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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Portugal

포르투갈 12 - 아베이루 : 예쁜 이름과 예쁜 운하를 가진 작은 마을

 

 

 

여행 여섯째날

​​아침마다 꿈을 꾸는데 무슨 꿈인지를 잘 모르겠다. 시차가 있어서 자꾸 꿈을 꾸는 건지. 알람이 울린게 6시반쯤이었나, 일어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제도 그저 잠이 들어버린 것 같은데 시간을 아껴써야 한다. 밖은 아직 어둑하여 조금 기다리다가 7시쯤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였다. 아베이루 메인 운하를 한바퀴 운행하는 배를 타고, 근처의 코스타노바에 들르는 것 정도가 오늘 오전에 할 일.

창 너머로 조금씩 밝아지는 도시가 보인다

 

7시 30분부터 조식이 시작이라 일착을 해볼까 서둘렀다. 부지런 떤다고 7시 40분에 내려갔는데 왠걸 벌써 두팀이나 앉아있네. 숙소의 자그마한 조식 코너는 며칠째 비슷한 음식들이다. 굽는 빵, 치즈, 버터, 주스, 커피, 계란, 햄, 요거트, 시리얼 등

이 숙소는 작지만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심플하고 멋스런 가구, 오브제나 액자들이 무드 조성에 큰 몫을 한다. 어제 로비도 규모는 작지만 칼라풀한 그림이 크게 걸려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었는데, 현대적이고 모던한 감성을 지향하는 거라면 합격 드릴께요.

아베이루는 작은 도시이고 우리도 아주 잠깐 머물다 갈 뿐이지만 기억의 중심에는 이 숙소가 있게 될것 같다.

어제 숙소방에 있던 '페르난도 페소아'의 책갈피만 봐도 그렇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유명 시인을 캐리커쳐로 표현한 그 귀여운 기념품이, 내게는 포르투갈의 센스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이런 작은 포인트들이 아무리 작은 숙소 라도 외국인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을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한켠에 오렌지 착즙기가 있어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한잔 갈아보았다. 100% 착즙 생과일 주스인데 생각보다 좀 덜 달달하다. 내 손으로 고른 오렌지 두개를 눈앞에서 가는데도 이정도라니.. 이건 비율의 문제가 아니라 당도의 문제 아닌가..

문득 동남아의 200% 과일 맛에 외국인들이 놀랄만도 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실실 새 나온다. 나도 필리핀에 가서 망고 먹어보기 전까지, 내가 알던 망고는 망고가 아니었더랬지. 열대과일이면 모름지기 열대에 가서 먹어야지. 숫(?)자연에 가까운 것으로는 그만한 곳이 없다. 특정한 과일이고 야채고 기후와 땅에 맞는 작물은 확실히 따로 있다. 해외여행을 가면 날씨와 더불어 식생에 대해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기분. 그런 관점에서 다시 보니 요동네는 또 풍성한 샐러드는 별로 안먹는 것 같네. 과일이나 좀 주워먹을 뿐이다.

여기도 따뜻한 남쪽나라니 햇볕은 충분할 것 같은데, 토지가 황량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떼루아의 차이인가. 이땅에서 잘 나는 것은 뭐지? 올리브인가? 뭐가 됐든 그걸 꼭 먹어보고 가야되는데 -

씻고 짐을 챙겨나와 운하를 따라 걸었다.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자태가 어제 저녁에 본 운하와는 생판 다른 모습이다.

배들이 배안에 고인 물을 퍼서 나르면서 여기저기 의자를 펴고 정비를 하고 있다. 도대체 배가 몇척이나 깔린 건지. 운하 투어를 하는 회사도 다 다른것 같은데 꽤나 활황인가보다. 그 사이에 발빠른 직원이 한명 우리에게 성큼 다가와 말을 건넨다. 배의 코스를 대략 설명하고 간절하게 쳐다보는 눈빛에 어지간한 관광객 중 거절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여기는 모두 가격 통일, 코스 통일이다. 가격이 아예 바깥에 써 붙어 있어서 호갱이 될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굳이 다르다면 배의 색깔과 내부 인테리어 정도?

