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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Culture

버닝





영화를 보며 항상 의미를 찾아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책과 영화에 의식있는 선별도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은 사실인데, 유희로서 책과 영화를 소비하는 것 이외에 어떤 사회적 메시지 같은 것들을 나 역시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일정부분 소화해야한다는 그런 희미한 책임감 같은게 있기 때문이었다. 사회적 문제를 던지는 영화를 보며 그 메시지를 대중의 화두로 올리고, 그에 대한 내 의견을 피력하며 세상을 다양한 각도로 보는 그런 역할이라는게 나름 있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의외로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많이 불편했다. 그건 이 영화가 갖는 이념적인 어떤 의미를 떠나서 , 그냥 영화를 보는 내 마음이 불편하고 찜찜해지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는 것이다. 

혼자본다면 혼자인대로 괴상한 꿈을 꾸는 기분 같은 것, 누군가와 같이 본다면 또 같이보는대로 그런 회색톤의 영상과 찜찜한 열린 결론을 함께 안게 된다는 것도 불편할 것이다. 반대로 맑고 밝은 영화를 누군가와 함께 보는 것,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보면 추구하는 바가 같다.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를 누군가와 같이 본다면 아마 그 영화의 푸르고 꾸밈없는 자연을 보며 함께 생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정확히 그 반대의 지점에 서있다고 보면 되나. 부정적인 어떤 것은 이야기도 꺼내기싫은것, 그냥 좋은 것만 함께해도 시간이 부족한 그런 것 말이다. 


생각해보면 딱히 엄청난 사회적 문제라기보다는 청춘들의 답답한 현실에 대한 시선 정도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느리게 흘러가는 영화가 그 답답함을 한층 부각시켜주었고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와 텔레비전소리, 거리의 소음은 영화속에서도 참을수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나저나 종수의 꿈속에서 비닐하우스가 타던 장면은, 어지간한 호러영화보다도 무서운 잔상을 남겼다. 그 활활 타오르는 비닐하우스의 불길 속에서 누군가 몸에 가득 불을 붙인채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올것 같았다. 
가장 좋은 장면은 노을빛에 해미가 웃옷을 벗고 날아가는 새를 표현하기 시작하며 춤을 추던 장면인데, 나는 그 장면이 너무도 좋아서 아마 두시간내내 그걸 돌려 튼다해도 지루하지 않게 빠져들어 볼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자유로운 몸짓에 종수는 왜 창녀처럼 아무데서나 옷을 벗냐 했지만, 사실 나는 그녀의 그 몸짓이 너무 좋았을 뿐 아니라, 벗어던진 그 마음도 너무 좋았다. 사회적 관념을 덮어씌워 그렇지, 사람의 몸은 나체가 가장 솔직하고 아름다우며 사회적으로 허락만한다면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내두면 좋겠다는 급진적 견해를 다시한번 맘속으로 재확인했다 할까.

독특했지만, 다시 볼 생각이 들지는 모르겠다. 올드보이를 보고 나왔던 날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내 영화안목과 취향이 조금씩 뚜렷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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