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책들이 공통적으로 독서교육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머리 독서법) 딱히 아이가 생겨서 독서 교육에 대한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그저 '책읽기 책'에 대한 관심이 조금 많은 편인데, 이 책들을 읽으면서 정작 독서교육이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비판적 사고'. 책을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왜 그렇지? 그게 맞나?' 라고 질문해야 올바르게 책을 읽는 것이란다. 그러고보니 나는 왜 그렇지 하면서 책을 읽은 적이 거의 없다. 물론 삐딱선을 탄 적은 있다. 내용이 좀 아니다 싶은 책도 있는데 그럼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게 아니고 그냥 책을 덮는다. ㅋㅋㅋ
돌이켜보니 이런 이야기는 학생 시절부터 들었던 것 같다. 엄마한테. 때론 학교에서도. 작년에 삼십년만에 만난 초등학교 친구가 기억속의 내가 책벌레였다고 했는데 도대체 나는 그때 무슨 생각으로 책을 보았던 것인가..??
다만 다 읽고 나서 여전히 남은 궁금증이 있다. 내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질문이다. 우리나라 국어교육은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는 것이다. 예전 학생 시절에 이런 문제가 나오면 난 자주 틀렸었다. 난 이런 생각일 것 같은데? 라고 맘이 가는 걸 찍으면 그것이 의도가 아니라고 했다. 내가 보통의 사람과 다르게 사고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화자의 '예상행동이나 의도'를 도대체 수학이나 과학 같은 정답으로 어떻게 고를 수 있는 것인가? (일제강점기의 문학은 제외로 하자) 늘 아니라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또 억울하네?? ㅋㅋㅋ
이 책을 보면 그런 경우는 책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내가 좀 꼼꼼히 읽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렇지만 생각은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고. 김영하 작가도 문학의 기능은 백명이 백가지 다른 생각을 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했는데..그래서 교과서에 자신의 소설이 짤려서 실리는 것도 반대했다고 했다. 문인들 사이에서는 화자의 의도를 묻는 국어문제를 원작자가 틀리기도 한다며 농담도 하더라는.
“저는 독일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제1장의 제목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올바른 해석은 존재하는가(Gibt es eine richtige Interpretation)?’ 문학 텍스트를 읽을 때 우선 옳은 해석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이미 ‘해석학’의 대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문학이라는 다의성의 세계에 초대장을 건네는 것이지요. 「님의 침묵」에서 님이 연인인지, 조국인지 고르라는 우리의 해석 폭력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문학작품의 해석을 마치 작가의 의도를 찾는 보물찾기로 생각하는 우리 교육과는 아주 다르지요. 독일 교육에서는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데에도 권력의 문제를 성찰하게 하는 것입니다. 정답이라는 이름의 ‘정의 권력(Definitionsmacht)’을 인식하고, 필요하면 비판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런 비판 의식이 한국 교육에는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습니다. 독일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러니까 글자를 깨우치기 시작할 무렵부터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교육을 받습니다. 국어 교과서를 예로 들었지만 정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지요. 문학작품을 쓴 작가가 어떤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의도로 그런 작품을 썼는지 텍스트를 둘러싼 ‘콘텍스트’ 즉 맥락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이에 대해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표명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는 다양한 일을 하는 독일 친구들이 많습니다만,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요즘에 깨달았습니다. 모두 확고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개 어떤 사건이나 현상의 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늘 스스로 생각하도록 교육받은 결과겠지요. 독일 교육은 독일의 높은 정치의식의 토대입니다. 저는 이 점이 정말 부럽습니다. -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
더불어 위의 김누리 교수의 책을 읽으며 우리의 '답 찾기'교육이 잘못된 것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과 '해석'을 강요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나는 공부머리 독서법 책을 읽으며 '문해력' 부분만 건지고 '답 찾기'는 걸르는 비판적 읽기를 수행하기로 ㅎㅎㅎ
평소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교육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간 교육에 대한 주관이 명확하게는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관심이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독서 교육 만큼은 어떤 견해가 생겼다고 해야 되나.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이다.
특히 사교육과 속독, 섣부른 지식도서의 접근에 대해서 주의하여야겠다는 것은 오래도록 유념해야겠다.
