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이상한 꿈을 꾼다. 임신 전보다 많이 뒤척여서 그런지 무서운 꿈도 즐거운 꿈도 아닌데 그냥 좀 이치에 안맞는 괴팍한 내용들이라 고개를 갸우뚱 하는 그런 느낌.
방안이 무척 건조하게 느껴진다. 일어나 양치를 하고 물을 한잔 마셨다.바깥창문을 열었더니 파도소리가 들린다. 어제는 성난 바람소리가 많이 들렸는데 하루새 많이 가라앉았다. 새벽에는 분명 눈이 부시고 더웠는데 정동이 어디인지 모를만큼 해가 잘 안보인다. 오늘 12시에 비 예보가 있으니 점점 더 흐려질 모양이다.
아침은 라면이다. 여기 작은 컵라면이 아예 준비되어있네. 근처에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다른 옵션은 없다ㅎㅎ
이 숙소는 좋은 건지 안 좋은건지 잘 모르겠다. 가격대비 너무 작고 좀 모텔같은 느낌인데 나름 뷰는 좋고 침대도 좋다. 근데 누굴 추천하기엔 썩 별로인걸 보니 아쉬운 건 맞나봄.
잠시 해가 드는가 싶더니 이내 숨어버렸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많다는 날. 전국이 최악의 수준이었다. 차를 오래 타고 가면 그래도 경치라도 좋아야하는데 이건 갈수록 우울한 전경. 서랍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맨눈으로 도저히 볼 수가 없네
내륙으로 중앙 고속도로를 타고 제천을 거쳐 가는 길과 동해를 따라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는 길중 전자를 택했다. 거리가 만만치 않다. 한 350키로 정도.
제천에 두꺼비 식당이라는 맛집을 찾아내 점심을 먹었다. 예전에 제천왔을때는 맛집 검색할때 약초밥만 실컷 나오더니 요번에는 제대로 찾은듯. 등갈비찜과 곤드레 나물밥. 오 맛있어!
다시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70km가 남았다. 국도 두개와 지방도 하나를 갈아타고 가는 길이었는데, 길이 생각보다 죽 뻗고 잘 정비되어있었으며 가는 길이 내내 아름다워 볼만하였다. 높은 산속에 난 길이라 구불구불 오래걸릴까 우려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파크로쉬 주차장에 도착.
다섯시에 클래스인데 네시까지 도착하니 넉넉하였다. 멀리서 볼땐 숙소가 작고 낮았는데, 체크인할때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호텔 로비는 따뜻하고 품격있는 느낌. 딱 좋은 로비다. 적정한 공간낭비, 최소화된 인테리어, 특징있는 작품, 채광, 난로.
체크인할때 가족 단위보다 커플이 많은 것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하나같이 바바리 코트에 미니백을 들고 있었는데 보통은 패딩에 빅백을 걸친 체크인러들이 많았던 걸 기억해보면 분명 다른 분위기.
방은 606호에 배정되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 치고 뷰가 썩 좋지 않아서 반대편 뷰가 없는지 한번 물어나 봤더니 미리 얘기해야된다네?? 그냥 하는 소린지 뭔지
일단 뭐 방컨디션은 나쁘지 않으니 그냥 묵기로.
파크로쉬 웰니스 특별 클래스에 참여했다. 무려 이틀전에 예약해놓은 유료클래스. 아뜰리에라고 이름 붙은 작은 방에 들어가니 아로마 향기가 풍기고 두명이 날 기다리고 있는데 뭔가 살짝 어수선한 분위기. 이번 클래스의 참여자는 나 혼자라고 했다. 두 분 중 한분은 선생님이고, 한분은 서로 아시는 사이인지 보조 정도로 생각하라며 내 건너편에 앉으셨다. 뻘쭘함을 좀 덜어낸다고 해야하나..
곧이어 어색하게 시작했는데 내 앞에 필통같은 상자 안에는 목각인형이 하나 들어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유치원에서 쓸법한 스티커와 색깔 털실 뭉치 등을 내려놓으며 임산부의 내면이 원하는대로 이 인형을 꾸미라고 했다. 엽서도 한장 주면서 하고싶은 말을 쓰라고... 네??
