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이루를 떠나 본격적으로 북쪽으로 향했다. 오늘의 오후 일정은 브라가를 들렸다가 포르투로 입성하는 것. 출발전에 이날의 숙박을 정하지 않고 열어두었었는데, 브라가에서 하루 잘까 포르투에서 하루 더 잘까 고민하다가 결정적으로 아베이루 시내가 저녁에 일찌감치 문을 닫는걸 보고 브라가도 포기하게 되었다. 대신 포르투 노바드가이아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포르투로부터 50km정도 북쪽에 자리잡은 브라가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이긴 해도 포르투 시내를 슬쩍 거쳐가는 길이다. 말로만 듣던 도루강변에 예쁘게 자리잡은 포르투가 근처로 내려다보일 때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도시를 내가 언제봤다고 그럴까. 기대감이란 그만큼 기묘한 것이다. 높은 다리를 거쳐 지나가는 길이라 심장이 콩닥콩닥했는데 이게 설마 설레임과 헷갈린 것은 아니겠지.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는 최대한 가까운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오니 시청광장인 모양이다.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핵심 볼거리인 봄 제수스성당으로 가기로 하였다.
브라가는 포르투갈 북부의 중심도시로 미뉴대학이 자리하고 있어 활기차고 젊은 도시다. 또한 종교적으로도 역사가 깊은 곳이라 하는데 그것은 종교적 랜드마크가 될법한 아주 유명한 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봄 제주스 두 몬트 (Bom Jesus Do Monte) - 언덕위의 좋은 예수” 라는 뜻의 이 성당은 유네스코가 일찌감치 문화유산으로 지정해놓은 곳이다.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성당의 사진 단 한 장을 보았을 뿐인데, 그순간 브라가가 목적지로 바로 추가되었다. 과연 내눈으로 직접 보면 어떨지 기대되네 ㅎㅎ
남편과 여행할때 식당을 선정하는건 보통 그의 뜻에 따라 하는데, 가끔 맛있는 것을 택하기보다 밥을 해결해야하는 수준이 될 때면 가끔 나 역시 번거로움을 나눠야겠다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론리 플래닛 책자에서 적당한 곳을 찍어 한걸음에 찾아갔다. 대성당 근처에 있는 CALDO ENTORNADO라는 식당이다.
바깥에서 본 것과 다르게, 안은 꽤나 안락하다. 야외를 배회하는 여행자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줄것 같은 안온한 장소. ‘오늘의 메뉴’ 가 있어 시켰더니 생선구이 하나와 덮밥과 메뉴를 스프와 차까지 곁들여 대접받았다. 늦은 점심에도 식당 안 손님이 적잖은걸 보니 도시가 활발한 걸 느낄 수 있다.
브라가 대성당도 멋지기로는 꽤 유명한 듯 하였는데, 표 끊으려고 줄서서 기다리는데 시스템도 엉망인 곳에서 직원까지 야멸차게 냉대하는 터라 우리도 빈정상하여 발길을 돌려버렸다. 뭐가 이렇게 불만이신지- 흥 포르투갈 사람들의 친절함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에라이 관광은 관두고 커피나 마시자 하여 검색해보았더니 이 도시엔 스타벅스가 있다는 소식!! 유럽에 귀한 카페라 반갑기 그지없어 먼데도 물어물어 그곳을 찾아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절실하다. 그란데로 시켜야지!
그러나 극적으로 상봉한 스타벅스보다도 눈길을 사로잡은 건 의외로 브라가의 초대형 꽃 광장이었다. 성당과 시청을 기준으로 조금씩 고저가 있는 도시의 구조를 활용하여 길고 곧게 뻗은 꽃 광장이 멋들어졌다.
이제 본 목적지인 성당으로 향할 시간이다. 차로 10여분 정도면 충분하다.
입구도착!
여기만 봐서는 이곳의 명성을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계단이 많기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 교통약자(?)를 위해 간편히 올라갈수 있는 푸니쿨라가 마련되어 있어 그걸 이용하기로 했다.
가방안에 동전이 대체 몇갠지 짤랑이다 못해 철컹거리는 동전 소리가 나는 가죽가방을 멘 아저씨가 나타났다. 우리에게 왕복과 편도 중 어느 걸 탈지 묻고는 흰색 작은 종이 티켓 하나를 내어준다. 표를 끊으면 대기실에라도 들여보내줄 줄 알았더니만 그저 무심하게 문을 닫아버리고 사람이 찰때까지 기다리는 모양.
