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브라더의 눈
어렸을 때, 손가락이 날 향한 포스터에서 왼쪽 오른쪽 자리를 옮겨봤던 사람이라면 이 그림을 이해할 것이다.
어디를 가도 날 따라다니는 시선, 그 손가락 끝
작가가 이 책을 쓴 1949년에서 한 세대쯤 뒤인 1984년은, 즉 언젠가(미래)의 시점이다.
내 주변 많은 누군가에게는 탄생년도인 1984년엔 이토록 무서운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는 조지 오웰의 짐작은
놀랍도록 섬칫하다.
#감시
'담임이 지켜보고 있다'라는 교훈이 유행한 적도 있었더랬지.
어찌됐든 나도 모르게 감시당한다는 것만큼 소름끼치는 일도 없다.
이 이야기는 '감시와 통제'라는 상황에서 모든 전제가 출발한다.
감시의 도구는 내가 가는 장소마다 내 행동과 소리를 감지하는 텔레스크린, 소형마이크, 사상(심복)경찰
조직이자 통제의 중추인 당은 마음껏 증오를 발산할 '적'의 실체와
그 적에게 모두가 일제히 분노를 퍼붓는 증오의 시간(증오주간)을 만들어 내부의 결속을 공고히 한다.
지배계층이자 상위계급인 당원 생활을 하면서,
주인공 윈스턴은 한 순간 얼굴을 스치는 망설임조차 그들에게 읽힐까 두려움에 떤다.
당은 동료와 친구와 가족에게까지 비밀신고제를 만들어 철저히 고립된 개인을 만들어낸다.
#증발
"당신은 어제를 비롯한 과거가 깡그리 지워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직 과거가 어딘가에 남아있다 하더라도 그건 저 유리덩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는 물체일 뿐이야. 이미 우리는 혁명 당시와 그 이전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모든 기록은 폐기되거나 날조되었고. 책이란 책은 모두 다시 쓰여졌으며, 모든 그림도 다시 그려졌어. 또 모든 동상과 거리와 건물에는 새 이름이 붙었고 . 역사적인 날짜마저 모두 새롭게 고쳐졌지.물론 이런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행해지고 있어. 한마디로 역사는 정지해버린거야. 이젠 당이 항상 옳다고 하는 이 끝없는 현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물론 나는 과거가 날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나 자신이 날조행위를 하면서도 내게는 이것을 증명할 길이 전혀 없어. 일단 날조되고 나면 그 어떤 증거물도 남아 있지 않게 되니까. 결국 유일한 증거는 내 기억속에 남아 있을 뿐인데. 과연 사람들이 내 기억을 믿어주기나 할까?"
내 동료가 어느날 증발해버려도 그 동료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 희미한 생각만 남아있는 상태로
계속해서 그 친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상황.
아는게 너무 많아서 증발을 예상한 친구, 어느날 정말로 사라진 친구
그리고 그러한 존재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한편'임을 확인하는 놀랄만한 장면.
주인공이 일하는 기록국이 하는 일은 더욱 놀랍다.
과거를 하나씩 하나씩 지워가는 치밀한 작업.
# 이념과 본능
인간은 때에 따라서 의식적으로 증오의 대상을 바꿀 수 있다. 윈스턴은 악몽으로부터 깨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갑자기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면서 증오의 대상을 스크린의 얼굴에서 뒤에 있는 검은머리의 여자로 바꾸었다. 순간 생생하면서도 아름다운 환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 그는 이제야 왜 그녀를 그토록 증오하는 지 좀 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그녀를 증오하는 것은 그녀가 젊고 아름다운데다 섹스에 무관심하기 대문이었다. 그녀와 동침하고 싶지만 절대로 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양팔로 안아달라는 듯 매혹적이고 나긋나긋한 허리에 순결의 상징인 역겨운 진홍색 띠(당을 상징)가 감겨있기 때문이었다.
....
"전에도 이런거 해봤어요?"
"그럼요, 수백번, 아니 수십번 해봤어요. "
"당원들하고요?"
"네, 늘 당원들하고였어요."
그의 가슴이 뛰었다. 당원들과 수십 번이나 그짓을 했다고? 차라리 수백번, 수천번이었으면 싶었다. 그 어떤 것이든 당원들의 부패를 암시하는 것을 듣거나 볼때마다 그의 내부에서는 강렬한 희망이 솟구쳤다. 당이 그 내부에서부터 썩고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이봐요, 당신과 관계한 남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당신을 더욱 사랑할 거에요 내말 이해하겠어요?"
