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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Australia: Cairns

케언즈 4 - 불안과 걱정 끝 새벽잠

좌석 업그레이드의 슬픈 진실 : 발받침이 너무 멀어서 발이 닿지 않는다

어차피 오래 타고 있을 비행기, 게이트에서 최대한 늦게 탑승하는 편이다. 이날도 그랬다. 어차피 혼자고 좌석도 정해져 있으니 긴 줄이 거의 줄어들어 손으로 사람을 셀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에게 여권이랑 탑승권을 내밀자 바코드를 삑 하고 찍었는데 뭔가 에러난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직원은 모니터를 확인하더니 내 티켓을 다시 출력해주며 말했다.

"오버부킹 돼서 네 좌석 업그레이드 해줄께"

홍콩-호주간의 꽤 긴 구간을 업그레이드 받다니 럭키! 비즈니스까진 아니지만 프리미엄 이코노미라고 케세이에서 새로이 도입한 좌석이다. 우등버스 정도 생각하면 적당할 듯. 돌아보면 이것 또한 1인 여행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의외로 제공받은 헤드셋이 꿀잠에 매우 효과가 좋았다. 다음 비행에 참고하여 챙겨봄직 하다.


도착지 기준으로 이렇게나 어두운 새벽에 도착하는 건 처음이다. 보통은 항공편이 많은 아침이나 낮이거나, 밤이라도 자정 전이라서 화려한 야경이 맞아줬는데, 여긴 이른 새벽이고 게다가 작은 도시라서 불빛이 많지 않았다. 평소 비행기 탈때는 구름밭에서 공간의 이질감을 느꼈다면 여긴 또 다른 의미로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는 것이 꼭 광대한 우주 같았다. 자연이 깨끗하고 맑은 곳이라 그런지 비행기 창으로 언뜻 봐도 별이 쏟아졌는데 아래 길에 드물게 보이는 가로등조차 별과 비슷해 보여서다.

전반적으로 이번 케세이퍼시픽의 운항에 대하여는 만족하는 편이다. 많이 흔들리지도 않고 안정적이었다. 이거야말로 내가 어쩌다가 타는 비행기의 계절정보 및 경로 따위를 심각하게 일반화한 자의적 결론이긴 하지만, 나의 경우 이런 개인적 경험이 그냥 그 날 컨디션으로 직결되는 경우도 많아서(무서움에 떨다 진이 빠짐) 꽤 중요한 문제이다. 한편으로는 동반자가 옆에 없어서 이제 그런 컨트롤 불가한 영역의 문제는 머리속에서 일부러라도 지운게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 혼자서 자꾸 상상해봤자 불안감만 커지고 해결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뭐 동반자와 있어도 근본적 해결책이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 땐 일부러 다른 주제의 대화라도 할수 있으니까. 누구라도 있으면 좀 든든하기도 하고. 동반자의 존재 자체가 나의 자생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점점 더 쫄보가 되어가는듯. 비행기 이착륙 사고뿐만 아니라 테러까지 고민하는 나는 그러고보면 중증 불안장애 인것 같긴 하다.

길고 긴 비행 끝 드디어 도착. 어라이벌 인증 샷 하나 찍어줬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말하자면 길지만 생략하자.. (친구 부탁으로 임신테스트기 10개 포함 상비약 몇개 가져왔는데 엄격하기로 소문난 호주 세관에서 이거 뭐냐고 추궁당할 때 당황하여 드럭이라고 했다는 흑역사는 부끄러우니까 잊어보자)

새벽 5시라 공항픽업을 예약해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다 확인한 바로는 그 사람 차 타이어가 빵구나서 견인을 불렀다는데.. 하아

결국 택시를 탔다. 짐과 불안감을 끌어안고 한참을 달려 주택가로 들어서서 길 끝에 있는 마지막집에 택시가 멈췄다. 언뜻봐도 거대하게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슬쩍 보이는 커다란 이층집. 

호텔이나 숙박시설이 아닌 곳에 온 게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 상상도 못한 집의 모습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 곳에 내가 묵는다니!  

체크인하고 친구에게 이 방을 배정받았다

너무 이른 새벽이고 주변도 고요해서 얼른 짐만 옮기고 일단 아침까지 부족한 잠을 좀 채워보려고 누웠다.

그런데 새가. 그것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분명 덩치가 클 것만 같은) 소리의 목청 좋은 새가. 공항을 나올 때부터 지금 방에 자려고 누운 이 시간까지 계속 운다. 창문 밖 동 터오는 야자수 사이의 보라색 빛과 희귀한 새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려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