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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깁초엽 
 
먼저 작가에게 사과해야겠다. 책 제목이 좀 만화적인 느낌이라, 책 표지가 너무 샤방샤방하고 핑쿠핑쿠해서, 그리고 마지막에 붙은 그녀의 이름까지 특이하고 트렌디한 느낌이라, ‘귀여니’가 등단했을 때 같은 오해를 했지 뭐냐. 포항공대 석사님에게 이 무슨 실례를. 

 

일단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수록작 중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인 '관내분실'을 읽어보았다.
SF는 독자(인 내)가 잘 모르는 기술분야를 소재로 하여 신선함을 갖는다. 그리고 (나는 모르지만) 기술자들은 알고 있는 현재에도 충분히 구현 가능한 현실의 모습과 조금 더 나아간 상상의 모습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물론 나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할 수 없을만큼 과학 문외한이라 더욱 쇼킹하다.) 결말 또한 파격적일 수 있다. 소재는 서두 뿐 아니라 평소 상상한 적 없는 상황 속으로 빠져들어간 케릭터가 전개 결말에서 느끼는 감정을 절박하게 그려내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저그런 러브스토리에 지겨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흥미를 느낄만 하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바빌론의 탑 같은 작품) 그런 기분을 많이 느꼈다. 비극도 희극도 아닌 결말을 맞이하는 기분은 참 희한했다. 다음 단편을 바로 읽지 못할 만큼 여운도 길게 남았다. 근데 김초엽의 작품은 그런 소재를 채택했지만 담고 있는 감정 자체는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디어는 처음 보는 것이지만 그것으로 전개하는 이야기의 힘은 조금 떨어지는 기분. 시작은 신선한데 뒤는 어디서 본 이야기 같은 것이다. 그리고 가족과 휴머니즘.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래서 쓸쓸하게 죽었다. 둘 중 어느쪽으로 할래?
 
우주적 스케일에 대한 광막함은 좋았다. 쓸쓸함과 비극이 배로 증폭되는 환경이다. 그런데 나 좀 궁금한 게 하나 있다. 클라이막스에서 '우리는 결국 빛의 속도로도 가지 못하는데'라는 것. 이건 우주적 개그인건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빛의 속도'라는 상징 이외의 과학적 의미가 있는 것인가. 결국 배경지식 부족인건가. 그래서 내가 SF를 별로 안 좋아했던 것인가. 음...
ps
최근 비슷한 느낌의 SF 단편을 읽었던 게 생각나 다시 찾아봤더니 곽재식 작가였다. 토끼의 아리아라는 작품의 '로봇 복지법'. 소재의 신선함은 비슷하되 더 구체적이고 재치있었다. SF에 관심이 더 생긴다면 이것저것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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