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밤>
밖이 어두워지고 있다.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밤
러시아, 핀란드 여행이 저물어간다
이번 여행 이제 막 시작한 기분이 들었다.
핀란드와 러시아가 너무 달라서이기도 하고 러시아에서 예상치 못한 전개 때문이기도 하고,
모스크바는 러시아 첫 도시이고 정보도 가장 없어서 조금 어리버리하게 다니다가 적응 할 때쯤 야간기차를 탔고,
상트에서는 씻지도 못하고 다닌 첫날, 그리고 가이딩에 따라 쉴새없이 움직인 이튿날이 지나고 바로 러시아를 떠났다. 핀란드에 와서야 비로소 예상했던 자유롭고 예쁜 외국이구나 하고 하루이틀 다닐만 했더니 벌써 여행의 끝이다.
▲ 디자인의 도시 핀란드 원. 이딸라 매장의 예쁜 컵들
▲ 디자인의 도시 핀란드 투. 정말 사오고 싶었던 (하지만 무거워서 사올 수 없었던) 북유럽의 은빛 사슴들
아무리 여유롭게 마음을 비우고 다닌다고 해도, 막상 다니다보면 짧은 시간 큰 효율을 내기 위해 도시마다 한장소 한장소 욕심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정신없이 채우는 순간과 짧은 날들이 모여 일주일이 지나면 또 일상으로 복귀한다.
일년에 한번 떠나는 여행주기는 바투 느껴지긴 해도, 아무리 붙여도 일주일밖에 내지 못하는 여행기간은 아무래도 많이 아쉽다. 2~3년에 한번 들러서 한달쯤 있다가 가면 더 풍부히 품고 갈듯 싶은데, 그건 직장을 때려치기전에야 어려울 듯 하고. 흑
나의 공간지각능력이 떨어진 건지 이들 지도가 불친절한건지 뭔지 이번 여행 내내 이상하게도 길을 찾느라 고생했다. 여행 전에 다영이에게 길 잘 찾는다고 자신만만 얘기했던 게 민망할 지경으로. 이미 여러번 말한대로 러시아에선 코앞에 목적지를 두고도 헤메 다녔고, 헬싱키는 작은 도시라 얕잡아봤는데 생각보다 길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변명을 늘어놓자면, 영어와 영어와 비슷한 스펠의 핀란드어가 같이 써 있기 때문인데, 두 언어가 한눈에 확연히 구분되는 게 아니라서 둘중에 하나만 읽고 자꾸 다른 길로 착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도시의 구조를 머리에 넣는 과정은 즐겁고 즐겁다. 새로운 적성으로 지리학을 공부해봐야 할까보다.
절인 청어와 순록고기로 핀란드식 디너를 먹으면서
다영이는 '모든게 완벽하여 이제 여행을 끝내도 좋아' 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난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을 굳이 빌려쓰지 않아도,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와 그 시간이 따스함으로 오롯이 채워지는 느낌. 러시아와 핀란드 여정을 함께 거쳐온 우리 둘만의 마음속 깊은 공감이었다.
헬싱키 어딜 가도,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정말 눈이 휘둥그레 떠질만큼 맛난 커피. 그리고 산뜻한 베리들과 리치한 플레인 요거트.
단조로운 핀란드의 멋과 풍부한 핀란드의 맛.
둘의 배색이 일품이다.
4년전부터 매년 떠났던 여행을 돌아보면서, 당분간 내 여행에서 유럽은 제해도 될 것 같단 생각을 했었다.
떠올려보면 로마의 판테옹이 여태껏 가장 좋았던 것도. 그게 그런 거대기둥에 돔양식을 하고 앞에 타일 바닥 광장을 거느린 최초 스팟이기 때문은 아닌가 싶어서. 내 사랑 케떼드랄 대성당도 미술사 수업때 배운 로망의 유럽성당을 내눈으로 처음 본 충격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
그 감흥이 점차 줄어드는 것 같아 속상해서였다.
이제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는 나는
비싼경비와 그리고 더 비싼 시간과 바꿀만한 '그것'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
그게 무언지 아주 조금은 뭔지 알것도 같았다.
지루함에서의 일탈도
이색의 즐거움도
어트랙션 경험치의 증가도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서사가 필요하다. 나와 그리고 동반자와 함께 하는 서사, 이야기가.
첫 유럽여행 판테옹 앞에 선 그날 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광장을 마음껏 돌았다.
작년 바르셀로나 대성당 케떼드랄 앞에서 스페인 집시들은 춤을 추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
러시아 굼의 우아함. 바실리의 비현실성. 모스크바 기차역. 넵스키와 에르미타쥬. 발레.
템펠리아우키오. 호수와 도시. 에스토니아의 구름과 햇살.
이들은 모두 나에게 이야기를 남겼다.
그리고 난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이야기가 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
신기한 러시아와 예쁜 핀란드, 미니어쳐 선물 탈린 여행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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