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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제 3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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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앞에서 춤을 추었다 계절이 바뀌어 옷장정리를 하다가 미국에 여행갔을 때 샀던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글씨가 샛노랑색이라 알록달록해보여 그런지 아기가 내가 입은 티셔츠를 유심히 바라 보았다.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비치에서 산 기념 티셔츠. 정면엔 서핑하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정확히 무엇이 써있는지 몰랐던 나 역시 고개를 내려 읽어 보았고 핸드폰을 열어 정해진 운명처럼 Surfin USA를 틀었다. 그리고 아기 앞에서 춤을 추었다. 처음엔 내 몸짓에 반응하는 아기가 귀여워서 팔을 조금 흔드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 노래가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어느새 거의 막춤에 가까워졌다. 아기 가재 손수건을 깃발처럼 한손에 들고 저녁무렵 어두워진 거실 한가운데서 온몸으로 춤을 추었다. 비치보이즈와 비틀즈 척베리 듀란듀란의 음악에 춤을 추었..
아기는 엄마의 미안함으로 키운다 오늘로 아기는 90일이 되었다. 부쩍 이 아이가 사랑스럽다. 아기는 이제 피부에 동전 습진 같은게 생기거나 눈물샘이 확연하게 안터지거나 뒤통수가 균형이 안맞는 등 조금씩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나는 이 친구를 더 관찰하고 아끼고 그리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갓 태어난 상태의 아기에게 나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그 당시의 난 아기란 완전무결의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이 생각도 지금 돌이켜보면 옳지 않았다. 아기는 아무리 예정일을 채웠어도 모든 장기의 성숙을 다 갖추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며, 태어날 때 문제가 없었어도 어떤 장기들은 단지 신생아라는 이유로 쉽게 이상을 보이고 특별한 조치 없이 단지 월령을 채우는 것만으로도 ..
날 닮아 잘 자요 가끔 아는 언니 동생들이 연락와서 아기는 잘 기르고 있냐고 묻는다. 한 언니는 그 시절의 자기는 거의 좀비였다고 했고, 또 한 친구는 2년이 넘도록 새벽에 두세시간마다 깼다고 했다. 기적이 온다는 백일까지는 잘자고 잘먹으면 그것으로 백점짜리 아기라고. 그때마다 난 '아기가 날 닮아 그런가 잘 잔다'고 대답하곤 했다. 우리 아기는 신생아시절이 갓지난 한 45일 무렵, 그러니까 9월 들어선 첫 날 밤잠 8시간을 기록했다. 그날 새벽에는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미동없이 잠자는 아기의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대보았지. 그날을 기점으로 하루가 다르게 시간이 길어졌다. 어느날은 6시간 5시간 7시간. 불규칙 했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초반엔 10시 가까이 되어 재우다가, 재우는 시간이 8시쯤으로 좀 일러지..
우는 인간 제3의 인물은 과연 어떤 인간으로 자라날 것인가. 아직은 그 어떤 다른 수식어를 붙일 수도 없이 그저 우는 인간이다. 누가 내 애는 울지도 않을 것 같다고 했나. 임신 중 우리 부부조차도 우리 애는 얌전하겠지? 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왜죠? 누가 뭐래도 아기는 운다. 밑도 끝도 없이 우는 생명체에 대처한 경험이 난 별로 없다. 1. 신생아의 울음은 몇 안되는 상황밖에 없다고 했다.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젖었거나, 졸리거나, 지겹거나, 너무 산만하거나 명확한 알고리즘이 있으니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이다. 다섯가지 조건을 하나하나 점검하면 답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답은 늘 쉽지만은 않다. 2. 임신 전에 식당 같은 데서 엄마가 애를 울리면, 남편은 한 번씩 꼭 돌아보곤 했다. 징징..
없던 모성애가 생기는 것 까진 아니지만 친한 친구가 연락이 와서 아이 키우는 건 어떻냐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아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은근히 좀 감동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팔 안쪽으로 머리를 실어 품 안에 안아주려 할 때 보이는 표정이나, 품에 안겨 노래를 불러주면 무장해제하고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나.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건 아무래도 수유시간이다. 배가 고파서 신경이 곤두 서서 마구 우는 와중에도 수유를 하려고 품에 가까이 안으면 본능적으로 입을 오물거리며 먹을 것을 위해 집중하는 그 모습. 나만이 아기가 원하는 것을 가진 유일한 자로서 기꺼이 젖을 물려줄 때. 그 입으로 허겁지겁 가져가 곧 만족스러운 듯 빨아먹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이 작은 일이 그 친구에겐 세상의 전부인 일이라고 하니 그게 좀 감동적인 것 같다. ..
수유의 역습 그러게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할때 귀담아 들을 것이지 백일천하를 낭낭하게 누리다가 출산 직후 급습을 당한 기분이었다. 임신 1일차부터 280일차까지 쭈욱 마라톤 달리기를 하다가 열달만에 결승점을 마지막 피치를 올려 전속력으로(진통끝에) 통과했으면 이제 좀 누워서 쉬게 해줘야지. 방금전에 결승 통과했는데 헉헉거리고 앉아있는 애한테 이제 허들 경기 하러 갈까? 몸좀 풀래? 하는 기분. 제왕절개 수술한 당일날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전동베드의 도움으로 겨우 상반신만 일으켜 세운 다음날 오전, 신생아실 간호사가 와서 안내를 했다. "내일 오전 11시에 첫 수유하러 4층 수유실로 오세요." "네? 지금 걸을 수도 없는데 내일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컨디션 봐서 해도 되죠?" 간호사는 "뭐 이런 애가 다 ..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는 것이 확실하다 예전에 난 아기를 볼 일이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작은 신생아는 거의 처음 보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니 이전의 내가 아기에 대해서 뭔가 말했었다면 다 모르고 한 말임이 분명하다. 며칠째 아기와 가까이 지내다보니 아기를 점점 더 사랑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왜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천사같다 하는지, 아이는 선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배가 고프거나 졸리거나 안아줄 엄마를 찾는 것 말고는 다른 욕망이 없는 아기는 순수함과 심플함 그 자체다. 세상에 순수한 인간을 만날 일이 잘 없는 내 나이쯤 된 사람이 그런 순수함을 목격하는 일은 감동적인 일이다. 사람이 태어날때부터 선하니 악하니 이야기들 하지만 막상 태어난 아기를 직접 이리 보자니, 이 아이가 무슨 다른 뜻이 있어 악의 ..
이름 짓기의 기술 (출생신고 하던 날) 출산하러 병원갈 때보다 출생신고하러 주민센터 가는게 더 떨리네요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한다. 이름을 좋아했던 이유는 흔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이름이 특이함으로서 나는 특별하다라는 자아가 형성되었다고 하면 과언일까. 적어도 그것이 시작정돈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름에 특별한 의미부여를 해왔던 나였기 때문에 언젠가 애를 낳게 된다면 기가막힌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태명을 지은건 한 9주쯤 되었을 때였다. 안 짓고 버티고 있었는데 육아 앱들에서 자꾸 태명을 요구해서 등이 떠 밀렸다. (이후로도 많은 육아 관련 사업들이 태명을 당당히 요구하여 좀 놀랐다. 엄청 내밀한 애칭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때도 짓기 어려웠다. 흔히들 태명은 흔하고 촌스럽게 지어야 무탈하다는데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