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목적지는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이다. 춘천에서 못다이룬 설산 절경의 꿈을 인제에서 이뤄보리.
춘천에서 인제는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국도를 탈수도 있었지만 눈도 오고 하여 무서움을 타는 나를 위해 조금 더 넓은 길을 택했다. 고속도로를 거쳐 44번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장관을 구경하면서 자작나무숲 주차장에 도착한 건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자작나무숲은 2시 이후에는 입산 통제를 한다고 하여 서둘렀다. 도착도 전에 숲으로 향하는 고개를 넘으며 차도 사이로 늘어선 하얗게 내려앉은 나무눈꽃에 일찌감치 감탄의 역치를 넘어섰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아서 산에 가본지도 오래인데, 그것도 겨울 산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거의 뭐 학창시절에 오르고 처음인 듯?
만석인 주차장에 겨우 자리를 비집고 찾아 주차를 하고 오랜만에 챙겨온 DSLR 카메라를 크로스로 메고 패딩에 마스크까지 단단히 대비를 하고 차를 나섰다. 장갑과 모자가 없는 것은 벌써 후회가 되기 시작한다.
눈발이 날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입구에는 눈오는날은 아이젠 없이 오를수 없다고 외치는 상술인지 진심인지 모를 아이젠 상인들이 몇몇 진을 치고 있었다. 반신반의 하던 우리 둘은 , 그는 상술쪽에 나는 진심쪽에 사이좋게 각각 걸어보기로 했다.
노란색 바리케이트를 입구를 지나니 곧장 나타난 오르막 경사.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높고 길게 이어진 경사였다. 게다가 눈이 이미 쌓여있고, 또 계속 오고 있어서 발걸음이 더욱 더뎠다.
그러나 가파른 오르막길 힘듦을 잊어버리게 하는, 눈길을 잡아끄는 설경.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힘들어 쉬었다 가는게 아니라 사진 찍기 위해 멈췄다 올랐다 했다. 어디를 어떻게 찍어도 온통 하얀 눈꽃이 가득한 풍경이 놀라웠다.
주차장으로부터 자작나무숲까지는 약 3km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초반 1.5km가량은 가파르게 'ㄹ'자로 굽이굽이 오르는 언덕이었고, 반절이 좀 넘어가니 능선을 따라서 평지구간과 내리막이 나타나기도 했다.
사실 등산에서 가장 불편한 것중 하나가 좁은 길 때문에 줄지어 가게 되면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올라가게 되는 것인데, 중간중간 비켜주기도 좁고 불편한 것. 그러다보니 오르는 사람들 속도를 신경쓰고, 풍경감상과 사진은 커녕 쫒기듯 드나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차도 넉넉히 올라갈 수 있을만큼 넓게 조성해놓은 길이라 일단 합격!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각자 자기페이스에 맞게 올라갈 수 있을만큼 넉넉한 폭이었다. 덕분에 중간중간 설경을 만끽하며 슬렁슬렁 올라갔다.
짠! 그리고 드디어 나타난 자작나무 군락.
그간 고동색 나뭇가지에 쌓인 눈으로도 숨이 멎을뻔 했는데, 가지까지 하얗게 생긴 나무들은 더욱더 청초함을 뽐내고 있었다. 누구라도 분명 이곳에 막 도착하면 탄성을 지를 것이다.
자작나무를 본격 영접하고 핸드폰을 꺼내 함부로 동영상을 찍다가, 40% 가까이 남아있는 배터리가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추위에 쥐약인 아이폰 같으니. 정작 자작나무숲에 왔는데 왜 찍지를 못하니..
어쩔 수 없이 DSLR 카메라를 꺼내들고 찍으려 했는데 양손이 너무 얼어서 손가락이 잘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겨울풍경 찍으려 카메라를 가져왔는데 장갑은 없다면 제 기능의 반도 못한다는 걸 입산 초장부터 깨달은지 오래다. 처음엔 언덕을 오르느라 춥지 않고 후끈후끈 했는데, 어느새 칼날같은 추위가 엄습한다.
그렇지만 추위 정도는 너끈히 감내해볼만한 환상적인 뷰가 여기. 말잇못...🤭
자작나무숲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그 감동은 솔직히 몇배 이상이었다.
이런 분위기, 한국 뿐 아니라 여행다녔던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독보적인 감성이다.
무엇보다, 자작나무 숲 한가운데 들어와 하늘을 올려다보았을때, 그 자잘한 가지 사이 하나하나 예쁘게 칠해진 하얀 선들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 귀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추운데 포근하다니 미쳤다고 할것 같지만, 정말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소복하게 쌓이는, 그리고 내리거나 날리는 눈이 내 주위 모든 공간에 360도로 펼쳐지는 건 정말 색다른 느낌이었다. 다른 공간 다른 세계에 접속한 느낌?
서울에서 눈이 많이 와 좀 쌓인다 해도 건물 지붕과 길에 몇센티 층을 이루는 2차원의 느낌이라면, 이건 발끝부터 내 몸 전체를 둘러싼 3차원의 공간 뿐 아니라 손이 닿지 않는 저 하늘 끝까지 온통. 빙글빙글 돌아도 무엇이든 눈으로 가득찬 그런 세계.
나를 핀셋으로 집어서 그 동화 속 세계에 쏙 내려놓은 그런 느낌이랄까.
완벽하게 새로운 세계를 만난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 모두 인제로 달려가 숨이 멎는 그 아름다운 세계를 경험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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