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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제 3의 인물

이름 짓기의 기술 (출생신고 하던 날)

출산하러 병원갈 때보다
출생신고하러 주민센터 가는게 더 떨리네요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한다. 이름을 좋아했던 이유는 흔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이름이 특이함으로서 나는 특별하다라는 자아가 형성되었다고 하면 과언일까. 적어도 그것이 시작정돈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름에 특별한 의미부여를 해왔던 나였기 때문에 언젠가 애를 낳게 된다면 기가막힌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태명을 지은건 한 9주쯤 되었을 때였다. 안 짓고 버티고 있었는데 육아 앱들에서 자꾸 태명을 요구해서 등이 떠 밀렸다. (이후로도 많은 육아 관련 사업들이 태명을 당당히 요구하여 좀 놀랐다. 엄청 내밀한 애칭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때도 짓기 어려웠다. 흔히들 태명은 흔하고 촌스럽게 지어야 무탈하다는데 나는 그마저도 흔한 건 싫었다. 시험관을 한 다음날 강릉 초당 마을에 다녀왔고, 그것에 얹어 하얗고 몽글몽글 부드러운 이미지가 연상되어 태명을 두부라 지었다. (12년차 조리원 원장님도 두부라는 태명은 처음 들었다고 하셨다) 임시 호칭인데도 일주일 넘게 고민했던 것 같다. 그 때도 그런 일기를 남겼지. 태명 짓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이름은 어떻게 짓나.

남편은 발음이 쉽고 영어로 치환이 잘 되는 이름을 원했다. 나는 중성적인 이름, 그리고 너무 가볍지 않고 완결된 느낌(받침이 있는 글자)을 원했고. 우리 모두 공통적으로는 흔하지 않은 이름을 원했다.

열달이나 시간이 있으니 충분히 많이 생각하고 여유있게 고를 줄 알았다. 그런데 태명을 짓고 나니 그게 마치 이름인 양 이름짓기 숙제는 저 멀리 밀어놓게 되었고, 마음의 숙제로만 어쩌다 부담을 느낄 뿐이었다. 가끔씩 생각나는 이름들을 메모장에 추가했지만 그렇게 착 붙는 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에게 이름을 추천도 받았고, 항렬과 조합한 특이한 이름도 고민해 보았고, 조(성씨)로 시작하는 두세글자 괜찮은 단어들을 사전을 전부 뒤져 찾아 보았고, 공책에 가나다라 자음 모음을 적어놓고 괜찮은 글자들을 뽑아보기도 했다.

조바심은 커져만 갔다. (조바심도 조로 시작하는 세글자 단어다) 나중엔 출산예정일이 점점 다가오는데 아가가 아무런 나올 신호도 없는 걸 보고,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준비가 덜 된 부모라 아이가 나오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고르고 고른 후보들.
최종적으로 경합한 건 연두, 연주, 연수, 여진, 이목, 선율 이었다.

난 음악과 관련된 단어 (선율,화음,리듬,연주 등) 중 선율이 가장 맘에 들었는데 안타깝게 성씨랑 그렇게 찰떡이지 않았다. 밤마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 이름 저 이름 들먹이며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어느날 번뜩 든 이름이 있었다.

"가운데 선을 빼고 조율은 어때?"
조 tune!!

그간 생각해낸 것 중에 가장 그럴싸한 이름이 아닌가 싶어 뿌듯했다. 그런데 결정을 내리기에는 몇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일단 외자로 지을 생각이 애초에 둘 다 별로 없었다는 것인데 부르기에 어색한 것. 게다가 요새 많이들 보이는 '율맘' 도 유행하는 글자인가 싶어 걱정. 발음상으로도 '유리'나 '유라'로 들릴 수 있다는 것 역시 맘이 쓰였다.

이런 것들이 마음에 걸려 후보로 올려두고도 한참을 주저했다.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 임팩트 있고 한글 뜻도 마음에 든 이 이름에 무게가 쏠렸다. 무엇보다 다른 모든 이름 후보가 이 두 글자의 아성을 넘기는 어려워 보였다. 후보군 중 무슨 이름을 택하든 나중에 이 이름이 생각날 것 같았다. 평생을 불리는 이름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그렇게 결정!

이름자를 종이에 써보니 글자가 산뜻하다.

+ 놀랍게도 내이름 세글자를 빨리말하면 율이 된다고 아는 후배가 제보해줬다. 이쯤 되면 운명인가 ㅋㅋㅋ


조율씨. 우리 이제 한번 잘 해봅시다요!


  • zin 2021.10.19 13:18

    율 이란 이름 너무 잘 지었어. 예쁘고 흔치않고 성과도 잘 어울리고~ 다들 어쩜 이름을 이리 잘 지을까..
    (그 와중에 조바심도 조 로 시작한다는 말에 키득키득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