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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Russia

M찾기:러시아의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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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지하철은 역사를 담고 있는 명물이라 했다. 지하철 역사마다 걸려 있는 그림이나 장식물들이 내노라 하는 건축가의 작품들이며 역마다 꾸며놓은 것이 다 달라 눈을 즐겁게 한다.


특이할만 한 건, 일반적으로 유행하는 모던한 양식이 아닌 상당한 고전 양식이라는 것. 지하철이 쿵쾅거리고 드나드는 천장엔 화려한 금장 샹들리에가 다 붙어있고, 대리석으로 깔린 계단은 고운 옥색을 띠고 있다. 흔하게 지나는 벽에도 색감 좋은 서유럽풍 그림이 많다. 아담하니 안온한 분위기를 내는 매표소 앞에 열평 남짓한 공간은 나무기둥에 돔지붕식으로 마무리하였는데 군데군데 장식들이 꽤나 고풍스럽다.


▲ 에스컬레이터를 몰래 찍기 위해 동원된 코스타커피. 그리고 그 위에는 지하철 토큰



두번째 특징은 에스컬레이터가 무지 길고 빠르다는 것.
침공의 위협이었을까. 지하보도와 지하철로 대표되는 지하세계(?)가 발달한 이 도시는 땅 아래로도 한참 깊이 내려간다. 거의 100미터에 육박하는 에스컬레이터의 길이. 게다가 우리나라 같으면 중간중간 컷트했을만 한데 여긴 한방에 쭉 간다. 게다가 속도는 거의 우리나라의 두배, 체감속도는 서너배. 탈때 핸드레일을 잡지 않으면 정말 뒤로 넘어간다.(나 여러번 움찔했음)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니고, 길이도 느무 길어서 그냥 꽉꽉 채워서 움직일 뿐. 행여 러시안들이 한줄로 서준다거나 내가 늘어선 사람들을 헤치고 올라갈 여지는 별로 없다. 한번 올라가기 시작하면 한 5층높이는 걸어올라갈 각오를 해야할 정도니 그나마 시도할 생각도 잘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큰 특징은 광고가 별로 없다는 것.
그 유명한 굼도 국영 백화점인데 말 다 했지.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소위 '국영'이 가능한 대국이여서 가능한 장점들은 분명 있으니까.
온갖 광고로 도배되어 이게 역사인지, 광고판인지 가늠가지 않는 이 시대의 많은 지하철들과는 달리 깔끔담백한 외관을 자랑한다.

여긴 금장으로 통일! 하면 그냥 냅다 금장이다.

 


▲ 3호선 마야코브스카야 역. 노어 아래 MAYAKOVSKAYA 라고 영어 표기가 되어 있다.
저 영어 표기가 한편으로는 도움이 될때도 있었으나, 우리나라식 영어 표기와는 또 달라서 한편으로는 더욱 헷갈리게 하는 주범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 숙소가 있던 지하철역은 BД HX였는데

B는 B고 Д 는 D 이고 H는  N발음 X는 H발음인데..
음. 그럼 ㅂㄷㄴㅎ .......브드느흐? 이게 맞나,  이름이 뭐 이래 ? -_-


이 역 이름은 '베데엔하'였다. 이러니 방송을 해도 알아들을 리가 있나.

당시의 브드느흐와 베데엔하의 간극을 말재간으로 표현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아서
주절주절 쓰자니 너무 길어지고, 러시아어 동원해서 쓰자니 읽어보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없으면 별로 공감하지 못할 것 같아 고민이 되지만
뭐 어쨌든. 베데엔하라는 정상 발음을 알아내고 한참이나 웃어댔던 기억은 잊을 수 없을 듯.




#바라뵈븨고리 역 찾기

혹자의 표현을 빌린 '현지인처럼 여행하기'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면,
그건 '현지인처럼 대중교통 이용하기'쯤 될 것이다.

지도를 쓰윽 보고 공간감각(?)을 한껏 발휘하여
도보,지하철,버스,트램 등 각종 교통수단을 활용한 최단거리를 찾아내는 일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참새언덕에서 밥을 먹고 난뒤 돌아가기 위해서 지도를 살펴보니, 가까운 곳에 지하철역이 하나 있었다. 

