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ournal & Pic/제 3의 인물

사람 쓰는 건 처음이라



출산전 신생아에 대해 1도 모르던 시절, 나의 단순한 플랜은 '병원 + 조리원 2주' 코스였다. 들은 풍월이 그것 뿐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친구들은 "아, 산후 도우미는 안한다고? (무식이) 용감하네 " 라고 얘기하곤 했다. 몇번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진짜 무모한 일을 벌이는 걸까 싶어졌다. 평소 어떻게든 되겠지, 유난 떨 거 있나 생각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 육아만은 두렵고 무서운 세계였다.

산후도우미 관리사분을 쓰기로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올해 5월부터 뚫린 정부 지원 때문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산모 신생아 건강관리, 올해 봄부터 소득 150% 초과도 일부 지원가능하게 바뀌었다) 비용이 2주에 120만원 가량 되는데, 그중에 반절정도 지원을 받게 되었다. 여차저차 신청하고 나니 마포구 모자보건실에서 업체 리스트를 12개 정도 보내주었는데, 어느 분을 모시는가 관련해서는 홈페이지 들어가서 꼼꼼히 살펴보고 여기저기 후기도 읽어봤지만 허무하게도 '오시는 관리사분마다 복불복'이라는 결론이 대부분이었다. 하도 산후도우미 관련 한바탕 하는 사례들이 많아서 기대를 반쯤은 접고 들어간 것 같다. 어디어디 업체에 누구누구 관리사분이 좋다며 쪽지들을 주고 받았지만 그런 카페 댓글에 쪽지좀 보내달라고 할 천역덕스러움도, 그 관리사분이 다른 모든 사람과 잘 맞으리라는 믿음도, 그 글이 댓가 한푼 없는 진실한 댓글인지 자신도 모두 없었다.


계약 종료를 하루 앞둔 오늘 돌아보니, 다행히도 좋은 분이 오셨던 것 같다. 집에 사람을 불러 쓰는 것이 처음이라 이분이 좋은 건지 어쩐지도 잘 모르겠지만, 친한 회사언니가 거슬리는게 없음 되는 거라 했다 (feat 유노상식?)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이런 계약을 해보며 내게 몇가지 문제를 발견했다.


(내 지인들이라면 충분히 예상가능한) 첫번째 문제. 명확히 가이드를 주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문제

관리사님은 첫 날 내게 여러가지를 물어봤다. 여러 산모에 맞춰야 하는 그 분 입장에서는 이 댁은 어떤 스타일인지 파악해야 했을 터이다. 예를 들면 젖병은 열탕소독을 할지 소독기를 쓸지. 소변에 물티슈를 쓸 것인지 말 것인지. 식사는 삼시세끼 중 몇 끼를 할지. 그 때마다 남편은 어떻게 할지. 목욕은 몇시에 시키는 게 좋은지. 모든 게 결정의 연속이었고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 혹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은 지 몰랐던 것들이었다.

당연히 경험 많은 도우미분이 오시면 난 편하게 그에 따라서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결정할 게 더 늘었다. 난 왠지 기대하기로는 그분이 마치 브리핑이라도 하듯 쫙 설명을 하고 최선의 방향으로 안내를 해주며 내게는 최소한도로 결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부분의 장담점을 최소 내가 듣고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보니 이건 내가 이미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었고 그런 가르침까지 요구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이건 곧 내가 육아에 있어 신념과 줏대가 아직 준비가 안된 엄마라는 뜻이었다.

그 분 입장에선 무심하거나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게 아니라 업무상 그냥 명확한 가이드가 있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요새같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서로 스타일도 모르고 요청 사항에 맞게 일해주는 게 민감한 부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정말 '일'이니까. 이건 어찌보면 그분의 일을 내가 방해하는 격이었다. 마치 두루뭉술한 지시를 내리곤 결과물은 맘에 안 들어하는 팀장처럼.


두번째, 막연히 잘 해드려야 한다는 감정적인 기분만 가지고 있는 문제.

관리사님과 싸우는 사례를 들어보면 어떤 양육방식 혹은 집안살림 스타일을 강권하거나 고집하는 것이 불편(산모도 마찬가지겠지만)한 경우가 많은 듯 했다. 다행히 우리집에 오신 분은 그렇지 않았다. 조용히 부지런하게 일하시는 스타일이었고 기본적으로 이런 류의 트러블에 대한 조심스러움을 갖고 계신 듯 했다. 기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기본적인 판단이 서자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 후로 나는 다시 내 본모습대로 돌아가 그저 집에 들르신 어른(어머니나 시댁어른들)을 대하는 것처럼 그분의 행동반경마다 내가 할일을 나서서 했다. 원래 내가 해왔던 간단한 집안일이었고 산후조리중이긴 하지만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데 누군가에게 미루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심지어 우리집 살림이니.

"산모님 제가 할께요, 두세요"
산후도우미 관리사는 아기를 돌보는 것도 업무이지만, 산모를 돌보는 것 또한 업무인데 내가 업무 방해를 하고 있었다.


원래 집안일에 부지런하지 않은 나의 성격과, 이런 종류의 일을 하러 오신 그분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

예를 들면 냄새나는 행주를 두고 "아 그건 버리려던 거에요. 그냥 두셔도 되요"라고 했는데 내가 정작 내다 버리진 않아서 그분은 결국 그걸 베이킹 소다로 손빨래하여 새하얗게 만들어놨다거나. 아기 목욕 후 바닥청소에 쓸만한 청소도구를 요청했는데 "그냥 지금 쓰시던 수건으로 편하게 하시면 돼요" 라고 대답한 나에 비해 남편은 "이걸 쓰시죠" 하고 밀대를 들고 왔고, 그것도 빨아 쓰시는 걸 보고는 "걸레를 드리는게 편할까요? "라 여쭤보니 그분도 "그게 편하죠" 라며 웃으며 대답했다거나.


일로만난사이란 그런 것이다. 관계상 잘해주는 것은 잘해주는 것이지만 일은 일이니까. 이런 것에 그저 잘해줘야 한다는 감정이 섞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비록 처음이고 주종관계처럼 불편하게 어색하게 느낄지라도 그건 나의 고정관념일 뿐, 그분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일에 관해서는 명확히 행동하는 것이 나를 위해 그분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서비스 비용의 정당성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이다. 사람 쓰는 것이 처음이라 쓸 줄도 몰랐던 것이다.



새로 산 모빌을 뜯으며 이런건 어떻게 빨아요 물으니 “그게 산모님마다 다른데요..” 라며 말씀을 흐리신다. 의류 뿐 아니라 물건의 손빨래까지 요청을 받으면 응해야 하는 일. 그냥 세탁기에 와라락 넣고 내 손으로 돌려버렸다.

과일도 내가 깎고 있으니 “산모님 말씀하시면 제가 해드릴텐데요” 라시길래 괜찮다고 하고는 다음날엔 심지어 나 혼자 먹는 게 좀 걸려서 그분 것까지 깎아 따로 담으면서 좀 오반가 싶어 주저했지만 잘 먹겠다고 웃으며 받아주셨다.

나라면 안 그랬을텐데 남이라고 그렇게 요청할까 하는 건 여전히 내게는 어색한 일이라 그냥 내 식대로 하기로 했고 또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러니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좀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겠지. 비록 세탁기 들어갔다 온 모빌이 멜로디를 잃어버리는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