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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Australia: Cairns

케언즈 2 - 일단 출발

페어웰이 끝나고 혼자가 되었다. 비행기를 혼자 탄게 상당히 오래전인거 같은데 그것에 쓰는 신경도 적지 않았나보다. 어쨌건 이제 출발했으니 뒤는 없고 열심히 잊어보겠다.

공항 탑승동 복도가 시끄러운데 사람들 수근거리는 말을 들어보니 엑소가 지나간 듯 싶다. 반대편엔 아이유도 있었다네? 무기(만한 카메라)를 든 팬들이 긴박하게 뛰어들어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무슨 사건사고 뉴스 기자들 몰리는 모양새 같아 좀 놀랐다. 팬들이 이 안엔 어떻게 들어왔나 궁금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표를 끊고 수속하고 사진 찍은뒤 비행기는 안타고 표를 취소한다는 것 같았다. 열정이 대단하네..

그러고보니 이곳 공항 수속과 세관이 모두가 예외없이 똑같이 통과해야만 하는 공항의 필수 공간이니 만약 유명인이랑 같은 시간에 있다면 최소 이 복도에서는 공간이 겹칠수 있긴 하겠구나, 비행기에선 계급이 나눠질지라도.


떠나는 날 날씨는 무지 좋다.

이제 모든 불편한 절차가 끝나고 기분 좋은 일만 남았음에도 (벌써 시작되었다) 여태 뭔가 끝내지 않은 기분. 뭘 자꾸 해야한다는 강박이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있다. 이력을 만들고 체크리스트를 없애라는 강박. 가방에 꽉찬 세권의 책과 갤탭에 담아온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비행기의 영화까지 전부 소비해야할 것 같은 기분. 졸리기도 하고 감상도 적어야 하는데 할게 많아서 조급한 기분. 이제 다 내려놓고 좀 쉽시다.

날 기다리고 있는 친구의 선물은 베네핏 고져스 파운데이션으로 결정. 기분내려고 내것도 원플라스 원으로 샀다. 역시 뭐라도 사면 기분이 업된다.나같은 쇼핑알못은 더더욱. 그래도 전보다 강박을 많이 떨쳐서 좋다. 어제 여행 책사러 들른 홍익문고에서도 빠르고 만족한 구매를 했고, 여행을 앞두고 속옷도 두벌 새로 샀다.

혼자하는 여행이 이야기가 생긴다는 건 바로 증명되었다. 둘이탔으면 둘이 앉았을 창가쪽 두 자리. 나 이외에 한사람이 타고 있을 수 밖에. 오른쪽에도 혼자 앉은 중년의 여자분. 앉으면서 눈이 마주쳤는데 싱긋 웃어줬다. 서양인 특유의 후한 미소, 이 또한 둘이었다면 안 일어날 일이었겠지. 혼자인 사람은 혼자인만큼 모든 걸 받아들이고 기민하게 대처하므로 신호도 잘 받고 액션도 잘하는 것이다. 관찰하다 보면 쓸거리도 생각할 일도 많고 말이다.

옆에 앉은 친구가 홍콩인인줄 알았더니 폰으로 노란 카톡 화면이 슬쩍 보여 정체를 알아챘다. 그러더니 의심할 바 없이 곧 <홍콩 요술램프> 책을 꺼내들길래 혼자 쿡 하고 웃었다. 내심 사람이 궁금하던 터에 역시 뻘쭘하기로는 제일가는 시간, 기내식 시간을 노려서 이야길 텄다. 송파에서 건축설계일을 하는 서른살 친구. 마치 어디서 만나본듯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커피에 추가로 맥주도 짠하고 일 얘기 연애 얘기를 나누었다. 역시 나이의 내공이란 건 이런건가. 너무 물흐르듯 친해져서 놀랄정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친화력인가. 이런 공간에서 만나면 향후 관계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인지 특별히 어려움 없이 편하게 이야기를 이어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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