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당근 같은 건 남겨도 상관없단다"
이 말을 보고 책장을 넘겨 읽기 시작했다.
난 당근 좋아하지만, 당근 싫어하는 사람이 은근히 많더라고.
조금 더 자유롭게 살라는 작가의 잉여마인드가 전반적인 책 속에 녹아있었다. 젊은 청춘에 무얼하든 상관없지만 너무 틀렸는지, 쫄거나 지나치게 움츠러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그런 이야기.
거창하게 이렇게저렇게 살아라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기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공감을 하든말든 상관 없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칭 한량인 김중혁씨는, 역시 자칭 한량이라 칭하는 나 외 기타 몇몇 내 친구들과도 비슷했다.
'뭐라도 되겠지' 라는 제목은 그 마인드의 정점이다. 아놔 나중에 진짜 혹시라도 내가 책을 낼 일이 생겨서 제목을 지었는데, 누군가가 '그래, 니가 낸 책 이름이 뭐냐?' 라고 물을 때 '뭐라도 되겠지'에요. 라고 하면, 참 왠지 민망할 것 같은데. 작가는 진정 이러한 질문에서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림을 그리는 건, 언젠가 꼭 하고 싶은 일중에 하나인데, 이렇게 그냥 여백에 끄적거리는 일처럼 간단한 일로 시작하는 건 어떨른지. 이렇게도 안 하면서 나중에 '정식으로' 또 단단히 마음먹었다 풀렀다 그러겠지 난 분명히. 미적 소질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유머스럽다는 건 참으로 괜찮은 미덕이다. 나는 뒤늦게야 깨닫고 있는 이녀석. 삶은 고苦 라지만 조금 더 웃으면서 살 수 있다. 마음을 조금만 더 여유롭게 가지면. 웃음이 웃음을 주고 우리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것 같으니. 그리고 미소 말고, 진짜 뒷통수를 때리는 기발한 생각과 센쓰는 한 인간의 HP 자체를 늘리는 마법같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제일 재밌던 건 8중혁과 38길동이었는데
나는 무슨 단위로 쓰면 좋을까 ? 이건 한번 친구들과 떠들어보면 재밌을 것 같다.
작을 수록 오차범위가 줄어든다니, 나만이 특징적으로 '적은' 분야가 뭔지 찾아봐야지.
우훗
아래는 에세이 중 좋았던 부분들 (완전 개인취향)
이 말을 보고 책장을 넘겨 읽기 시작했다.
난 당근 좋아하지만, 당근 싫어하는 사람이 은근히 많더라고.
조금 더 자유롭게 살라는 작가의 잉여마인드가 전반적인 책 속에 녹아있었다. 젊은 청춘에 무얼하든 상관없지만 너무 틀렸는지, 쫄거나 지나치게 움츠러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그런 이야기.
거창하게 이렇게저렇게 살아라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기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공감을 하든말든 상관 없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칭 한량인 김중혁씨는, 역시 자칭 한량이라 칭하는 나 외 기타 몇몇 내 친구들과도 비슷했다.
'뭐라도 되겠지' 라는 제목은 그 마인드의 정점이다. 아놔 나중에 진짜 혹시라도 내가 책을 낼 일이 생겨서 제목을 지었는데, 누군가가 '그래, 니가 낸 책 이름이 뭐냐?' 라고 물을 때 '뭐라도 되겠지'에요. 라고 하면, 참 왠지 민망할 것 같은데. 작가는 진정 이러한 질문에서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림을 그리는 건, 언젠가 꼭 하고 싶은 일중에 하나인데, 이렇게 그냥 여백에 끄적거리는 일처럼 간단한 일로 시작하는 건 어떨른지. 이렇게도 안 하면서 나중에 '정식으로' 또 단단히 마음먹었다 풀렀다 그러겠지 난 분명히. 미적 소질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유머스럽다는 건 참으로 괜찮은 미덕이다. 나는 뒤늦게야 깨닫고 있는 이녀석. 삶은 고苦 라지만 조금 더 웃으면서 살 수 있다. 마음을 조금만 더 여유롭게 가지면. 웃음이 웃음을 주고 우리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것 같으니. 그리고 미소 말고, 진짜 뒷통수를 때리는 기발한 생각과 센쓰는 한 인간의 HP 자체를 늘리는 마법같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제일 재밌던 건 8중혁과 38길동이었는데
나는 무슨 단위로 쓰면 좋을까 ? 이건 한번 친구들과 떠들어보면 재밌을 것 같다.