(발췌) 사교육을 받으면 읽고 이해할 필요가 현저히 줄어듭니다. 강사의 설명을 듣고, 문제를 풀고, 틀린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다시 풀면 되죠. 읽고 이해하는 공부가 아니라 듣고 이해하는 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듣고 이해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일단 시간이 너무 많이 듭니다. 글은 정교한 논리적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읽고 이해하는 공부는 필요한 지식을 향해 직선 주로를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읽고 이해할 능력만 있다면 일직선으로 달려가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명은 다릅니다. 장황하고 세세합니다.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면 10분이면 끝날 공부도 강사의 설명을 들으면 1시간이 걸립니다. 쉬운 대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공부법인 셈입니다. 초등 저학년 때는 학습해야 할 교과 지식의 양이 적기 때문에 이런 비효율적 측면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교과 지식이 단편적이고 간단할수록 설명하기도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학습량이 적기 때문에 교과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듭해서 설명해줄 시간적 여유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렇게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교과서의 숫자가 늘어나고, 두꺼워지고, 어려워지니까요. 초등 고학년이 되면 전 과목을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게 버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초등 저학년 우등생 중 상당수가 고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조 현상에 불과합니다. 사교육의 일일이 설명해주는 방식은 중학생이 되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주요 과목의 교과 내용을 일일이 설명해주려면 주말도 없이 사교육을 받아야 할 만큼 시간이 많이 드는데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초등 시절과 같은 학습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사교육의 두 번째 근본적인 결함은 ‘읽고 이해하는 경험’을 극단적으로 줄인다는 점입니다. 사교육을 많이 받는 초등 고학년 아이들은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단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합니다. 일주일 내내 학원에 가기 때문에 남는 시간은 놀아야 합니다. 그 놀이에 당연히 책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부모님들 역시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는 건 알지만 우선순위에 둘 정도는 아닙니다. 학원에 밀리고, 숙제에 밀리고, 스마트폰에 밀려 독서는 결국 늘 뒷전입니다. 이렇게 터무니없이 독서량이 부족한데 공부마저 ‘듣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읽기능력을 훈련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중학생이 됩니다. 수업을 들으면 뭔가 알 것 같은데 교과서를 펼치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상태에 빠지는 거죠. 이것이 바로 초등 우등생 70~80%가 중학생이 되면서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초등 1학년에게는 1년간 갈고 닦아야 하는 교과 학습량이 고등 1학년에게는 10분이면 습득할 수 있는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합니다. 더군다나 모든 과목이 이런 식의 기초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초등 6학년 과학 지식이 없다고 해서 중등 1학년 과학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수학 외의 과목들은 기초가 부족해도 교과서만 충실히 이해하면 얼마든지 만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준우 같은 아이들이 이런 사실을 증명합니다. 중학교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언어능력만 갖추어도 얼마든지 부족한 기초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중요한 기초는 아이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 글을 읽고 이해하는 언어능력입니다.
0.1%의 아이들이 사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지 않는 이유는 비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사교육은 사교육대로의 진도가 있어서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하지 않고 전체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합니다. 게다가 설명만 들어서는 완전히 자기 지식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복습도 따로 해야 합니다. 시간이 이중 삼중으로 낭비되는 셈입니다.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할 때 확실한 자기 것이 됩니다. 사교육 활용 패턴에서 알 수 있듯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를 하고, 부족한 부분만 사교육의 도움을 받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사교육으로 공부하고, 숙제할 때 정도만 스스로 공부합니다. 스스로 복습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학습량은 지극히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공부에 대한 피로감도 느끼지만 실제로는 공부를 별로 하지 않는 이상한 상태에 빠지고 마는 거죠.
독서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이를 독서가로 키우는 것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죠. 그러려면 두 가지 독서 생활의 대원칙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대원칙은 ‘재미’입니다. 초등학생이든 청소년이든 이 책이 아이의 지식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하는 생각은 아예 지워버리세요. 그런 목표의식이 끼어들면 들수록 독서는 학교 공부를 닮아갑니다. 독서가 학교 공부를 닮아가는 순간, 독서교육은 폐업의 길로 접어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책을 재미있게 읽는 것입니다. 아이의 흥미가 가는 대로 읽도록 내버려두셔야 합니다.
두 번째 대원칙은 ‘독서 최우선’입니다.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 독서를 맨 앞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어학은 어려서부터 하는 게 좋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영어학원에 다닌다고 해서 아이가 원어민 수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영어는 외국어라 한국말처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없습니다. 결국 아이가 학습해야 합니다. 평균 이상의 공부머리만 갖춘다면 초등 고학년, 중학생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수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학원에 보내서 시간과 돈,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 걱정이 되시면 학년에 맞는 문제집을 한 권 사서 풀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자주 가세요.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도 좋고, 책을 빌려와도 좋습니다. 책을 고르실 때는 공부시키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으시고 아이가 어떤 책을 재미있어할까만 생각하세요. 아이도 책을 고르고, 부모님도 책을 고르시면 됩니다. 부모님이 고른 책을 아이에게 보여주세요. “이 책 재미있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아이가 좋다고 하는 책, 아이가 고른 책을 들고 도서관에서 나오시면 됩니다. 그러면 일주일 치 독서량이 확보됩니다. 그렇게 읽어주다 보면 아이가 유독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그런 책은 사세요. 본전을 뽑고도 남습니다. 책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게 될 테니까요.
