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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이 책은 터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참고할 게 있을까 고르다가 집어든 책이다. 실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이 다분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을 얻었다. 오랜만에 마음 따뜻하게 읽은 책.

 

 

*아이를 낳은 뒤로 나의 생각은 단순해졌다.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너희 엄마는 어디있느냐, 누가 너의 양육을 책임지느냐 질문을 하는 것은 아직도 사고의 중심에 아이가 있지 않고 내가 있는 까닭이다. 배고픈 아이에게는 무조건 젖을 물려야 하고, 굶주린 아이에게는 돌처럼 딱딱한 빵이라도 얼른 주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엄마가 된 이후에 비로소 깨달았다. 어설픈 논리나 값싼 감상은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아이가 구걸을 하느라 학교에 가고 못 가는 것은 일단 배고픔이 멈춘 후에 생각할 일이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다. 지나가는 사람의 할 일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잠시 끌어안았다 놓아주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으로서의 예의와 최선을 다하면 된다.

 

작가 오소희씨는 3살짜리 아이의 엄마인데, 그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닥치는 여러가지 상황이 펼쳐진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상황들. 버스에서 자지러지게 운다던지, 떼를 쓰고 주저앉는 바람에 그날의 일정을 포기한다던지..  하지만, 그럴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또 새롭게 느끼는 부분들. 그것이 적지 않더라.

 

아이가 없어서 아쉬웠다. 이 분이 하는 이야기의 상당부분을 공감하는데 있어서 나와의 교집합이 적은게 아쉬울 정도로. 멋진 엄마였고 닮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아이가 있는 언니에게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 생생하게 현재를 쫒는 아이의 눈은 죽은자의 흔적을 따라가느라 치열하게 피어나는 생의 에너지를 발견하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그런일은 터키를 여행하는 내내 일어났다. 아이의 보폭은 좁고 일정은 늘어졌지만 아이는 그렇게 걷지 않았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작고 조용하고 낡은 것들이었다.

 

 

불편해서 어떻게 3살 아이와 함께 다닐 수 있냐 질문에 아이의 엄마는 '제가 좀 효율적이지 않아요. '라고 했다. 효율적이라는 건 합리적이라는 말과 함께 어느새 진리처럼 쓰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상대성이 껴들 여지가 없는 부분 말이다. 내가 그동안 좇아왔던 효율과 합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들었다. 엄마가 되어 아이와 살다보면 효율을 포기해야겠지. 내가 그동안 너무 모든 사람들에게 '효율' 을 요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 뜨끔했다.

 

 

 

 

* 나는 여행이라는 스승을 통해, 삶에 대해 더 낮아질 것을 배운다. 엎드려 고개를 숙이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것이다. 지독하게 여행이 떠나고 싶어할 때는 언제나 더 이상 내가 나를 낮추고 있지 않을 때였고, 스스로 그 직립이 피로할 때였고, 피로함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 무엇을 아끼는가. 살아서 다하지 못하고 아껴두는 것. 유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은 내가 나에게 하는 반성이기도 하다. 안전하게 안락하게, ,게으르게, 주어진 생을 덜 살고 있는 내 자신..

 

 

여행기를 쓰면 쓸수록 그 스킬에 대한 욕구도 늘어난다. 내 마음을 플랫하게 옮겨놓는 능력.
 그리고 쓰면 쓸수록 다른 이의 여행이 궁금하다.
무엇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어떤 호흡으로 발걸음을 옮기는지.

 

 "떠나라. 느끼는 것은 자기것이다."  따위의 추상적인 말보다 좀 더 구체적인, 내가 여행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참 보고 싶었던, 잘 쓰여진 여행기를 읽고있는 기분이었다. 여행(롤)모델처럼. 작가는 여행을 떠나서 무엇을 채우고 오려고 하는지 그 마음을 잘 녹여낸 책이다.


역시 그중에서도 반한게 있다면 단연 그 따뜻한 인성.
그리고 조바심 내지 않는 엄마의 마음.

 

넘쳐나는 여행 에세이를 잘쓰여진 블로그수준으로 치부하며 폄하해왔던 내 겸손치 않은 모습이, 이 엄마의 무겁지 않지만 섬세한 통찰로 인하여 녹아내렸다.

 

 

 

* 한참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나서부터 이런식으로는 울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나는 항상 '나이상'으로 강해야 했고, 거기에는 나 하나만을 위해 열린 감수성 같은 것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 그런데 지금 이 눈물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었다. 나는 오늘 아이나 가족과는 무관한 것, 그럼에도 그 자체로 아주 아름다운 것 앞에서, 한 아이의 어미가 되기 이전처럼 흔들렸고 흔들려서 행복했다. 톱카프 궁전과 하렘, 그것이 나를 무장 해제시켰던 것이다.

 

 

역시 자유롭다는 건 어떤 상황에 얽매여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는 '아이를 데리고 외국 배낭여행을 떠난다' 라는 정도 될듯. 세살박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모든 엄마가 해외로 여행을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어떤 객관적 상황이 할수 있게 혹은 없게 하는 게 아니라,  할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지닌 자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일부 몇년간은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되면 여건이 되면 바로 원하는 일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내재된 힘 덕분이다.

 

늘 보고 싶었던, 따뜻하고 감칠나는 여행기를 읽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내 옆에 있는 사람처럼 이 작가언니가 내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동네에 이런 언니가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저자
오소희 지음
출판사
에이지21 | 2007-06-30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1.5인의 대책 없는 배낭여행기,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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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됴됴됴 2012.07.26 17:09 신고

    확 땡기는 여행책을 못찾아(바람의 딸같은 그런..) 헤매었는데 이 책, 제목부터 땡기는구나. 여행가, 여자, 엄마, 아이라는 키워드들을 떠올리다가 얼마 전 보았던 <케빈에 대하여>라는 영화가 오버랩됐어. 이것도 모모하우스에서 개봉해주면 좋을텐데.

  • 난우쥬인이다 2012.09.04 23:52

    일로씨가 적어준 블로그를 이제야ㅋㅋ
    나도 터키가기전에 이책을 읽었지요!!!
    다시 읽어봐야겠어여•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