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백화점 '쭘'
#공포의 첫끼
어느나라에 가도 첫끼는 인상이 깊게 남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욱 재빠른 눈치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지리에도, 분위기에도 익숙치 않아 장소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에
대개 초반일수록 메뉴선정에 실패할 확률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의 2008년 첫끼는 육회, 2009년 첫끼는 식어빠진 스파게티였으며, 2010년에는 빠에야를 야심차게 골랐지만 그 흔한 피자보다도 맛이 없었다.)
길 모르고 어리버리한 여행자에게
푸드코트만큼 첫끼로 안전한 곳이 있을까.
영어메뉴도 그림메뉴도 주지 않는 러시아에서
손으로 가리킬 음식 실물이 있는 음식점이란너무나 고마운 곳이다.
뭔가 그럴싸해보이는 건물엔 푸드코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일단 들어갔다.
들어서니 이곳은 백화점.
그것도 '굼'에 필적하는 명품 백화점 '쭘'이다.
(웃기려고 쓰는 이름 아니고 진짜 이름들이다..)
쭘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진열된 음식 보고 골라잡은 러시아에서의 첫 식사 메뉴
치킨 윙 +
볶음 밥 +
돈까스 +
콜라
아 이정도면 정말 무난한 조합 아닌가요?
두근두근 첫끼의 결과는
'미디엄 레어' 돈까스와 생쌀 씹는 치감이 돋보이는 볶음밥!
안그래도 아침부터 외국어 암호풀고 길헤메고 추위에 떠느라 배고픈데
첫끼부터 너무 잘 먹이면, 어디 덧나냐. ㅜㅜ
그래도 먹었다고 배는 좀 든든하여 기분좋게 나오는데
저리도 멋지게 생긴 기둥들이 가득한 건물이 위풍당당 서 있고
잠깐 해가 들어 건물 앞 분수 광장을 멋지게 비춰주니 갑자기 낭만이 가득한 거리로 변신했다.
이 멋진 건물은 뭘까 입구에 달려가 들여다 보아도 문은 굳게 닫혀있고
러시아도 이런 건물들이 여럿있나보다 하고 돌아섰는데,
이상하게도 그 건물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더란 말이더라. 유난히도 많이.
우리도 동참하여 햇빛도 좋겠다 몇컷 찍고 나서
이제 가볼까 하고 가이드북으로 가는길을 확인하다 발견한 우리의 무지.
그곳은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 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과 더불어 러시아 발레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볼쇼이 극장.
그리고 볼쇼이 극장을 마주보고 서서 좌우로도 크고작은 극장
여기는 극장광장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사진들을 찍어대더라.
모스크바에서 이틀 머무는 동안 이때 한 삼십여분 모습을 드러냈던 해가, 내가 유일하게 본 해였다.
회색 구름의 모스크바가 여전히 익숙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낭만적인 햇빛이 비추던 이 거리,이 순간도 아주 멋졌다.
# 간식 - 반해버린 블린느가게
굼 백화점을 싸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 들어온 블린느 가게.
'블린느'란 춘빙, 밀전병, 크레페와 비슷한 모양새의 '러시아판 밀가루 전' 의 이름인데
러시아 간식거리중엔 꽤나 맛있다는 녀석으로 소문이 자자하여
일부러 찾아왔다.
우리가 고른 건 연어크림 블린느와 홍차 두잔.
난 원래 나라 안가리고 전류는 전부 좋아하는데
많이 달지도 않고 많이 느끼하지도 않은 요놈은 나름 또 색다른 맛.
가볍게 들어왔다가 무거운 미련을 잔뜩 남기고 온 블린느 가게
한번 더 꼭 먹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 닿아 러시아를 뜰 때까지 결국 이때 먹은 블린느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역시 외쿡에선, 여건이 될때 무조건 해놔야 한다는 진리가,,)
▲ 오른쪽이 연어크림 블린느, 왼쪽은 두툼한 레몬을 띄워준 인심 좋은 홍차
메뉴에 까막눈이어도 러시아에서의 메뉴선정은 대체적으로 성공적인 편이었다. (쭘 백화점만 좀 안습)
▲ 굼 백화점 마켓에서 팔던 생선의 비주얼. 강렬하다
# 펙토파를 찾아라
키릴문자의 오묘한 매력은 흔히 보는 영어 알파벳이 전혀 다른 발음으로 읽히는 데서 오는 혼란스러움도 한몫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이 P(:R발음) C(:S발음) H(:N발음) 등이다.
PECTOPAH = 그럼 요 녀석은?
네, '식당' 이 됩니다.
우스갯소리로
키릴문자 익히기를 포기한 외국인들은
그냥 러시아에서 밥을 먹으려면 PECTOPAH, 즉 펙토파를 찾으면 된다고 했단다.
펙토파에 가면 밥을 준다고.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을 땐 깔깔거리고 웃었는데,
식당을 찾아 헤메던 우리가 이 간판(▼)을 봤을때의 그 간결한 충격이란!
(우리는 그 후로 그냥 '펙토파'를 정식단어로 인정했다.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잖아!! )
러시아에선 언뜻 둘러봐도 음식점들이 눈에 많이 띄지 않았다.
식당은 거의 정식레스토랑의 느낌.
아마 대부분 날도 춥고 물가도 비싸고 살기 팍팍하여 외식은 많이 안 하는 모양인 듯 싶다.
첫날부터 푸드코트에서 끼니를 때우던 우리는
둘째날 참새언덕에 도착해서야 고대하던 '펙토파'를 만날 수 있었다. (참새언덕은 이래서 더 반갑기도 했다.)
추운산책을 마친 우리를 따스하게 반겨준 러시아의 펙토파.
▲ 러시아 화폐 RUB: 루블
메뉴를 펼치자마자 '비싸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러시아 물가가 살인적이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그리고 우리가 첫 레스토랑이 기뻐서 마구시켜먹기도 했지만
맘 놓고 시켜먹었다간 정말 가진 돈이 곧 떨어져 밖에서 차가운 흑빵을 뜯어먹을지도 모를 일이다.
▲ 역시 러시아를 대표하는 건 '흑빵'
처음 맛본 러시아의 레스토랑은
생각보다 음식이 매우 훌륭했고,
날것 그대로의 음식(특히 베이컨이 살아숨쉬던 샐러드) 재료 자체의 맛도 인상적이었다.
▲ 메인디쉬, 송아지고기 요리
▲ 러쉬안이 즐겨찾는 '보르쉬'라는 수프.
사우어크림과 흑빵과 같이 먹는데 생긴건 붉지만, 맵거나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니 입맛에 착 맞는다.
샐러드, 수프, 송아지 고기요리와 물을 사먹고 2750루블 (한화로 약 11만원 )
따뜻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행복 ~_~
역시 여행에 식도락은 큰 즐거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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