이름이 '바라뵈븨고리'
정말 안외워지는 역이름이다.
(아직도 볼때마다 헷갈려 바라뵈븨, 바라뵈뵈, 바바로뵈,바라보뵈 난리를 친다.)

여전히 친절하지 않은 가이드북의 지도를 따라 일단 트램을 타고 무작정 한두정거장 내려왔다.
모스크바 강이 굽이쳐 둘러 나가는 걸 보니
분명 지도상으로 여기 어디쯤 되어 보이는데. 대충 둘러봐도 지하철이 안보인다.


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는 아저씨가 하나 있길래 별 기대 없이 혹시 지하철이 어디 있냐 물어보았다.
아저씨는 놀랍게도, 굉장히 유창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며
우니버시타트 역을 찾아가라고 일러주었다.(보아하니 외국인학교 앞 같았음)

아뇨, 아저씨, 우리가 찾고 싶은 건 바라뵈븨고리역인데...

그 분은 선한 얼굴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거긴 거리가 조금 가까울 순 있지만 빙빙 돌아서 사선으로 내려가 꺾어서 어쩌고 계단을 저쩌고 하며 찾아가기 힘드니 Strongly recommend 자기가 추천해준 역으로 1km만 걸어가면 된다고 하셨다. 거긴 그냥 쭉 직진이라며.

아주 유창하게 영어하시는 분을 만나 눈물나게 고맙긴 한데, 아니 아저씨. 우리는 이 역을 꼭 찾아가고 싶다구요.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하고 해맑은 미소를 띄우며 뒤로 돌아선 우리들은 아저씨가 가르쳐준 길을 등지고 오기로라도 바라뵈븨 역을 찾아가고야 말리라 다짐.
우리가 언덕에 있어 약간 높이가 있으니, 걸어 내려가 평지로 가야만 지하철 역을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갔다가 길이 끊겨 되돌아 나오고, 
되돌아 나오면서 우리랑 똑같이 길 헤메던 다른 건장한 러시안 남자들 셋에 둘러싸여 잠시 살짝 긴장하고
통밥 굴려 사선 방향전환, 계단, 언덕을 내려가 산책길같은 코스를 지나 마침내 그 역을 만났다.


▲ 저 멀리 역 가운데에 빨간색 M이 보이는가 . 우리의 등대와도 같았던 M표시!

▼ 이 역 뿐 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만난 다른 지하철 역들도 다 M이 요롷코롬 숨어있어서 그 표시를 발견할 때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모스크바 강위로 보이는 철로 중간에, 역이 있었다.
강폭이 넓지 않은 강이라서 지하철이 강 위에 있는 역에 서고, 승객은 강의 저쪽 건너편으로도, 이쪽 건너편으로도 내릴 수 있다.


▲ 그리고 물론, 걸어서도 건널 수 있다. 위에 보이는 게 걷는 길.

 


 


누군가 러시아에 놀러간다고 한다면,
웅장한 엠게우와 소박한 참새언덕과 더불어 꼭 '바라뵈븨고리'역을 찾아가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참새언덕에서 트램을 타고 내려오며 참새언덕을 둘러싼 멋진 자작나무들을 구경할 수 있고
외국인학교 앞에서 언덕경사를 가로질러 내려오는 길은 예쁜 정원처럼 꾸며져 있는 공기좋은 산책길이며
바라뵈븨고리역 앞에서는 조용하고 한적한 모스크바 강변을 따라 걷는 현지인놀이도 가능.
원하면 걸어서 모스크바 강도 건널 수 있으며 다 건너면 반대편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가능한 접근성까지!


쓰다보니 바라뵈븨고리 예찬글이 되었군.


여하튼, 미국인 아저씨 말을 거부하고 우리의 뜻을 관철한 반항(?)은 여러가지 즐거움을 안기며
이날의 특별 에피소드로 등극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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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에피소드의 휘날레로다가
러시아 크렘린 대폭발로 날 잔뜩 흥분케만든 미션임파서블을 보고
탐오빠가 빨간 M을(물론 지하철이다) 배경으로 간지나게 걸어나오는 장면을 꼽아놨는데

눈에 불을 켜도 찾아도 예고편,스틸컷,메이킹필름에도 다 안 나오고

심지어 절찬 상영중이신지라 VOD도 아직 없어서 캡쳐도 불가능 OTL

혹 미션임파서블 보러 가시는 분이 있다면 빨간 M찾기 놀이 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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