애초에 나오면서부터 운하 투어를 하기로 마음 먹었던 터라, 본격적으로는 안보는 척 하면서 마음에 듬직한 배를 고르느라 안그래도 눈알이 빠질 지경이었다. 못이기는 척 하며 그 영업하던 직원을 따라 들어간 배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전에 포르투갈의 축구 원탑이었다는 “에우레지오”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안쪽에는 화투짝 같은 매화꽃이 그려져 있었네. 동서양의 조화인가

우리를 일단 앉히고 또 다른 손님을 모집하러 나간 직원이 돌아오지 않는다. 십여분 기다리고 앉아 있으니 왜인지 호갱이 된 기분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그러나 이른 아침이라 손님도 별로 없는데 이대로 길어지면 우리가 배를 전세낼 수도 있겠다 싶은 기대감도 부풀어간다. 그에 부응하듯 배가 몇차례 시동을 걸어볼 때쯤인가. 아까 나갔던 직원이 여자들 몇을 데리고 잰 걸음으로 돌아오는 걸 걸 보고 배가 출발을 잠시 멈췄다.

중년의 멋쟁이 여자분 세분이 들어와 앉았다. 남아공에서 왔다며 유쾌하게 악수를 건넨다. 배가 로프를 풀고, 직원 하나가 카메라를 들고 등장하여 우리들에게 미처 준비치 못한 포즈를 요구한다. (내리면서 인화된 사진을 팔 속셈이겠지) 손님은 모두 다섯, 운전하는 아저씨 하나와 설명하는 아저씨 하나 까지 일곱이 이제 출발한다.

설명하는 아저씨는 고글을 얼굴에 딱 붙여 쓴 풍채 좋은 아저씨. 이런 데 일하는 분들이 늘 그렇듯이 넉살 좋은 소개와 유머를 갖추고 있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 배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뱃머리 장식이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게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배가 통과하는 다리마다 닿을락말락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것이 포인트인거 같은데 어떤 다리는 어쩔수 없이 닿을 수 밖에 없는 높이인지, 아저씨가 갑자기 뱃머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나무의 중간부분을 똑 잘라서 떼어냈다..! 

그리곤 다리를 통과하자 다시 이어 붙였다. 이것은 붙였다 뗐다가가 가능한 구조 ㅋㅋㅋㅋ 신기방기

옆에서 보면 요렇게 머리부분이 높다. 

처음 나무 장식 꼬다리를 손으로 잡아 내릴 땐 그저 웃음을 주기 위한 이벤트성 장난인 줄 알았는데 몇개의 다리를 지나다 보니 그 행동이 그냥 일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오십여분을 운행하면서 한 다섯번 넘게 떼었다 붙였다 하더니 나중엔 귀찮은 듯 아예 떼어버리고 내릴때까지 내비둔다 ㅋㅋㅋ

처음엔 얼마나 그 꼬리를 내렸다 올렸다 하는지 (그냥 낮게 만들면 되잖아! ) 비효율적으로 보였지만 , 반대로는 내가 얼마나 효율만이 우선시되는 곳에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 이곳에서는 매일 반복하는 그 동작들마저 관광객에게 웃음과 유머가 되고 의미가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꼬다리가 떨어진 상태 ㅋㅋㅋ

이 배의 또하나 특이한 점은 부부젤라 같은 나팔을 엄청 불어댄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그저 분위기를 업시키게 해주는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아저씨가 배끼리 서로 충돌하지 않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매우 장난치는 것처럼 그저 귀엽기만 함  ㅋ

