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잘 쓰여진 '여행의이유'를 읽고나니, 나 역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싶다는 욕구가 밀려온다.
여행을 주제로 한 비소설을 읽는 것은 주제선정이 좀 가볍다는 편견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캐주얼한 느낌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기분. 그냥 일반적인 보통사람의 삶과 어울린다는 기분. 굳이 타인과 오딧세이를 언급하여 여행을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아도, 여행은 어찌보면 샤넬백과 비슷한 중독이자 취미(혹은 사치)생활로 돈을 쓰는 하나의 방식이란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럴싸하게 포장되어있을뿐.
그래도 뭐 거창한 철학적 성찰은 그만두고, 그냥 나에게 주는 사소한 의미들을 나열해볼 순 있다. 이 부분엔 누구 못지않게 풍부한 사례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내 시간을 풍부하게 해준다. 이질적인 공간과 새로운 동반자, 여행지의 인물들이 사건을 만든다. 사건은 곧 이야기이고 잘 헤쳐나가면 해피엔딩, 못 헤쳐나가면 새드엔딩이 된다. 그러나 나는 새드를 해피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편이고 대체로 사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꿈보다 해몽 스타일이랄까. 아니 그보다 안될꿈은 해몽의 시도자체를 차단하는 편이랄까.
청년과 노인의 시간을 비교하자면, 새로운것으로 가득찬 청년의 시간이 훨씬 더 오랫동안 가는 것 처럼 느껴진다고 하지 않나. 일주일간의 여행이 그 어느 출근중의 피곤한 일주일보다 훨씬 밀도있는 경험으로 남는 것이 사실이다. 일상을 더 재미있게 채우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인 바, 보장된 비일상의 재미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 경험주의자 부부의 군침도는 목표인 것이다.
또 하나의 큰 의미는 사진이다. 사실 여행과 사진이 둘다 가볍고 여성스런 취미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사진을 언급할때마다 기본적으로 드는 민망함이 없지 않다. 그리고 난 이제 사진의 세계에서 조금 떨어진것도 같고.. 트렌디한 인스타사진은 생각보다 못 찍기도 하고 하여 겉으로는 관심없다 포장해놨지만 사실 난 사진과 미학이 겹쳐지는 부분에서 약함을 보이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그래도 여전히 사진이 추억과 행복을 불러내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일상의 스냅도 행복하지만, 역시나 다양하고 신선한 행복감을 보장하는 건 여행이다. 그래서 역시나 거부할수가 없다.
그리하여 내게 사치스런 샤넬백일지언정 이러한 명백한 이유로 구태여 이 고상한 취미를 밀어낼 필요가 없다면 기꺼이 즐겨주는데 큰 부담을 갖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다만 한가지, 못다쓴 여행기와 정리못한 여행사진이 쌓이고쌓여 컴퓨터에서 증식한지 오래된 것 같은데, 그것을 마무리해내야만 마지막 단추까지 야무지게 채운 기분이 들것 같다는 것. 그렇지만 그게 정말로 말끔히 정리되는 날이 올까. 늘 쌓이기만 하여 마음한켠을 차지하는 방학숙제처럼, 늘 부족한 것 같은 서재와 옷방을 정리처럼 , 여행의 산물들을 차곡차곡 제자리찾기 하는게 지금 내게 무엇보다 가장 큰 최적화라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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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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