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Book

표백 - 장강명

 

 


장강명님의 책을 연달아 읽고나니 우연히 요 두책이 그런건지 원래 이분이 그런건지 그 전의 책과 기조(?)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오히려 오륙십 대의 나이 든 사람들이야말로 인생 저물어 가는데 잃을 거 없지 않나요. 젊은 사람들은 잃을 게 얼마나 많은데……. 일례로 시간을 2, 3년만 잃어버리면 H그룹 같은 데에서는 받아주지도 않잖아요. 나이 제한을 넘겼다면서.”
“대신에 그에 상응하는 경험이 남겠지.”
“무슨 경험이 있든 간에 나이를 넘기면 H그룹 공채에 서류도 못 내잖아요.”
“얘가 원래 좀 삐딱해요.”
누군가가 끼어들어 제지하려 했으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술을 마시면 멈추는 법이 없었다.
“저는요, 젊은이들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뭣 모르고 잘 속는 어린애들한테 이것저것 시켜봐서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고 되는 분야에는 기성세대들도 뛰어들겠다는 거 아닌가요? 도전이라는 게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라면 왜 그 일을 청년의 특권이라면서 양보합니까? 척 보기에도 승률이 희박해 보이니까 자기들은 안 하고 청년의 패기 운운 하는 거잖아요.”
“이름이 뭐랬지? 넌 우리 회사 오면 안 되겠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빈정대는 말투로 한마디 내뱉었다.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중략)

이미 세대를 거쳐와 알고 있는 20대의 이야기라서 그런가 금세 빠져들고 공감이 잘 되는 부분이 있었다. 나 역시 억울했고 분노했던 열정페이 같은 말들. 케릭터의 입을 빌어 쏟은 대사들로 대리만족도 느낄 수 있었다. 한번쯤은 생각해봤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조목조목 짚어주니 속이 시원했다.

1006.
하나님이 등장하면 모든 게 망가진다

인간은 자살하지 않고 살기 위해 신을 생각해낸 것이다. 이때까지의 세계사는 바로 이것에 불과한 거야. … 만인을 위한 구원의 길은 모든 사람에게 이 사실을 증명하는 데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최초에 그것을 자각한 자는 반드시 자살해야 한다.
― 《악령》, 도스토옙스키

적그리스도와 소크라테스, 재프루더, 재키가 처음 모였을 때 재키는 “혹시 종교가 있는 사람 있어?”라고 물었다.
재키 자신은 ‘무신론을 믿는다’고 말했다. 설사 신이 존재하더라도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나의 세계관은 세상에 신이나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는 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하느님이 등장하면 모든 게 망가져버려.”
재키는 설명했다.(중략)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정체모르는 쪽지와 케릭터의 비밀을 앞뒤 플롯으로 치밀하게 짜놓은 것이 다른 비슷비슷한 소설과 큰 차별점이었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신선한 스토리 역시 매력적이다. 그러나 도입부의 신선함보다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자살소동 이야기가 너무 길게 늘어지는 것은 좀 아쉬웠다.

가장 아쉬운 건 주인공 세연의 입을 통해 펼친 자살의 숭배랄까. (작가는 마지막에 반대 결론을 맺었다지만, 결론 전까지 와이두유리브닷컴의 소개 및 전개 과정이 훨씬 길고 설득적이어서 영향은 더 큰 듯 하다) 그리고 불필요하게 자세히 묘사된 추종자들의 사건. 게다가 오히려 추종자들의 착수 동기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내게는 괴기함만 더 낳았다.

아무리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높고 그게 현실이라고 해도, 책과 드라마 등등 컨텐츠에서 사람의 죽음을 함부로 다루거나 그것만이 세상 중한 의미를 담은 것으로 결론짓는 것에 난 좀 화가 난다.

현실을 음성화하지 말고 전면에 드러내놓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성교육처럼) ,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많은 소설에 이 소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건, 젊은 독자들에게 결국 결론은 이럴뿐이다 인식하게끔 하는 단초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하필 내가 찾아보는 몇 안되는 소설들이 그런 건가. 내가 읽은 한국작가들의 젊은이들에 대한 소설은 20대 특유의 찌질함과 우울감, 그리고 자살을 다루고 있는 경우가 유독 많았다. 마치 80년대의 소설들이 ‘처절한 시대가운데서도 꿋꿋하여라’는 식의 시대정신을 다룬 식이 많은 것처럼.