등뒤에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가는길과 건물에 가려서 가는 길이 온도차가 많이 났다. 옷을 어째야 할 줄을 몰라 이거저거 걸쳐보다가 얇은 옷을 골라입고 머플러 하나를 숄처럼 두른 뒤에 햇빛에 대비한 모자와 안경을 갖추고 나왔는데 그늘에선 춥다가 햇빛에선 따뜻하다가 냉온탕 만끽. 그냥 어떤 배든, 운항하는 배는 바람때문에 춥다는 게 진리 ㅎㅎ

아베이루 운하투어는 50여분정도로 짧지 않았지만 아주 퐌타스틱 하진 않았다. ㅋㅋㅋ 폭이 작지도 크지도 않았고, 중간 지대를 벗어난 바깥쪽은 건물도 풍경도 막 예쁘거나 빽빽하지 않았다. 그저 아침에 배타고 분위기 낸 정도로 만족하기로.

내리며 에우라지오 앵콜 ㅋㅋㅋ

배에서 내려 동네를 산책 하다가 오부스 몰레스(Ovos Moles) 를 먹으러 상점 하나에 들어섰다. 아베이루의 지방의 특산 디저트라고 한다. 한개에 일유로씩 팔고 있었는데 하얀 조가비 모양 내지는 찌기 전 만두같은 모양?? 촉감은 예전 외할머니댁에서 자주 먹었던 모나카 맛이다.

속은 이런 모양

달다구리라길래 너무 달까봐 쬐금만 먹어봤는데 그렇게 막 단 건 아니고, 계란 노른자에 설탕이 가미되었으나 바깥에 밀가루나 탄수화물 로 중화되는 느낌. 밸런스가 좋은 디저트이다. 포르투갈 지방마다 특색 디저트를 맛보았지만, 한국에 기념품으로 가져온 건 결국 이 오부스 몰레스 였으니, 맛이 꽤나 맘에 들었던 것! 

마땅히 정해놓은 스케줄도 없고 정처없이 걸으며 몇군데 상점 구경을 했다. 특별할 건 없으나 진저술, 오크통에 그려진 등대 그림, 천연 소금 , 비누 향초 따위가 보인다. 포르투갈 전통음악인 파두 포스터 하나가 그나마 좀 괜찮아보였는데 너무 포스터만 사는 것 같아 고민하다가 후퇴​ - 

아침나절의 길거리는 어제 밤에 둘러보았던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이즈이나 역시나 눈부신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이 달랐다. 아베이루는 이 예쁘고 아담한 동네에 오래전 시절의 건물 몇개가 도열한 것과, 그리고 그 건물들을 둘러싼 운하와 칼라풀한 배들. 이것이 전부인 도시같다.
이곳이 ‘포르투갈의 작은 베니스’라고 불린다는 걸 들었었다. 본래 대단한 것을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적잖은 실망감이 느껴졌는데, ‘어딘가의 베니스’ 하는 식의 도시에서 더이상 나는 만족스럽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데이투어정도로 들를수도 있겠지만, 그저 매우 잘봐준 가이드북의 노력 정도로밖에 봐줄수가 없다.
그러나 그런 식상한 표현을 하지 않아야 한다면, 창의적이고 개성을 가지면서도 보편적으로 흥행해야하는 것은 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아주 특별남이 없는 소도시라면 말이지. 그래서 모두들 그렇게 쉽게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난 여전히 작더라도 고유명사가 되는 것이 더 좋다.

그래도 이 도시의 이름만은 너무나 예쁘다. AVE로 시작되는 우아한 느낌도. 영어 Aveiro의 알파벳 조합이나 한글 아베이루 4글자로 봐도 적절한 모음으로 귀엽게 매조지 되는 야무진 느낌도 좋다. 둥근원이 가득그려진 시청앞 광장의 돌바닥 타일도 ㅇ이 두번이나 들어간 아베이루 도시의 이름과 묘하게 매치된다.

아베이루를 떠나기 전, 근처 바다에 좀 들러보기로 했다. 아기자기하다고 소문나 관광포인트로 포스팅에서 여럿 봤던 도시, 코스타노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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