극치를 맛보다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을 맛보게 될 것이다'라고 애써 포장해놓았다. ㅋㅋㅋ

성당까지 보고 돌아나왔는데 티켓에 귀여운 색깔 도장을 찍어주던 안내하시는 스텝 아줌마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눈을 찡긋한다. 이 건물을 따라 쭉 돌아가면 하나 더 나오는 공간이 았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그 마지막 공간이 바로 우리가 처음에 입장하려던 (빠꾸맞은) 공간이었다. 그늘진데, 정말 창고같이 한적하고 외딴데 있는데 , 이곳이 다름아닌 바로 바탈라 수도원의 하이라이트!

사전 정보가 없었던 우리가 표를 내밀고 무심코 들어간 곳은 , 정말이지 일초만에 탄성이 튀어나오는 곳이었다. 각종 조각으로 빼곡하게 덧대어 압도감을 자아내는 기둥 뒤에 탁트인 팔각기둥 , 그리고 위에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푸른 하늘이 나타났을 때의 그 감동!

 아 - 이런걸 두고 정말 '형용할 수 없는' 이라고 해야하나 싶다.

때마침 지나간 새 한마리가 마지막 점을 완성

이곳의 기둥들도 마뉴엘장식을 따르고 있다. 미친듯이 화려한 가운데 난데없이 뻥 뚫린 하늘이 너무 희한하여 충격적일수밖에.

어떠한 연유로 (아마 성금 모집이었던 것 같다) 멈춘 성당 공사. 굵은기둥에 새겨진 조각들은 민낯으로 햇빛을 맞아 찬란히 빛났고 그 위를 까마귀 몇마리가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녔다. 식물 줄기를 새긴 마누엘 양식 때문인지 아주 거대한 잭과 콩나무 줄기가 하늘을 향해 자라다가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진에 사람을 같이 찍으니 규모가 실감이 났다.

누구라도 넋놓고 쳐다보게 될걸

이곳, 일명 미완성 수도원을 마지막으로 바탈라 수도원은 끝이 났다. 이 현실감 없는 도시와 현실감 없는 건물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분명 인상이 많이 남을 것 같다. 정적속에 고고한 건물 그리고 극적으로 순수하던 하늘과의 대비. 이곳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만한 이유이다.

 바탈랴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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