한편 추종자들이 연달아 자살하면서 외견적으로 삶의 가장 정점 (예를 들면 취업에 갓 성공, 모든 학점 A로 이수 , 자녀 잘 낳고 키우는 중) 에서 자살해야 우울증으로 몰리지 않는다. 이건 사회적 운동이다. 의지의 표명이다 . 이런 이야기를 해서 원인을 우울증으로만 모는 것도 어찌보면 폭력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화하는 건 싫었지만-
그것 역시 운동이라면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중략)
‘큰 꿈 없는 세대’를 만드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한국이 선진국이 되어가면서 사회체제가 안정되고 1970년대나 80년대처럼 파이가 많이 남지 않았다. 각 조직의 관료화가 완료돼 조직 내 세대교체가 쉽지 않아졌고, 새로운 일자리는 대개 서비스업에서 만들어지는 단순 노동거리다. 대단치도 않은 눈앞의 과실을 따기 위해 온 힘을 쏟다 보면 그만큼 생각의 폭이나 인물의 그릇이 잘아지게 된다.
말 잘 듣는 아이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교육이나 조직 문화도 문제겠고, 세계화가 갑자기 진행된 것도 관련이 있을 터다. 과거 한국 기준으로는 큰 꿈이던 것이 이제는 그렇지 않으니까.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 능통한 세대’라는 주장은 칭얼거림에 불과하다. 그게 무슨 소용인가? 과거 세대도 그들에게 주어진 무대에서 썩 잘했다.
게다가 과거 세대들은 민주주의라든가 자본주의 정착, 근대 체제로의 편입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과업도 이미 달성했다. 이제 남은 것은 양성 평등이나 환경문제와 같은 거대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소주제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그다음에 나오게 될 이슈들은 한 세대의 과업이나 종교의 대용품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사소한 것이리라. 성적 소수자 보호, 동물 보호, 장애인 인권 문제, 소비자 운동, 저개발국 원조 프로그램 등등.
그래서 이 세대는 큰 꿈을 가질 수 없게 됐다.

“비겁자 콤플렉스가 뭐야?”
“나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한 번도 스스로 내리지 못했어. 모든 걸 부모나 사회가 원하는 대로 했지. 고등학생 때에는 대학을 가지 않고 시를 쓰거나 영화감독이 되는 걸 꿈꾸기도 했지. 그런데 실천하지는 못했어. 대단한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난 때문에 고생한 적도 없지. 중간고사 성적이 떨어지는 것 따위 외에 진짜 위기라는 걸 내가 겪어본 적이 있을까? 아버지 사업이 망한 적도 없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지도 않았지. 공부도 잘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좋은 분이야. 그렇게 여기까지 왔어. 돌이켜보면 모든 게 합리적인 결정이었지만, 너무 쉬운 길로만 걸어왔다는 데에 죄책감을 느껴. 독립운동가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자수성가한 사람 이야기만 들어도 부끄러워. 안전하게만 살아온 나 자신이 부끄러워.”
재키는 더 얘기해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복수! 얼마나 가슴 설레는 단어인가. 이 단어는 어떤 이유도 묻지 않는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감정. 모든 회의(懷疑)로부터 그를 구해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동기. 사랑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는 열정.
만약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난다면 어떻게 하지? 그럴 때엔 무슨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켜야 하지? 위대한 제국을 위하여? 인민의 승리를 위하여? 아니, 그는 체사레 보르자가 쓴 것과 같은 구호를 쓸 것이다. ‘체사레 혹은 무(無).’ 나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무가 되어라.
복수와 정복은 결코 완성되어서는 안 되었다. 이뤄지는 순간 그 과제는 곧 거대한 공허로 변해버릴 테니까. 그 목표는 언제나 두어 발 앞에서 빛나고 있어야 했다. 아마 최선은 복수와 세계 정복을 눈앞에 두고 한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운명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리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경지에 오른 무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죽을 땅을 찾았다’거나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민주 시대의 사람들이 고매한 야심을 갖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그들의 재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재산을 늘리기 위해 너무 격렬하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동원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시야를 급속히 제한시킬 수밖에 없고 그들의 영향력 또한 줄어든다.
― 《미국의 민주주의》, A. 토크빌