우리 앞엔 중년 부부 한쌍 뿐이라, 맨 앞에 탈줄 알고 설레였더니 의외로 맨앞인줄 알았던 창문을 넘어 바깥으로 걸터앉는 좌석이 있었다. 우리 뒤에 따라온 한 외국 연인이 그 안으로 쏠랑 들어가 다음사람은 오지 말라는 듯 크로스바를 내려버렸다. 그리곤 탑승객 전원이 쳐다보는 앞 유리창 앞에서 셀카부터 뒷통수 공격 까지 가지가지 공격을 퍼붓는다. 어디가도 에정행각 커플은 존재하는구나. 오랜만에 쏠로부대 소환각일세
푸니쿨라가 출발했다. 멀긴 해도 한눈에 들어오는 목적지였기 때문에 오히려 짧게 느껴졌지만, 각도는 상당하였다. 뭐, 그래도 홍콩의 푸니쿨라가 더 경사가 심했던 기분이긴 하다. 텐션을 끌어올리는 푸니쿨라 내의 분위기도 무시할순 없다. 홍콩에서는 트램에 거의 터질듯하게 꽉꽉 들어찬 사람들이 덜컹거릴때마다 환호성을 질렀었으니. 홍콩의 인구밀도와 포르투갈의 인구밀도는 천지차이일듯.
내리고 나니 올라온 길이 까마득하다. 걸어오기엔 멀다멀어. 여행지에선 체력을 아껴야한다.
푸니쿨라에서 내리자마자 성당이 바로 앞에 등장하고, 맞은 편으로는 브라가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전망이 나타났다.
성당이 자리잡은 넓직한 터 주변에 물이 흐르는 정원들, 아줄레주로 꾸며놓은 외벽이나 우뚝 솟은 조각상들이 한껏 자리잡고 있었는데, 모두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 않게 딱 아름다웠다.
성당 내부도 구경해보았다. 성당내의 장식은 보통 추상적이기 마련인데, 너무 사실적인 조각들로 정면이 채워져있어서 좀 놀랐네. 크지 않지만 부드럽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충만하다.
자, 이제 이 성당의 백미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무엇보다 이곳은 계단! 계단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곳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성당은 '언덕'위에 예배당이 자리잡고 있다. 거기 이르기까지 무려 116m 높이 581개의 계단이 놓여있다. 지그재그 모양으로 만들어진 바로크 양식의 계단은 총 8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 다섯층은 인간의 오감을 표현하고, 위 세층은 믿음·소망·사랑이 표현되었다고 한다. 특히 아래쪽에는 인간의 오감을 표현하기 위해 시각·촉각·미각·청각·후각을 각각 눈, 코, 귀 등으로 표현한 분수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
성당을 위로 바라보면, 대칭이 완벽한 계단이 쌓여있고, 성당에서 내려다보는 쪽으로는 브라가 전망이 펼쳐진다.
언젠가 알쓸신잡에서 유현준님이 부석사를 방문하면서 시퀀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 부석사 가는 길이 좁은 길과 울창한 숲을 지나 웅장한 부석사를 만났을 때 마치 극락에 온 느낌이었을 것이나, 숲을 통과한 후 엄청난 급경사의 108계단을 오르며 쉽게 닿을 수 없는 극락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 또한 계단을 오르면서 심박수가 빨라지고 흥분된 상태에서 맞이하게 되면 더더욱 감성적이 되고, 이렇게 여러단계를 거쳐 나타나는 건물이야말로 권위를 가지게 된다는 이것을 건물이 가진 시퀀스로 설명하였다.
푸니쿨라는 편하긴 하지만 시퀀스 붕괴를 일으켰다. 다른 어떤 성당보다 시퀀스 붕괴가 심각한 이유는 이곳이 바로 그 ‘셀수 없이 수많은’ 계단으로 아름답고 성실하게 장식되어있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하게 된 우리는 , 내려오면서 수백번 예쁘다고 감탄했지만, 아마 오르면서 보았으면 감동이 두배였으리라. 그리고 성심이 있다면 몇십, 몇백배가 되었겠지..
계단사이로 꾸민 장식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수가 없다. 이렇게 정교한데 또 너무 수없이 많아서 한번에 다 구경하기 벅차다.
아래로 점점 내려올수록 성당의 위용이 더욱 더 살아나는 건, 애초에 우리가 건너뛴 그 코스 때문이다. 이토록 완벽한 대칭이라니 여기서 처음 봤다면 그 아름다움(혹은 감동적인 마음)에 한참동안 오르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더이상 멋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자꾸 갱신하는 감동을 어쩔꼬 ㅋㅋㅋ 사진 셔터만 무한 발사
오직 봄 제주스 성당을 보기 위해 브라가를 들르는 반나절 이상의 시간이 들었지만, 충분히 그럴만 하다고 느껴졌다. 정말이지 세계의 위대한 건축물들의 반열에 충분히 들만한 곳이다.
자 이제, 마지막 종착지 포르투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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