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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Japan: Okinawa

오키나와 8 : 먼나라 이웃나라 맞네요, 일본의 결혼식 체험

이미 말했다시피 이번 오키나와 여행의 주목적은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다. 결혼식 날짜를 포함하여 금토일 2박3일의 일정이고, 토요일 저녁이 메인 이벤트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이 6시 반부터인줄 모르고 좀 일찍 도착하여 주변을 서성이며 구경하고 대기하다가 30분전쯤 예식장에 들어왔다.

식전에 신랑의 인사를 기대했는데 예식장 로비에는 하객들만 축의금을 내려고 긴 줄을 서 있다. 다들 엄청 화려해보이는 봉투에 금줄까지 감아서 소중하게 들고 있다. 우리는 너무 털레털레 봉투도 없이 왔는데, 심지어 몇명의 축의금까지 같이 들고 와서 봉투를 나눠 담아야 하는 상황인데 빈 봉투가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여긴 그런 분위기가 아닌것 같다. 우물쭈물하다가 접수대의 한국사람(마침 결혼하는 친구의 여동생이었다)에게 물어봤더니 그 분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 결국 우리 때문에 근처 편의점에서 봉투를 사오셨다. ㅎㅎㅎ (이럴거면 우리가 사도 되는데.. )
주신 봉투에 축의금을 나눠 담고 분위기를 살펴 보니, 일본하객들은 우리와 달리 봉투 앞의 가운데에다가 크게 이름을 쓰고, 방명록에는 이름과 주소를 쓴다. 음 주소는 왜 쓰지? 감사인사를 서면으로 하기 위해서인가. 접수대는 누가 신부측인지 신랑측인지도 모르겠고 하객들은 전부 일본인들이고 처음부터 난관이다.

드디어 신랑을 찾았다. 나의 대학후배이자 신랑의 선배. 우리 둘 다에게 꽤나 막역한 사이이다. 예전에 말레이 주재원 있을 때도 해외집까지 놀러가 묵고 온 적 있는데, 이쯤되면 열과 성을 다한 사이인듯. 붙임성과 토크능력 만렙인 이 친구는 정말 자기만의 스타일대로 인생을 자유롭게 살기로 유명했는데 결국 오키나와의 호텔리어를 아내로 맞아 오키나와에서 일본 전통결혼식을 올린다.

홀에는 이미 초청된 인원으로 자리가 지정되어있었고, 자리마다 쇼핑백에 담긴 답례품도 이미 마련되어있었다. 테이블엔 모듬스시와 사시미가 발써 한가득 깔려있어 깜짝 놀랐는데 , 이게 다가 아니라 그저 반찬에 불과하다는 것이 더욱 놀라운 점이었다.

곧이어 소개영상과 함께 일본 전통 복장을 갖춘 신랑신부가 입장했고, 신부는 그렇다치고 후배가 그 일본 전통복장이 너무 잘 어울려서 그게 좀 놀랬다. 이거 뭐 왕컨셉도 아니고 , 사실 스무살 어려서부터 오래도록 봐온 친구라서 면면히 알고 있는데, 묘하게 매칭되는 모습이 신기하여 한참을 웃었다. (소개영상에 자탄풍 bgm깔릴때 자지러짐)

그러나 우리는 곧 점점 초조해졌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 결혼식은 우리의 하찮은 예상과는 너무나 많이 달랐다. 충격적인 건 일단 시간이 너어어어어어무 길다는 것. 식탁에 있던 행사순서표는 언뜻 보기엔 어느 결혼식 연회와 다를바가 없었지만 한 순서 한 순서가 아주 세심하고 정성스럽(고 길게) 준비되어있었다.
신랑 신부는 각기 다른 옷을 입고 입장 퇴장만 일곱번정도 한 것 같고, 손님들도 화장실이든 개인통화든 연회장을 끊임없이 들락거렸다. 여긴 그냥 큰 결혼 컨퍼런스 같은 그런 느낌??

게다가 각각의 순서는 디테일도 엄청 많고, 준비가 엄청 걸린다. 영상 하나를 틀어도 대충 연애사진 몇장 돌리는 우리네와 달리, 각각 주인공이 태어나서부터 자라는 과정 전부, 어떻게 만나서 여기까지 왔는지 최소 20분이상 되는 영상을 보았다. 누군가의 축사도 짧은 한줄이 아니라 미리 준비한 긴 글을 읽고 내친김에 노래까지 준비하는, 축사 내용중에 퀴즈를 내서 하객들을 위한 선물 아이템도 준비하는 그런 축사. 신부 가족은 부채춤 공연을, 신부 친구들은 화려한 걸그룹 공연을 준비했다.

개인적으로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난데없이 맥주 피쳐 가방을 업고 들어온 신랑이었다. 테이블마다 서너명씩 따라주며 인사하며 돌아다녔는데 이것으로도 최소 30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모든 일정은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천천히 진행되었으며 실시간 중계 카메라 두대와 MC가 중간중간 하객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은 덕담과 소회를 나누고 다른 모든 하객은 여유롭게 먹고 마셨다. 이런 결혼식을 보고 있자니 이것에 비하면 한국의 결혼식은 진짜 형식적으로 보일것이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더불어 주변 친구나 사람이 많지 않으면 이렇게 할수조차 없으니,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은 요새 일본 젊은이들도 꽤나 많을 것 같다는 것도.

순서표에 적힌 오키나와 전통퍼포먼스는 일본 성인가요 같은 곡에 맞춰 빨간 큰 북을 든 다섯명이 리듬에 맞춰 북을 치는 것이었는데 탈춤과 사물놀이를 섞어놓은 느낌이랄까. 뱅글뱅글 돌고 간간히 소리도 지르고 박력이 넘치는게 무사들이 부르는 노래 같은 기분. 노래와 박자가 닌텐도 디에스의 리듬천국 게임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관객과 함께하는 키챠시 시간은 , 음. 진짜 그야말로 문화충격. 남녀노소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다. 멀정한 분위기에, 심지어 무대에 다들 우르르 올라가 발 디딜 틈도 없이 꽉찬 곳에서 덩실덩실, 사돈될 분 손을 잡고 일으켜 덩싱덩실. 아까 퍼포먼스했던 북치는 이들이 휘파람을 불며 다시 북을 들고나와 분위기를 돋운다. 무대에는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자발적 군중이 모여있다.  

꽃다발 증정식과 마지막 대표인사를 끝으로 3시간반이 넘어 겨우 막을 내렸는데, 마지막 행진길엔 모두가 합심하여 동동동대문을 열어라를 시전하여 신랑신부를 끼고 퇴장하는 문까지 길을 만들었다. ㅎㅎ

일본에선 결혼식에 정말 친한 사람들만 정식으로 초대하고, 청첩장에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회신용 봉투를 동봉하며, 그 초대된 사람들은 하루를 온전히 내어주어 결혼식에 진지하게 임한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될만도 하다. 축의금이 친분에 따라 5만엔 10만엔 한다는 말도ㅎㅎ 친구야 우린 그만큼은 못내 미안하지만, 비행기값에 이것저것 하여 꽤나 들었으니 이해해주려므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