독서 습관이 잡히지 않은 초등 고학년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장편 동화를 일주일에 한 권씩, 연간 52권 정도를 제대로 읽습니다. 여기서 ‘제대로’란 줄거리를 충분히 파악할 정도로 읽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가 목차를 보면서 줄거리를 술술 말할 수 있으면 제대로 읽었다고 판단해도 좋습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독서 속도가 소리 내서 읽는 속도보다 빠르면 안 된다는 것, 학습만화 같은 그림 기반의 책은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식도서도 선택 사항이 될 수 있지만 읽기 훈련이 돼있지 않으면 지식도서는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이가 스스로 지식도서에 푹 빠지지 않는 한 장편 동화를 읽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드실 겁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명문대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언어능력 평가를 해보면 그런 아이들은 독서 여부와 상관없이 백이면 백 언어능력이 높습니다. 평생 가야 책 한 권 읽지 않았다는 중등 2학년 학생이 수능 국어영역 80점을 넘긴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언어능력이 높은 것은 지능보다는 기질적인 요인이 큽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대충 넘어가지 못하는 집요한 성격, ‘왜 그럴까?’ 하고 의문을 품는 사고 패턴 덕분에 일상생활이나 학교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언어능력이 저절로 성장합니다. 한마디로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는 아이, 세상을 읽을 줄 아는 아이죠. 이런 아이가 책을 읽지 않고 명문대에 들어갔다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통탄할 일입니다. 이런 기질의 아이는 독서 효과도 매우 크게 나타납니다. 엄청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의 잠재력이 독서를 하지 않음으로써 묻혀버린 셈입니다. 초등학교 때 몇 점을 받느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아이가 또래 연령 대비 어느 정도의 언어능력을 갖추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언어능력이 높아도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는 간혹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능력이 낮은데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언어능력이 낮은 아이는 1차 급변동 구간에서 무조건 성적이 떨어집니다. 논술 강사 생활 12년 동안 단 한 번의 예외도 본 적이 없습니다. 언어능력이 바로 학습능력입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는데 ‘과학 스토리텔링’이라든가 ‘사회 스토리텔링’이라든가 하는 교과연계형 스토리텔링 책은 주지 마세요. 그랬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될 가능성이 큽니다. 말 그대로 순수한 이야기책이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1 목표는 아이가 책을 ‘재미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선생님, 이야기책을 읽는 게 공부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부모님들께서 종종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되묻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럼 지식도서는 공부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지식도서가 나쁜 책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식도서는 독서 효과가 어마어마하게 좋은 책입니다. 문제는 초보 독서가들이 지식도서를 읽을 능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읽어도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대부분 책을 펼친 지 20분 안에 나가떨어지게 돼있습니다. 설사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끝까지 읽어낸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요.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게 아니라 글자만 읽게 되고, 이렇게 읽으면 당연히 독서 효과도 생기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행위 자체입니다. 흔히 이야기책은 공부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성이나 감성, 예절 같은 것에 영향을 끼칠지는 몰라도 학습과는 상관없다고 여기는 거죠. 그래서 아이가 동화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왜 이런 쓸데없는 책을 읽느냐고 빼앗아버리는 부모님도 계십니다. 물론 이야기책은 지식을 다루지 않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해보면 이야기책만큼 위력적인 책도 없습니다. 읽는 족족 언어능력이 올라갑니다. 6개월을 제대로 읽으면 성적표가 달라지고, 1년을 제대로 읽으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가 달라질 정도죠.
헬스 트레이닝에도 바른 자세와 방법이 있듯 독서에도 바른 자세와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대원칙은 ‘생각을 많이 할수록 좋은 독서’라는 것입니다. 속독이 나쁜 독서법인 이유는 생각할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속독 습관이 있는 아이들은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언어능력 평가점수가 오르지 않습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꿈쩍하지 않죠. 가장 기본은 정독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독이란 ‘소리 내서 읽는 속도’로 책을 읽는 것을 말합니다. 이 정도 속도만 유지해도 책 읽기를 통한 기본 사고량은 저절로 나옵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그 인물들이 처한 상황, 주요 사건과 줄거리를 충분히 파악하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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