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마일 드라이브를 적당히 둘러보고 산호세쪽으로 방향을 잡고 차를 이동했다. 본래 이날 우리의 목적은 일찌감치 몬터레이를 떠나서 산호세를 거쳐 나파까지 이동, 나파에서 와이너리 두어개를 들렀다가 샌프란으로 입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고 너무 조급할것 같은데다가 전날 날씨가 너무 우울했던 이유로 다음날 아침 맑을 확률에 기대보기로 하였던 터. 결과적으로는 다음날도 흐렸고, 9월엔 일교차가 커서 내내 이렇다니 9월에 캘리포니아 여행을 잡은 우리가 문제였다. 흣. 어쨌거나 여유있는 이동을 선택한건 잘한 것 같다. 다급하게 일정을 잡아 도로에서 시간을 다 버리는것만큼 아까운 것도 없으니-
그렇다고 와이너리를 들르지 않는 것은 조금 아쉬워서 그런대로 길로이 아울렛 근처의 와이너리를 좀 뒤져보기로 했다. 열개가 넘는 와이너리가 검색이 되었는데 그중에서 'kiligin cellars '라는 와이너리를 골랐다. 이것도 미국에서 주로 쓴다는 yelp라는 어플의 힘이다. 아무데나 랜덤으로 방문하여 만족도가 낮을뻔한것을 살려주는 마법의 평점어플. 여행지에서 갑작스레 닥친 일로 기대이상의 놀라운 경험을 하는 것도 좋지만, 복불복인 가능성이라면 조금더 확률을 높이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와이너리는 아울렛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차로 한 10여분 거리였던 것 같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한적한 시골길을 달렸다. 아울렛과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늘어선 대도로변을 조금만 벗어났을 뿐인데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심지어 들고 있는 핸드폰도 신호가 약해지고 있었다. 5분정도 지나자 언덕길로 들어섰고 오른편으로 야트막한 연두색 작은 나무들의 잘 정비된 숲이 나타났다. 포도나무이다. 눈길이 가 닿는곳 끝까지 너른밭에 전부 포도나무로 가득찬 공간. 또다른 와이너리 간판이 빠르게 하나 지나갔다. 캘리포니아산 와인의 떼루아는 지금 이 태양의 열기, 온도, 습도, 땅을 일컫는 것이리라. 앞으로 미국 와인을 먹을때마다 이 열기를 떠올리게 될까.
와이너리 입구 양쪽에는 큰 오크통으로 장식한 간판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들어가니 자그마한 주차장도 한산하고 인적도 별로 없는데 태양만이 작열한다. 차문을 열고 나왔더니 훅하는 열기 - 한켠에 마련되어있는 테이스팅룸으로 향했다. 갑자기 어두워진 조도에 선글라스를 벗었다. 벽을 따라 디귿자로 짜여진 나무 바 앞에 젊은 남자 한명이 서 있다.
주춤거리며 다가간 우리 둘과는 다르게 사무적인 환한 웃음으로 맞이한 그의 앞에 메뉴판이 펼쳐져있다. 왼쪽은 화이트, 오른쪽은 레드와인목록이다. 아마 판매를 위한 가격 목록인 모양인데, 한 30여개되는 이곳 와인 리스트중에서 일인당 6개씩 무료시음을 할수 있다고 쓰여있다. 이곳을 검색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었다. 맛과 가격도 적당하고, 테이스팅비를 따로 받는 와이너리도 많은데, 이곳은 무료시음이라는것! 우리는 2명이니까 총 12개의 와인을 맛볼수 있다. 근데, 이렇게 먹다가는 시음수준이 아니라 음주운전에, 취중쇼핑을 하겠네- 입구 왼쪽에 있는 물잔에 물을 담아와 중간중간 입을 헹구며 너무 과하지 않도록 조절을 했다. 6개씩이라고 되어있지만, 추천해준 2가지 특별한 와인은 제외하고 일인당 3개씩 골랐던 것 같다. 그래도 다 하면 인당 5잔씩 먹었네 ㅎㅎㅎㅎㅎ
와인맛은 잘 모르지만, 이 근방에서만 재배된다는 포도품종으로 만든 화이트와인 한병, 그리고 독특하게 블랜딩하여 굉장히 복합적인 향을 내는 레드 와인 한병을 골랐고 두병을 계산한뒤 테이스팅룸을 나왔다.
아직 제대로 점심도 못 먹었는데 와인부터 들이켜 그런지 얼굴이 발그레해진 기분이다. 근처 산책을 하며 좀 열기를 식혀볼까 했는데, 몇걸음 못가서 뜨거운 태양탓에 더 익는 기분이 들어 그냥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창문을 활짝 열고 포도밭이 양쪽으로 가득찬 도로를 다시 달리며 바람을 잔뜩 맞았다. 신이나서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틀고 따라 불렀다. 불과 10여분 거리지만 아울렛까지 돌아오니 이미 소화가 다 된 기분. 바람을 맞은 머리가 잔뜩 헝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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