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 (여행7일차)
오늘은 하루짜리 데이트립을 하는날. 샌프란시스코에서 260km정도 거리에 있는 ”요세미티국립공원” 으로, 한국에서 마이리얼트립을통해 미리 예약하고 왔다. 개별적으로 차로 가도 되지만 워낙 거리도 되고 크고 방대하여 그곳을 속속들이 아는 가이드의 코스설명이나 포인트들을 위해 한국 가이드가 붙어 7명이 모집되어 떠나는 데이투어를 선택했다. 해외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현지투어를 하는 것은 10년전 호주 여행이후 처음인 것 같다.
새벽 4:10분쯤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35분에 호텔을 나섰다. 멀지 않은 두블럭 떨어진 곳으로 모이라고 하였는데 한블럭 내려가는 길에 가이드 아저씨가 우리를 발견하여 9인승 차에 먼저 탔다. 뒤이어 부모님과 자녀로 구성된 가족 세명, 그리고 여자 혼자 한명이 합류하여 총 6명이 되었고 4시 40분쯤 바로 요세미티로 출발했다.
해외에 사는 현지가이드들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한마디로 하면 TMI. 매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가까워져야하는 가이드일, 말로 벌어먹고 사는 직업의 특성과 몇십년전 한국의 틀에 갇혀버린 사고방식, 오랜 외국 교포생활에서 축적된 정착지에 대한 자부심과 합리화, 좁은 교포사회에서의 네트워킹 같은 것들에서 비롯된 특성들이다. 우리의 가이드는 60살이 넘은 할아버지라서 더욱 그러한 경향이 강했던 듯 하다.
일단 친해지는 방식으로 가장 먼저 나이와 결혼여부, 직업을 묻는다. 그리고는 그에 따른 개인적인 이야기를 서슴없이 물어보는데 그런걸 불편해하는지 아닌지 살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대답한 말을 사리분별하지 못하고 눈치없이 마구 더 물어본다. 도망갈 데 없이 승합차에 몇시간 꼼짝없이 갇혀 있는데다 오늘 종일 같이 있어야 하는 사이에 갑자기 정색하기도 어렵고하니 우물쭈물 하는 거 같은데, 그걸 보면서 오히려 날개단 듯 사명감 투철한 아이스브레이킹을 한다.
이분은 그 중에서도 특히 말이 많다. 마치 말 자판기 같은 기분. 방금 전에 설명한것도 무슨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까먹어서 두번씩 세번씩 중언부언. 아마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같은 이야기를 해야하니까 그냥 생각나는대로 계속 말해서 그렇겠지. 오래전 정보와 오래전 개그를 너무 자신감있게 구사하는 것도 괴롭다. 역시 말로 하는 직업이라 뭐라도 말로 만들어 내뱉어야 하기 때문일 듯.
일찍부터 피곤하여 잠좀 잘랬는데 앞뒤로 말이 너무 많아 자기가 쉽지 않다. 앞자리에 혼자 탄 여자애가 계속 가이드아저씨의 말을 받아준다. 아까 분명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다고 했는데 잘도 들어주네. 아저씨는 처음 투어설명에 오가는길이 길어 주무시면 된다하더니 소곤거리는 것도 아니고 좁은차에 마이크까지 켜고 큰소리로 끊임없이 얘기한다. 이래서 잠을 어떻게 자나.
6시 13분. 동이터온다. 잠자긴 글른것 같네. 이삼십분전부터 남색 하늘에 서서히 붉은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차내에서 형체를 구분할만큼 주변이 밝아졌다. 일출 일몰시간에 무지개색으로 바뀌는 하늘은 언제봐도 황홀하다. 이 지형의 특이한 점은 직선으로 쭉 뻗은 평야에 난 길 끝에 마치 장벽처럼 산맥하나가 서있다는 것이다. 그 산맥의 좌우가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길다. 구글 지도를 보니 저게 요새미티 국립공원이 있는 산지형인데 우리가 차로 가는 곳은 저 산맥 너머인 모양이다.
별이 잘 보인다. 내가 앉은 오른쪽 창문 하나로만 보는 것도 별이 쏟아질듯 하는 걸 보니 오늘 날씨다 맑나보다. 몽골에서 봤던 별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달은 아주 얇은 초승달이다.
6시 20분. 오크데일이라는 마을에 들러서 아침식사를 했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있는 곳. 30분이 주어져서 맥도날드에서 맥모닝 세트로 아침을 해결했다. 후닥먹고는 커피한잔 사들고 화장실에 들르면 시간 끝. 다시 출발했더니 지금부터 한시간이면 국립공원 입성이라고 한다.
진입구간에 거의 다 들어서서 나온 그로브라는 마을. 미국 서북개척시대에 금광이 나왔던 곳이라고 한다. 처음 일정짤때 요세미티를 렌트카로 계획했을땐 이 마을에서 잘까 하기도 했었는데 실제 와보니 여긴 너무 작은 마을이다. 곳곳을 다니고 숙박을 해보니 너무 작은 마을에서 묵는 것은 썩 좋지만은 않다. 현지스러운 느낌이 나는 장점이 있을 때도 있지만 편의성이 떨어지거나 오히려 비싸거나 너무 으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잠때문에 그로브를 마지막으로 보고는 그후로는 정신없이 헤드뱅잉을 하며 산길을 올라갔던 듯 하다. 드디어 입장료를 내고 국립공원에 진입. 요세미티 국립공원 간판이 보인다. 아무래도 이름이 좀 특이하다 했더니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의 이름이라고 하네.
처음에 만난것은 요세미티 계곡의 뫼르쇠(?) 강이 아주 먼 아래 굽이굽이 흘러가는 걸 내려다보는 전경. 침식 퇴적 작용으로 인하여 S자로 꺾여 흘러가는 물이 아침 햇빛에 반짝이며 반사되는 경관이 참으로 멋졌다.
이때 차에서 처음으로 내려 바깥공기를 맞았는데 차를 세운곳이 그늘한점 없는 전망대포인트라서 햇볕을 온몸으로 맞았다. 아침인데도 햇살이 따가웠다. 입고있던 후드집업을 벗고 선글라스를 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분이 전환되는 걸 느꼈다. 이전까지만 해도 말많은 아저씨와 피곤한 컨디션 때문에 약간 저조한 기분이었는데 날선 마음은 좀 내려놓고 이순간을 좀 더 내려놓고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어차피 오늘 보고 말 사람인데 여행까지 와서 뭘 그리 예민하게 구나 싶었다. 내게 선만 넘지 않는다면 그냥 바보처럼 허허실실 웃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아깐 아침이라 좀 더 신경이 곤두서있던 듯도 하고. 그런 걸 보면 난 확실히 아침형인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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