(임산부를 위한) 컬러테라피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컬러에 따른 뭔가 전문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건 시작부터 너무 예상못한 시추에이션. 아무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인형놀이를 하라니. 50분 수업인데 저 인형에 목공풀칠좀 하면 한시간은 금방 갈텐데? 그럼 뭘 배우는 거지? 도무지 수업에 대해 뭘 설명해 줄 기세가 아니어서 이후의 내용을 먼저 물어봤는데 그냥 하라고 해서 더욱 당황했다. 수업을 듣는게 아니고 그냥 재료 가지고 놀이터에 앉은 기분? 그리고 마치 수업하는 교구는 어린이들 것 같은 수준이라서 더욱 황당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가만 있으니 엽서 꾸미는 건 쉽게 생각하고 이렇게 쓰라며 문구 예시를 들어주는데 그게 너무 진부해서 들을수록 얼척이 없었다. 앞에 앉은 분까지 합세하여 이렇게 하는 것이 좀 유치해보여도 태교에 좋고,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니 나는 점점 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임산부를 위한'이란 이름을 달고 있어서 이렇게 준비없이 해도 사람들이 화를 내지 않는 걸까. 그냥 일반 성인들을 위한 원데이클라스를 50분에 3.5만원 받으면서 이런식으로 하면 엄청난 저항을 받게 될덴데. 너무 느슨하다는 느낌이다.
결국 이러고 있으면 내 손해니,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그냥 포기하고 목각인형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냥 목공풀로 좋아하는 색깔을 붙이는 정도. 난 그냥 생각나는게 없어 초록 빨강 크리스마스 버전으로 했는데, 나중에 내가 사용한 색깔에 대한 설명을 하시는 걸 듣자니, 엄청난 의미가 있었네..... 덧붙인 설명은 컬러 관련된 책이나 자료로 피피티 발표를 준비해 놓은 수준이라고 느껴졌다. 그냥 대꾸할 힘도 없어 인형에 집중했다. 나중에 하도 조용히 만드니, 두분이 내게 그냥 별로 말붙이지 않아서 시간이 계속 흘렀고, 수업은 끝이 났다.
만들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일 아로마 클래스를 취소할까 말까.
수업이 끝나고 2층 라이브러리 독서의자에 누워 잠시 심신정화를 했다. 하아....
맘을 다스리고 저녁을 뭘 먹을까 일층에 들렀더니, 낮에만 해도 득시글 했던 자쿠지에 사람이 한명도 없이 다 빠졌다. 해질 무렵에 비까지 오니 이 산속 깊은 곳에 기온이 뚝 떨어진 것이지.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비온 뒤의 사진이 기가막히기 때문에, 그것도 해질 무렵이면 환상적으로! 나이스타이밍이 굿샷 건지고는 기분 좋아짐 ㅋㅋㅋ
저녁거리를 찾으러 정선 시내로 갔다. 저녁거리를 찾으러 간건데, 애매할바엔 하나로 마트 위에 잘 꾸며진 한우식당에서 소고기나 먹자고 급작스런 결정.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한우밥상. 조군이 메트로맨이 된 이후 회식때 소고기를 못 먹는다며 아우성이라 이번기회에 좀 달래주었다.
돌아와 로비 한켠에 꾸며진 불멍플레이스에서 함께 멍때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비교적 타인에게 나이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불편하거나 이건 아니올시다 상황에서는 꽤나 사람 (일부러) 불편하게끔 만드는것 같다고. 특히 내가 고객으로서 있을 때 입을 다물거나. 아니면 직설적인 질문이나 자조적인 시니컬한 대답 같은 걸 통해서 말이지. 잘 몰랐던 새로운 모습이었다. 평소엔 남에게 큰 바램(기대감)은 없는 편인데, 돈 주고 서비스나 용역을 사는 경우에는 만약 그 값에 맞지 않게 대충 때우려할 때 화가 난다. 파크로쉬에 유료 클래스 설문조사가 있다면 난 적나라하게 이야기할 것 같은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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