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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최재천의 공부



공부에 대한 혜안을 얻고 싶었는데 인터뷰로 엮은 최재천님의 일대기 자서전이었다. 좋아하는 분이니 내용이 기대와 달라도보긴 했는데 생각보다 이력이 글로벌하셨고 온화보단 강경이 어울리는 분이었다.

성장과 공부 과정 전반에 대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고 어떤 특정 영감보다는 대체적인 분위기 같은 걸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 기억나기로는 평생 교육시대에 소멸해가는 대학을 여럿 더 만들어 20대, 30대, 40대, 50대를 위한 각종 공교육을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 무척 공감한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하고 여러 경험을 해본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사회에 대해 고칠 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 아무나 할 수 없고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도 강조했듯이 경청하는 자세로 젊은 세대가 이 책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으면 좋겠다.


[이하 발췌]
저에게 다들 묻습니다. 도대체 그 많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느긋할 수 있느냐고요. 제 답은 하나죠. 마감 1주일 전에 미리 끝냅니다. 마음 에 엄청난 평안을 줘요. 결과물의 질을 높일 수도 있고요. 딱 한 가지 나쁜 건, 시간 관리가 된다는 자신감이 넘쳐 너무 많은 일을 수락한 다는 겁니다.

자꾸 알아가려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 고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공부와 교육이 무엇 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교육의 내용이 사실 을 분별할 수 있도록 채워져야 하고요. 진실을 말하는 전문가들의 말이 일반인에게 신뢰를 받아 통용될 수 있도록 사회의 갈등이 잦아들 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위정자들이 힘써 노력 해야 하지요. 갈등의 골이 깊으면 진영 논리로 사실을 외면하려는 경향이 커집니다. 저는 무 엇보다 앎이 가져오는 사랑이 소중하다고 여 겨요. 우리 인간은 사실을 많이 알면 알수록 결국엔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서울대학교 교수 시절, 문과 학생들에게 하버드대학교에 서 냈던 문제를 그대로 내고, 3주 줄 테니 도서관에서 미 적분학 책을 펴놓고라도 풀어보라고 했습니다. 한 명도 못 풀었어요. 미적분학 책을 읽을 능력이 안 되는 거예요.
미국 학생들은 한 시간을 주고 풀라고 하면 못 풀지만, 2~3주를 주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풀라고 하면 대부분 푼다는 거죠. 그 정도까지는 중·고등학교에서 훈련을 받 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안에 경쟁하는 문제 풀 이 훈련만 시키고, 실제로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좌우하 는 능력을 키워주진 않는 것 같습니다.

시험은 두 가지 실력을 테스트하죠. 풀 수 있는가, 그리고 정해진 시간 안에 푸는가. 중학교 3학년인 제 딸이 시험 을 보고 오더니 묻더라고요. 왜 정해진 시간 안에 풀어야
해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반드시 뭘
해야 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은 건 아니잖아요. 물론 정해 진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마감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만 한 시간 안에 모든 해법을 찾아야 하는 긴박한 삶을 평 생 살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문제를 인식하고 숙고할 시간이 충분히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자원을 동원해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까'를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는 주어진 문제를 한정된 시간 안에 어떻게 푸는지를 가르치 죠.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선거 중에 후보자 토론회를 보 면 답답합니다. 토론회는 임기응변의 달인, 어떤 순간에 도 당황하지 않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 니다. 전시 사령관 뽑듯이 돌발 질문을 하며, 서로를 궁지 로 몰고 나서 토론을 완벽하게 해낸 듯한 표정을 지어요.
진행자는 후보들이 충분히 의견을 말할 수 있게끔 질문다 운 질문을 하지 않아요. 반론이 나오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진의를 알 수 있게 되묻지도 않고요. 자꾸만 극한 상황 에 대처하는 순발력을 테스트하는데, 저는 엉뚱한 시험을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정부 부처 이야기를 나눴을 때, 정부도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이렇게 과목별로 되어 있는 점 이 갑자기 도드라지게 와닿았는데요. 10년 전에 긍정심 리학의 대가라 불리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사회의 고통은 과목별로 오지 않는데 아직도 교실에서는
20세기 방식으로 과목별로 가르친다. 그 점이 오늘날 복 합적으로 융합하는 산업 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기 힘 들게 한다"라고 하셨어요. 생각해보니 시대에 발맞춰가지 못하는 교과목식 분류가 교실분 아니라 우리의 통치 프레 임에도 깊게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저는 거기서 여러 전문가가 모여 정말 아주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게 무엇인지 를 다시 한번 집중적으로 논의하길 바랍니다. 최소기본교육 소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서 말이죠. 지금은 우리가 아이들에 게 너무 많은 걸 가르친다고 생각해요. 모든 아이가 미적분을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다들 미적분을 잘하면 좋겠 죠. 그렇지만 적분을 몰라도 잘 사시잖아요.
우리가 교육하는 이유가 뭘까요? 사회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이 정도는 최소한 알아야 원만히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가 르치는 거라면, 과연 우리가 아는 걸 모두 가르쳐야 할까요?
특히 우리나라 시험 출제자들은 어떻게든 점수 차이를 내려 고 얄궂은 문제를 내죠. 그런 일이 자꾸 일어나게 놔두지 말 고, 사회 구성원이면 꼭 갖춰야 할 아주 기본적인 배움이 뭘 까를 합의해내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대학을 일곱 번, 여덟 번 다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피 터 드러커Peter Drucker 선생님이 배워서 써먹고, 또 배워서 써 먹는 시대가 온다고 하신 말과 맞물립니다. 지식의 유효 기간 이 짧아지고 있어요. 20대 초에 배운 알량한 전공 지식으로 95세까지 우려먹는 것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저는 오히려 대학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 해요. 한 사람마다 대학을 일곱 번 가야 하면, 그 수요에 맞게 대학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져야겠죠. 40대를 위한 대학, 60대 를 위한 대학, 전 세대를 위한 대학, 별의별 대학 만들기가 답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장 대학 에 갈 이유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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