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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Russia

난관

 



▲ 붉은 화살호 (모스크바발 상트행 야간열차의 대표적 이름)를 설명하기 위해.

 cosmos 호텔 티켓대행처에서 러시아 아줌마에게 적어준 문구.

 

 

# 말하기

 

러시아는 훌륭한 어트랙션을 갖춘 멋진 여행지가 분명하지만

다른 이에게 선뜻 추천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면

바로 요부분 때문일거다. 대화불가.

 

 

첫날 상큼하게 나선 우리는 호텔을 나오기도 전에 첫 난관에 부딪혔다.

그건 바로 다음날 쌍뜨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는 일.


기차역은 영어가 안통하니 가급적 호텔에서 예매하라는 팁을 미리 들었던 터라

호텔에 티켓대행처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건 뭐지..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나와 같은 인간종이긴 한데,
생김새는 비슷하나 전혀 다른 통신을 하는 외계인을 마주한 그런 느낌...?

 

사실 열차 예약 별거 있을까. 출발지, 도착지, 시간, 가격만 맞으면 되는데.

뭐 하나 제대로 서로가 이해하는 게 없다.


4인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종이에 네모 기차와  동그라미 사람 4개까지 그려가며 (결국 그것마저 소용없었지만)  

그동안 말이 그토록 안 통하는 나라는 가본적이 없어 괜찮았던 거구나. 그랬구나..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에게 무한한 인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기차표를 사고 대략 설명을 듣고 나와서,

호텔방에 기어올라와 서로 아이폰 사전을 꺼내놓고 열차티켓 왼쪽 끝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찾아볼 수 있는 단어는 다 찾아봤다.

▲ 문제의 기차표

 

한편 전날 러시아비자를 해석하고 자신감이 붙었었던 우리는 그분께 러시아어로 설명하는 건 완벽히 포기를 하고

야간열차의 2인실 룩스는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표를 사갖고 나온 뒤에도 여전히,

사전을 동원해 찾아보면 그래도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는 자신감이 조금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호텔에서 삼십여분간 사전과 씨름하다가

결국은 아줌마가 요약 설명해준 게 다인걸, 

표를 제대로 끊은 건지 아닌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나서.

 

이제 러시아어가 더이상 재미가 아니라 생존이란 생각과 함께 머리가 아파왔다.


 

 

#길찾기

기차표 해석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온 우리.

제1의 목적지는 그 이름도 유명한 크렘린 그리고 붉은 광장이었다.

붉은 광장은 무려 4개의 지하철 노선이 지나는 번화한 역이었고

출구에 써 있는 길 이름은 읽지 못했지만 나오면 금방 눈에 띄겠지 하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왼쪽편으로 크렘린 입구가 보였는데 쓱 훑어보니 횡단보도가 안 보여서

건너편에서 궁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내려가다보면 나오겠지.

 

가는길에 사진도 좀 찍고 건물도 기웃기웃하고 구경하며 따라 내려가기를 삼십여분.

자동차만 쌩쌩 달리는 큰길에 도대체 건너갈 길이 안 보인다.

길만 하나 건너면 크렘린 성벽인데,

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는 우리는 길가던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지.

 

그분의 해맑은 말씀

"아, 크렘린요? 저~~ 뒤로 돌아가서 쭉~~~ 올라가시면 되요."

 

 

거긴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란 말이다!!

 

눈 앞에 크렘린을 두고 주변만 한시간째  ㅜㅜ
길도 넓은데다 차도 쌩쌩달려 무단횡단은 꿈도 못 꾸겠다.
무엇보다 러시아에서 범법행위하다 쥐도새도 모르게 비명횡사 할지도 모르잖아..

 

▲횡단보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정한 도로


이후 이틀내내 미로같은 지하철 역사에서

눈 앞 건너편에 건물을 두고 두더지마냥 여기 저기 출구에 들락날락 하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봐줄 수 없는 안타까운 광경.

 

나중에 알고보니 원래 모스크바는 횡단보도가 적은 도시란다.

예전부터 '발달한 지하도'가 이 도시의 특징이라던데
나 꽤 길눈 밝은 편이라 자부했는데 이모냥이니
엥간한 방향감각으로는 사람잡기 딱 좋다.

 

뻥좀 얹으면 거의 로마 카타콤베에 비견될만한 러시아 지하보도.

 


▲잘못 들어선 길에 가까이 있어먼저 들른 구세주 성당.

금박씌운 예쁜 원형돔을 가진 케테드랄.

예배중인 성당 안은 울려퍼지는 성가대 소리와 안온한 촛불이 어우러진 편안한 분위기였다.

 

 

 

 

▲ 구세주 성당 옆의 예쁜 까페.
들어가보픈 마음 굴뚝같았으나 너무 초반이라 패스

 

 

 


# 입장하기

어렵게 도착한 크렘린 입구에는 여러종류의 티켓이 있었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알수가 없다.

역시 말이 말썽이다.

영어로도 짧게 설명되어 있었는데 그것만 봐선 역시 뭔지 정확히 모르겠고.

 

우리가 원하는 표를,  온갖 숫자를 동원해 적어서 보여줘도

매표소 직원은 러시아어로 쏘아붙일 뿐.

그 매표소 앞에서 또 한 삼십분을 허비하고 겨우겨우 원데이 올티켓을 끊었는데

그건 또 한시간 반 뒤에나 입장 가능한 표.

러시아에서 현지사정에 무지한 여행객이 꽉짜여진 스케줄대로 움직이기란 불.가.능.

▲ 사긴 힘들었지만,  이렇게나 이쁜 크렘린 표! 

 

크렘린에 입장하고 나서도 여기가 무기고(스타에도 나오는 그 유명한 Armoury : 아모리) 입구인지 뭔지 어리버리

누가 한마디 하고 저리가라 하면 그런가보다 넙죽. 

'네네 마인드'가 몸에 배었다.

 


▲ 러시아와 잘어울리는 구름

 

 

사실,
공항에서 지도를 구했어야 하는데 시간도 늦고 딱히 눈에 띄지도 않아 첫날 그냥 호텔로 들어왔었다.


어디든 어트랙션에 가면 곧 인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왠걸

지도는 따로 안 팔고 엄청 두꺼운 가이드 북에 끼워팔기만 하더라.

 

지도를 몇번 찾아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가이드북의 초간략지도에 의존.

안그래도 횡단보도도 없어 난감한 길인데 지도 없는 덕에 아주 이틀 내내 생쇼를 했더랬다.

 

 

지도 없는 여행이라니. 생각도 못했어.

 


아 러시아 여행 역시 난관이 산재.


댓글1

  1. 김신영

    야 이거 절대 혼자 못가겠군하

    2011.11.26 13:27 답글쓰기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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