작을 수록 오차범위가 줄어든다니, 나만이 특징적으로 '적은' 분야가 뭔지 찾아봐야지.
우훗
아래는 에세이 중 좋았던 부분들 (완전 개인취향)
사람들을 하나의 단위로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나자 주위가 달라보였다. 저 사람은 어떤 단위로 쓸 수 있을까.잘 걷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예를들어 홍길동), 그 사람의 이름을 단위로 쓰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야, 나 오늘 밖에 나갔다가 38길동이나 걸었잖아. 죽는줄 알았지 뭐야"
내가 만약 하나의 단위가 될 수 있다면 어떤 게 좋을까. 나는 소설가니까 원고지 0.5매를 1중혁으로 해볼까
"오늘 글 많이 썼어?"
"요새 슬럼프야 오늘 8중혁밖에 쓰지 못했어. (글쓴이 김중혁)"
"뭐? 8중혁밖에 못 써서야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려는 거야?"
" 야, 나 오늘 밖에 나갔다가 38길동이나 걸었잖아. 죽는줄 알았지 뭐야"
내가 만약 하나의 단위가 될 수 있다면 어떤 게 좋을까. 나는 소설가니까 원고지 0.5매를 1중혁으로 해볼까
"오늘 글 많이 썼어?"
"요새 슬럼프야 오늘 8중혁밖에 쓰지 못했어. (글쓴이 김중혁)"
"뭐? 8중혁밖에 못 써서야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려는 거야?"
밤새 소설을 쓰고, 정오에 일어났을 때 나 자신이 패배자 같았다. 눈에 보이는 걸 하고 싶었다. 벽돌을 쌓아올리든 땅을 파든 물건을 옮기든 뭔가 눈앞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글을 쓴다는 건 참으로 추상적인 일이다. 추상적인 일을 하다보니 스트레스 역시 추상적이었다.
세상은 대략 5억만개(너무적나?)이상의 요소로 이뤄져 있으며 우리는 아주 작은 인간일 뿐이다. 우리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은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패는 아주 작은 실패일 뿐이다. 스무살 때 그걸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실패를 해보았을 것이다. 실패가 행복이란 걸 알았을 것이다.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에 수록된 죽음에 대한 가장 의미심장한 통계는 나이에 따른 자살 성공률이다. 25세미만 여성이 자살에 성공할 확률은 160분의 1에 불과하지만 65세 이상의 성공률은 3분의1이다. 남성노인의 성공률은 2분의 1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인의 자살 행위가 더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충동적으로 자살을 선택하지만 노인들은 심사숙고하여 자살을 선택한다. 혹시 자살에 실패할 경우 얼마나 더 비참해질지 노인들은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음. 꼭 죽고 말겠다는 그 마음. 오랫동안 살았지만 더 이상 살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단호한 결론이 만들어낸 그 마음이 너무 비장해 보여 마음이 아프다... 그 골목에서 자살을 선택한 모든 사람들의 명복을 빈다.
승리의 기쁨에 심하게 도취하지 않고 패배의 수렁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순간, 진정한 승부 근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생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가의 문제다. 선택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포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기로 선택하고 결국 돈을 많이 벌게 된 사람이 어떤 걸 포기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재능'이란 (천재가 아닌 다음엔)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그래, 버티다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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