"네, 이해해요."
"나는 순결도 증오하고 선도 증오해요.어떤 곳에도 도덕이니 덕성이니 하는 것들이 존재하길 바라지 않아요. 나는 모든 사람들이 뼛속까지 썩기를 원해요. "
"그럼 저 같은 여자가 당신에게는 꼭 맞겠군요. 저는 뼛속까지 썩었어요. "
"당신은 이런 짓을 좋아해요? 꼭 내가 아니더라도 할 만큼 행위 자체를 좋아하느냐 이 말입니다. "
"네, 무척 좋아해요. "
윈스턴이 고대하던 대답이었다.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닌 무차별적인 단순한 욕망. 상대를 가리지 않는 동물적 본능. 이런 것들이야말로 당을 산산히 부숴버릴 수 있는 힘이었다. ..섹스는 사랑의 행위이기 전에 당에 일격을 가하는 정치적 행동이었다.
난생처음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분야에 대하여
차분하게 설명하는데도 무서운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하는 조지오웰의 놀라운 능력.
# 같은 패배여도 더 나은 패배가 있는 법이야.
"왜 밀어버리지 않았어요? 저 같으면 그렇게 했을 거에요. "
"그랬겠지 당신 같으면 밀어버렸을거야..나 역시 지금의 나라면 그랬을거고.. "
"밀지 못한게 후회돼요?"
"그래. 후회돼."
그녀는 젊고 그런 만큼 삶에 대해 아직 기대하는 것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못마땅한 사람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했더라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
"그럼 왜 밀지 못한 걸 지금에 와서 후회하죠?"
"그건 단지 소극적인 것보다는 적극적인 것을 택했으면 하는 심리가 작용한 탓이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금 벌이고 있는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어. 하지만 같은 패배여도 더 나은 패배가 있는 법이야. "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조지오웰의 문체가 나와 꽤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요새같은 트렌디한 느낌은 아니지만, 거친 필체조차 멋이 느껴질만큼 그의 문장은 힘이 있다.
그의 자서전 WHI I WRITE 도 구석구석 꽤 맘에 들었던 걸 보면,
나도 드디어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는 건가 !
# 공포라는 건, 두려움에 있다.
"우리는 육개월쯤 더 같이 지낼 수는 있겠지. 아니 어쩌면 일년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하지만 결국 우리는 헤어지게 될거야 줄리아 완전히 혼자가 될 때를 생각해봤어? 그들에게 잡히기만 하면 나나 당신이나 서로를 위해 아무것도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거야. 오히려 해가 되겠지. 내가 자백하게 되면 그들은 당신을 총살할거야. 설령 자백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당신을 총살하기는 마친가지일거고 우리는 서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게 돼. 그저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는 거지. 단 한가지 중요한 건 우리가 서로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야. "
"자백같은 건 안 할 수 없어요. 누구든 결국엔 자백하고 말거에요. 당신도 마찬가지죠. 그들이 고문을 할테니까."
"나는 자백을 말하려는 게 아니야. 자백은 배신이 아니지. 중요한 건 감정이야. 예컨대 그들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그게 진짜 배신이란 얘기지. "
"그렇게 할 수 없을 걸요,. "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한가지 있어요. 그들은 당신이 무엇이든 말하게끔 할 수는 있지만. 믿게는 할 수 없어요. 당신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으니까요. "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사람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지 만약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게 가치있는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록 대단한 성과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패배시키는 셈은 되는 거야. "
고통 그 자체만으론 충분치 않네. 인간이란 죽을 고비를 만나더라도 고통을 참고 버티어내는 경우가 있지. 그러나 누구에게나 참을 수 없는 .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것이 있게 바련일세. 그건 용기나 비겁함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 만약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다가 밧줄을 잡는다면 그건 비겁한 짓이 아니네. 깊은 물속에서 나와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고 해도 비겁한 짓이랄 수 없고 말일세. 그건 단지 본능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행동일 뿐이지. 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네. 자네에게는 쥐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이지. 그것들은 자네가 아무리 저항하려 하도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압력인 셈이네.
인간의 성찰도 사랑도 모두 무너진다.
101호실. 한 인간이 마음 깊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공포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궁극의 공포.그 칠흑같은 어둠을 끌어내어 서서히 망가져가는 과정을
너무도 섬세하게, 명확하고 잔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너무 무섭다.
그렇게 치밀하고 조직적인 공격에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 견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무섭다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