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정리를 끝낸 방은 고요하다. 나즈막한 히터소리와 늦게까지 운행하는 트램소리가 간간히 창밖에서 들려올 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추워서 당황했던 첫 인상과는 다르게 이 easy stay 숙소도 이틀 묵어본 지금 꽤 흡족하다.여느 원룸크기만한 널찍한 방과 따뜻한 백열조명, 모던하고 편안한 바닥이 넓은 소파, 식탁과 높은 발받침이 있는 네개의 의자까지 장기투숙객에게도 생활이 편안한 요긴한 곳이다. 벽에 걸린 그림과 마루, 카펫의 경계를 짓는 타원형 라인도 그 각도가 예사롭지 않다.
어느공간이든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는 주관적 평가로 바뀌게 되는데 이 숙소 역시 아름다운 도시 멜번에서 머물렀던 숙소라는 이유만으로도 나에게는 느낌이 좋다. st. kilda 라는 먼 곳에 있어 교통 여건은 불리했지만, 시내에서 이 곳까지의 호주다운 전원풍경도 보게 해줬고, 첫날 버스를 못타 헤메고 있을 때 무려 숙소 앞까지 태워다준 친절한 외국인 폴을 만나는 행운도 있을 수 있었다.
무엇이든 마지막이란 말 앞에서는 특별해지고 아쉬운 마음이 들고 떠나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이런 마음에 마음이 아릴정도로 괴롭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건 전에 언급한 스트레스나 불안감 때문이 아니라 어느 도시에 가서든 동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여행하던 장소를 떠나올때는 마찬가지이고 다시 찾아오겠다는 다짐과, 사진과, 마음속 느낌을 간직한 채 좋은 마음으로 떠나오는 것이 마음을 정리하고 후유증을 털어버리며 허황된 동경같은 흐림수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