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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레즘!"
"미뜨로!"
"패스포트!"
"굿바이!"
모두 다영이가 러시안들에게 폴짝 뛰어나가며 해맑은 표정과 톤업된 목소리로 던진 단어들이다. 그아이의 Try 정신도 놀랍고, 당당함도 보기좋다. 앞뒤 맥락이 생략되어 듣는 사람 입장에서 살짝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그 깜찍한 얼굴과 옷차림과 목소리라면 누구라도 충분히 귀엽게 오케이해줄 것 같다.
나는 오히려 딴 때보다도 조용히 한 발 뒤로 물러서 주도적이지 않고 Shadow man이 되었는데
"응, 그래 니가 일단 해. 안되면 같이 해보자"란 마인드로 뒤로 물러서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오히려 더 잘(설명하거나 듣거나 이해하거나 해결)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 역시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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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피곤해지거나 겹겹이 힘든 상황에 내몰리면 그동안 괜찮을 수 있던 일들이 안 괜찮아지는 상황이 꼭 온다. 사소한 것들도. 커피점에서 돈을 빼느냐 마느냐 결정하는 일도, 기차에서 씻느냐 호텔로 먼저 가느냐 결정하는 일도, 선택의 기로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선택권을 온전히 넘겨주는 순간, 상대방이 정말 괜찮아서 나에게 넘겨준 것인지 아니면 내가 한번 더 고려할 것을 은연중에 바라고 있는 건지 고민이 된다.
몇번의 경험으로 알게된 건
결정은 되도록 빠르고 단호하게, 적어도 내 의사만은 확실히 이야기하는 게 좋다는 것.
두사람간의 반복된 패턴과 억눌림으로 인해 서로가 꼬여있지만 않는다면, 그게 가장 솔직한 빠른 길을 찾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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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선택과 결정적 순간들의 집합속에 24시간 내내 붙어있다보면 맘쓰지 말자 생각하면서도 서운함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서로에게 그런게 아니라 지친 상황에 그런거다 생각해도 막상 닥치면 컨트롤 잘 안되는게 사람마음. 지친 내마음도 보듬으랴, 내가 이상하게 만든 상황에도 민망하랴 여행에 집중하지 못하는 날 발견한 그런 때는.
굳이 입밖으로 꺼내어 말하지 않고, 조용히 한동안 있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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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뛰어난 어휘능력으로 상황의 특징을 콕찝어 적잖은 어록을 남겼다.
'변사' 아저씨와, '대만인' 가이드도 그녀의 작품.
그 센스도 물론이거니와, 같이 깔깔대고 웃는건 문화적 감성과 공감대가 얼추 비슷하다는거다.
낙관적이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오픈마인드 그것이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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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는 일행이 있는 여행에서 이정도의 희생은 누구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언니, 우리가 좀 번거롭고 손해보더라도, 그분께서 말씀하신 유로로 드리는게 좋을 것 같아. "
우물쭈물하고 있는 내게, 강력하게 주장해준 다영이는 돌아볼수록 옳았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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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여행의 '베스트&워스트 놀이' 놀이를 했다.
베스트는 반타라운지 카페라테, 로버트 선샤인커피, 헬싱키 흑맥주
워스트는 쭘백화점 생쌀밥, 기차대합실의 아르바이트생 등
같은 기억을 공유한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지!
'베스트&워스트 놀이' 난 처음 해봤는데 그 아이는 익숙히 이끌어나가는 모양새로 보아 아마 매 여행마다 이렇게 나름의 정리를 해왔던게 아닐까 싶었다. 여행의 촉이 살이 있는, 흥분이 미처 가라앉기도 전인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했던 이 순간이 짧지만 강렬했다. 그녀석의 노하우를 빌어 다음부턴 내 여행의 귀국비행기에서도 써먹어볼까 한다.
# 다영이와의 여행에서 정말 좋았던 순간은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에서 아이폰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때.
"언니 갈까? 가도 되고 더 봐도 됨. 난 둘다 좋음"
"어차피 다음일정 없음 : )"
노련한 두 여행자의 여유와 배려가 묻어나오는 대화. 그만큼 서로가 여행의 동반자로서 빛나던 순간.
그리고 두번째
호텔방에서 노래와 함께 아이폰 사진 슬라이드를 틀어놓고 같이보던 때.
그녀가 나에게서 '마트에서 과일을 한두어개만 사들고와 호텔에서 맛보는 노하우' 를 배웠다면
난 그녀에게서 '음악과 장면을 연상기억하는 노하우'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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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영이가 만들어준 포토북 속에 있던 글 중에
좋은 사람과 여행하면 나도 그를 닮아가기 때문에 '누구'와 여행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 아이의 지칠줄 모르는 호기심, 섬세한 배려, 긍정적인 열린 마음과 넘치는 여유를 배웠다.
난 그 아이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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