너희에게 문제는, 너희가 세운 그런 목표가 뭔가 찜찜하게 여겨진다는 것이겠지.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세상과 타협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게 문제겠지? 그런 목표들이 자기기만처럼 여겨지고 말이야.
난 주관적인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사는 건 전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신이 없다고 해도 말이야. 신이 없고 내세가 없으면 역사도 없는 걸까? 그렇다고 본다면 각자의 쾌락을 추구하면 되지. 그것만큼 확실한 건 없으니까. 그리고 역사가 없는 것도 아닐 거야. 우리는 본성상 남의 시선을, 내가 죽은 다음에라도 신경 쓰는 존재거든. 너희도 죽기 전에 마지막 할 일이 하드디스크의 야동 지우는 거라고 농담하잖아.
그러니까 자기만족을 위해 어떤 일을 하겠다거나, 역사에 남는 일을 하겠다거나 하는 목표는 다 좋은 거야. 그걸로 완결된 거야. 누구의 승인을 받거나 할 필요가 없어.
그런데 왜 우리가 세운 목표가 마음에 차지 않는 걸까? 그 목표들이 시시하다는 걸 우리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이야. 충분히 위대한 목표는 그 자체로 우리 가슴에 불을 지르고, 그러면 그걸로 충만해지지. 괜찮은 직업을 갖고 애를 낳아서 기른다는 목표로는 절대 이를 수 없는 경지야

나는 순교할 기회를 잡은 예비 성인이야. 이 죽음은 내 인생을 완성하는 거야. 같잖은 시인이나 로커들의 죽음보다 이게 훨씬 의미 있는 거야. 왜 내가 이 기회를 저버려야 해? 다른 기회를 기다리는 동안 닳고 닳아 지금의 내가 아니게 되는 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죽음이야. 나는 내가 지금처럼 날카로울 때 죽고 싶어.
게다가 지금의 나를 봐. 앞으로 살 날이 정해져 있고 목숨을 바쳐 추진해야 할 목적이 생기니 지금 얼마나 활기에 차 있는지. 지금껏 이렇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어.”
제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재키는 제리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계획은 너 자신을 위해서인 거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건 아니지?”
“어떤 일이 위대해지려면 그 시대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어야 해. 그러니까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이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건 내가 시대정신을 꿰뚫어봤다는 뜻이 되는 거야.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을 할 때 그 동기가 그저 순수하기만 했을까, 아무런 정치적 득실을 고려하지 않고? 도스토옙스키가 도박 빚을 갚으려고 《죄와 벌》을 썼다고 해서 그 책의 가치가 달라져?”

나는 우리의 자살 선언에 대해서 이 사회도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리라 확신한다.
우리가 자살을 한 뒤 사회가 궁극적으로 바뀌지 못해도 괜찮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 분명히 거부 의사를 밝혔다. 버나드 맬러머드는 “인간의 가치 하락은 인간이 하등의 항의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항의했다.

청년 연대니 청년 노조니 하는 단체도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별 효과가 없으리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 데 더해, 무엇보다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공격은 언제나 번개같이 빠르고, 위협적이어야 한다. (중략)


세계는 완성되었다, 그래서 삶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자살만이 대안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그룹이 있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론(《역사의 종말》), 카뮈의 ‘부조리’론(《시지프 신화》), 도스토옙스키의 ‘논리적 자살’론(《악령》) 등이 흥미롭게 뒤엉켜서 21세기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배경으로 이렇게 다시 창궐하였다. 우리 시대의 청춘들을 향한 비범한 관심과 애정 속에서 탄생한 악마적인 논리이지만, 바로 그 관심과 애정 때문에라도 맞서야 할 논리이기도 하다. 작가는 평범하고 사소한 삶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자신이 창조한 이 파국적 저항의 논리에 맞선다. 작가와 작품의 격전. 톨스토이의 소설에서는 작가가 이기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는 작품이 이긴다. 이 소설에서는 어느 쪽이 이겼나? 어느 쪽이건 이것은 패자가 없는 싸움이다. 논쟁적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작가의 등장이 반갑다. - 신형철(문학평론가)


어쨌거나 소설을 관통하여 그가 말하고싶은 ‘표백’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은 충분히 공감 및 체득되었고, 재미도 꽤나 뛰어났으니 소설 추천! (갑자기 해피엔딩ㅋㅋㅋ)

'Review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순간의 물리학 - 카를로 로벨리  (0) 2020.09.21
룬샷 - 사피 바칼  (0) 2020.09.11
표백 - 장강명  (0) 2020.09.07
책, 이게 뭐라고 - 장강명 에세이  (0) 2020.09.04
김연수님 두권의 책  (2) 2020.09.02
아무튼, 발레 - 최민영  (0) 2020.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