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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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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끝내준다. 파워블로거가 되려면 이 정도로 이목을 확 땡기는 제목을 붙이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거겠지. 나 역시 제목에 끌려 언젠가는 이 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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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만 낚였다면 안타까웠을텐데, 이 책은 기대치만큼 감동도 주었다. 예상에서 빗나간 건, 단편집이라는 정도.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란 제목의 단편은 단 몇장 정도였고, 내용도 짧으니 스토리가 그리 복잡하지도 않았다.

 

한데 짧은 스토리에 비해서 담고 있는 이야기는 명료하지 않다.

섬에 살던 새들이 죽기전에 꼭 해변가까지 날아와 마지막을 맞는 상황은 이상하지만 결국 왜 그곳까지 와서 죽는지 책에서 알려주진 않는다. 한 등장인물의 '이유가 있을 거요' 라는 말로 모든 의문을 닫아버린다. 길지도 않았기 때문에 두어번 계속 읽어봤지만, 특이한 스토리는 찾을 수 없었다. 다분히 '스토리 중심적'인 나의 책취향으로서는 어느 포인트로 공감할 지 조금 난감.

 

대신 작가는 상황 묘사와 심리 묘사에 공을 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페루 리마 해변 끝자락은 구체적인 배경의 설정으로 매우 탁월했다. 남미에 가보지 않았지만, 그 이름의 조합이 주는 쓸쓸함. 새들이 여럿 파도를 맞으며 해변가에 죽어있는 모습. 홀로 황혼을 맞이하여 아무런 낙도 즐거움도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


 

어렴풋한 짐작은 들었다.

몽환적인 분위기만의 나열로 소설을 마무리 지은 것은 그만한 배경이 되었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책에서 유일하게 보여준 구체적인 단어- '희망'이 절절하려면, 그만큼 암울하고 무기력한 상황이 있었어야 했기 때문에 말이다.

 

 

 

그가 대책없는 어리석음이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그 무엇에 다시 점령당하고 만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고, 자신의 손 안에서 모든 것이 부서지는 걸 목격하는 일에 습관이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이런식이었으므로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가 체념을 거부하고 줄곧 희망이라는 미끼를 물고 싶어했다. 그는 삶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황혼의 순간 문득 다가와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줄 그런 행복의 가능성을 은근히 믿고 있었다.

 

바다란 소란스러우면서도 고요한 살아있는 형이상학, 바라볼 때마다 자신을 잊게 해주고 가라앉혀주는 광막함. 다가와 상처를 핥아주고 체념을 부추기는, 닿을 수 있는 무한이었다.  먼 바다에서 다가오는 강렬하기 짝이없는 고독의 아홉번째 파도에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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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로맹가리는 유태계의 프랑스인인데 당대의 유명한 작가로서 활동을 하다가, 중간에는 몰래 에밀아자르라는 사촌의 이름으로 활동을 했다. 후에 로맹가리가 죽은 뒤 에밀아자르와 동일인으로 밝혀졌는데 한사람에게 일생동안 한번밖에 수여되지 않는 상인 '공쿠르 상'을 각 작가명으로서 두번 수상한 게 되어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한다. (역시 천재는 천부적 재능형...) 에밀아자르 명의 작품도 읽어봤는데, 알고봐서 그런가 읽다가 요상하게 덜컥 막히는 느낌하며 애매한 묘사가 비슷해보이긴 하더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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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단편집에 실린 다른 단편들도 임팩트가 상당하다. 

마지막 장을 딱 읽고 나면  " 이게 뭐지? 내가 생각한 그게 맞나? " 라는 느낌.

더 나아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된다면, "나는 왜 이렇게 되었어야만 했는가"라는 인생을 회고하는 느낌마저 들지경.

 

'어떤 휴머니스트' , '류트' ,'몰락'  단편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한 편을 읽고 나면 충격이 남아 다음 편을 바로 읽기 어려웠다.

 

읽을 때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술술술 읽혀지는 책은 아니라서 애를 쓰고 한구절 한구절 넘어가는데, 끝까지 다 읽어도 그래서 어떻게 된건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이해가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전개나 배경이 난해해서. 딴 때 같으면 뭐 책을 이렇게 안 읽히게 흐름도 고려 안하고 쓰는거야 라고 내쳐버렸을 텐데. 이 책은 내가 뭘 놓치고 있는건지, 서평을 찾아보게 만드는 게 알수 없는 매력. 그게 아마 독자를 사유하게 하는 작가의 힘이겠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저자
로맹 가리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1-11-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콩쿠르 상을 두 차례 수상한 작가의 소설. 그는 테라스로 나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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