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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Pic/제 3의 인물

벌써 일탈

날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 그래 날씨가 그랬어.

아기의 수유시간에 맞춰서 평소 나답지 않게 일찍 일어나고 있는 요즘, 창밖으로 펼쳐지는 맑은 아침 하늘에 감탄할 때가 있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여전히 폭염경보였지만 뭉게구름이 예쁘게 가득한 새파한 하늘에 가을 바람이 슬며시 묻어오는 공기.

아침나절 잠시 밖을 바라보다가 다짐했다.

“아 오늘 좀 나가야겠어”

점심을 먹고 산후도우미 관리사님께 볼일이 있어 잠시 외출하겠다고 얘기했다. 갑작스런 통보에 놀래실까봐 없던 볼일을 몇개 만들었다. 오늘 아침에 쌀이 떨어졌다 하셨으니 쌀을 사러간다는 것도 그중 하나. 그동안 없는 반찬과 물건을 마켓컬리와 비마트 배송으로 눈앞에서 시켜왔는데 굳이 쌀을 사러 홈플러스까지 나간다고? ㅋㅋ

마침 남편이 내일부터 다시 출근이다. 출근포비아환자와 바람쐼병환자가 함께 행주산성에 가 커피 한잔 하고 오기로 했다. 차에 타니 남편이 네이게이션에 못보던 상호를 찍었다. 처음 가보는 전망 좋은 카페로 그새 검색해놓은 정성이 고마웠다.



집에서 차를 출발하는데 친한 언니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하늘 넘 이쁘지 진짜”
나도 화답했다.
“언니 날씨 넘 좋아서 애맡기고 놀러나왔어여 ㅋㅋㅋㅋ”

‘애 맡기고’란 말 처음 써봤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다니 내가 더 놀랐다. 이 말은 앞으로 얼마나 많이 쓰게 될 숙어인가.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이 되겠지.


카페는 공기도 시원하고 전망도 시원했다. 쾌적한 실내에 둘러앉은 손님들을 두고 우리는 북한산과 한강이 한번에 내려다 보인다는 루프탑에 올라갔다. 햇볕이 강렬히 내리쬐는 오후 두시라 아무도 없었다.

이문세 노래가 흘러나오고 동남아라도 온듯한 분위기의 색색의 차양막이 촌스럽게 휘날렸다. 아메리카노 디카페인 한잔을 시원하게 원샷하고 앉아있으니 한가로움이 몰려온다. 음.. 그럼 우린 언제 이런 한가로움을 셋이 느껴보나? 가서 어서 키워야겠네.

집에 애 놔두고 오면 이런 기분이 드는 거였구나??


돌아오는 길에 다른 친한 언니에게 안부 전화가 왔다.

“전화 바로 받네 애 깬거 아니야? 전화해도 괜찮아? “
“어 언니 자유로야. 날씨 좋아서 놀러나왔어”
“어! 그래? 잘했다~ 가끔 일탈도 해야지. 집에는 남편이 애 보고?”
“아니 같이 나왔는데? ㅋㅋㅋㅋㅋㅋ”

육아는 장기전이라고 했다. 행복한 엄마가 되어야지. 바람쐬고 행복해진 엄마의 첫번째 일탈은 이렇게 목격자 두명을 남기고 2시간 반만에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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