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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USA : California

미서부 17 - 안개 낀 금문교

종착역에 내렸는데 부에나비스타펍이 보였다. 아이리시커피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가이드북에서 본것 같다. 찾아보니 역시 이곳이 맞네. 럭키! 들어가서 몸도 녹일겸 아이리시커피 두잔을 시켰는데, 워낙 손님이 이것찾으러 들어오는지 메뉴판도 주기도 전에 직원이 눈빛을 보내는 걸 받으니 약간 호갱 느낌에 쌉쏘롬 해지려다가, 가져온 커피를한모금 하는 순간 눈녹듯 사라진 미움. 난 양주도 별로 안좋아하는데 베이스에 밴 위스키향의 풍미가 부드러운 크림과 커피와 섞여 황홀하다. 이거 양주 좋아하시는 분들 오면 난리날듯?

커피를 마시고 나와서 기라델리스퀘어라는 곳으로 향하고자 검색을 했더니 우리가 나온 그곳이 바로 기라델리 광장이다. 기라델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명한 초콜릿 이름인데, 고디바와 노어하우스와 더불어 세계 삼대 초콜릿으로 널리 명성이 있다나. 전날 미리 아울렛에서 초콜릿을 사두었던터라 여기는 살짝 들여다보기만 하기로. 드링킹초콜렛을 판다길래 어떤가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현재는 팔지 않네요. 구경하고 나오니 앞에는 또 초록색 들판이 펼쳐져있어 또 신이 나서 사진을 왕창 찍었다.


금문교쪽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하여 버스를 갈아타고 금문교로 향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상징물인데, 가까이서 한번 봐줘야지. 버스는 꽤나 한참을 달려서 금문교가 시작하는 부분의 다리전망공원 같은 곳에 우리를 내려줬다. 시간이 7시가 거의 다되어가는 시간이라, 조금 어둑해졌다.

예의 그 상징물을 두 눈으로 처음 만났을때의 감동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붉은색의 다리가, 교량으로 쓰일 수 있는 어느색깔보다 유독 예쁘다는 사실은 아침마다 서강대교를 보면서 익히 느끼는 바이다. 그러나 현수교인 금문교의 사이즈는 서강대교보다 훨씬 클 뿐더러,(현수교 토목기술이 긴 교량의 건설을 가능케 한다고 들었다) 지형상 워낙 높은지대 사이에 놓여진 터라서, 강에서부터 한참 떨어진 아주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그 고고한 품격을 더 도드라지게 해준다고 할까. 부산의 광안대교가 그리도 예쁘게 극찬 받는 것을 보면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수 있겠다 (그러고보면 광안대교도 현수교네) 한편 높은 위치에 있는 다리는 다리밖에서 보기에 예쁘고, 다리위에서 보는 풍경도 높은 고도 때문에 유리하지만, 건너기에 무섭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특히 나와 같은 고소공포증자에게는. 게다가 이곳은 바람이 무지막지 부는 곳이라니!

9월에 금문교가 온전히 깨끗하게 보이는 것은 사치라 했다. 아니 운이 좋은 것 정도로 해두자. 아침보다 안개는 조금 걷혔지만 아직 드문드문 안개가 남아있었고, 높다란 금문교의 꼬다리는 안개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그런대로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더 어두워지기전에 사진을 몇장 찍었다. 공원을 이리저리 좀 둘러보는데 날이 어둑해지면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심상치가 않다. 위치를 옮겨가면서 금문교의 스케일이 좀더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을 찾아보려 했으나,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너무 각도의 한계가 있었다. 해가 곧 질것 같았고 추워지는 바람에 너무 멀리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예전같으면 도시의 상징인 이 곳에서 어떻게든 인생샷을 건지고자 노력했겠지만 이제는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은 그곳에서 안달복달하면서 사진을 수백장씩 셀카로 찍고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들었던 위화감에 기인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물론, 10년전에 비하여 초라해진 나의 외견이 한몫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처음 온 도시인데 마치 사는 동네처럼 능수능란하다. 어느정도 수준 있는 도시와 대중교통 체계이면 직관적으로 교통수단의 유추 및 동선이 가능하게 된것은 첫째도 구글지도, 둘째도 구글지도, 셋째도 구글지도 덕분이다. 진짜 구글은 천재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해외로 본격 여행했던 2008년만 해도 이렇게 여행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스마트폰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구글지도는 내가 세계 어느 구석을 가도 그 곳이 어디쯤인지, 어느길인지,길의 이름과 번호가 뭔지, 좌회전이 되는지를 알려주고, 그 길을 지나가는 버스의 번호, 그 버스의 노선 ,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 막차인지 여부를 다 알려준다. 트램과 지하철, 기차도 마찬가지. 물론 교통수단 스케줄표와 실시간 위치가 앱 시스템에 연계되는 정도수준의 나라여야 하겠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아주 빠른시간에 직관적으로 대중교통을 갈아타고 새로운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구글지도가 있기 전에도 나는 버스노선표를 사진으로 찍어두고 적당히 길을 짐작하며 타면서 다니긴 했었지만, 그 정확도의 차이가 현저한 건 사실이다.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숙소근처 러시안힐스 근처쯤에 왔을때는 거의 밤이 되어있었다. 아무리 관광객이 많고 선진화된 도시일지라도 해가 진 미국의 인적이 드문길은 조심해야 한다. 일단 숙소근처로 돌아가서 저녁을 해결할 식당을 찾아보려 했는데, 가는길에 어제 미련이 남은 '판다익스프레스'의 망령이 도져서 무려 중간에 내려 우버를 갈아타고 역주행으로 옆동네 판다익스프레스를 찾아갔다.

아메리칸 차이니즈. 대학교2학년때 사촌오빠가 엄청 데리고 다니며 사줬던 기름좔좔 미국식 중식요리이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각자 3개의 반찬을 담을수 있는 접시를 선택하여, 10개가 넘는 메뉴중에 세상 신중한 선택을 했는데, 사실 다 맛있었다. ㅎㅎㅎㅎ 행복함! 배를 두둥이며 포춘쿠키를 집어들어 똑하니 분질러보니 안에 작은 문구가 튀어나왔다.

"YOU ARE NEVER TOO OLD TO LEARN SOMETHING NEW -PANDA EXPRESS"

뭐든 한문구씩 이렇게 뽑는 시스템에서는 누구나 본인상황에 맞춰 해석할수 있는 대중적 철학적 문구가 나온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번걸 또 한번쯤 감화하여 생각해보게 되는 건 어쩔수 없다.

식사를 마지막으로 숙소로 복귀하였다. 내일은 아침일찍 요세미티로 떠나는 날이라 일찍 잠을 청해야 할 것이다. 내일 하루는 온전히 투어를 할테니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네. 하루종일 많은 걸 한것 같은 날이지만 또 무엇을 깊이 느끼고 즐겼는가 싶으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면 그 여행의 날은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남은 짧은 시간이라도 눈을 좀더 열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온 도시의 향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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