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6시반에 눈이 떠져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컴컴하던 하늘이 금세 동이 텄다. 창문밖은 구름이 한가득. 강수 예정이었는데 그나마 비가 안와 다행인가. 잔뜩 구름낀 하늘에도 감사하게되다니 영국이 뭐라고 -
조식을 시켜먹기로 했다. 보통은 조식포함으로 호텔방을 예약하는 편인데 런던에서는 숙소를 이곳만 예약한 터라 4일간 같은 조식 먹기도 지겹고 가격도 상당해서 이번에는 조식불포함으로 방을 예약했다. 그러다보니 생긴 룸서비스 옵션! 이곳은 심지어 24시간 룸서비스 가능한 메뉴도 몇 있다.
룸서비스는 참으로 편리한 듯. 준비 시간도 줄이고, 먹기 직전 상태로 세팅해주는 거 완전 편함. 식당의 조식메뉴가 궁금하다기보다 이제 귀찮은걸 보면 나도 나이가 들었나 싶기도 하다. 30파운드나 되는 로열잉글리시 브랙퍼스트 세트를 시켰더니 주스와 커피 갖가지 빵과 그리고 잼들의 향연의 색깔이 탐스럽다.
커피의 짙은 갈색, 딸기와 오렌지잼의 선명한 색, 사과주스와 오믈렛의 옅은 노란색, 빵의 부드러운 갈색, 베이컨과 토마토의 붉은 색. 한데 모아놓고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흐뭇한건 이 여러가지 아름다운 색깔 때문인 듯 (색감 덕후)
* 어제 탔던 피카디리라인비해 쾌적한 서클라인. 우리로 치면 2호선에 해당하는 순환선. 그나저나 사람이 너무 없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가. 런더너들은 지하철은 잘 안타고 다니나. 어제 그 좁고 시끄러운 지하철을 생각하면 그걸타고 출퇴근하는건 런던사람들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처음으로 택한 목적지는 BARBICAN역. 근처에 같은 이름의 숙소가 있어 찾은 곳이다.
바비칸 센터는 런던 도시개발 프로젝트로 1960-70년대 지어진 곳인데 높고 낮은 아파트를 포함하여, 음악회장, 공연장, 영화관, 도서관, 학교 등이 들어서 있는 예술 복합 문화예술 단지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규모도 거대하고 , 안에 심지어 저렇게 큰 연못이 조성되어 있을 정도. 그러나 전반적으로 콘크리트가 노출된 인테리어에 몇십년이 지난 건물이라서 ( +날씨 )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어 좀 휑함.
런던 도시를 설명했던 여러 책 중에 가장 멋진 곳으로 바비칸 센터를 꼽은 곳이 많았는데 좀더 반짝반짝한 날에 왔으면 생동감과 활력을 더 느낄 수 있었을 걸 아쉽네.
* 이 도시는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쓸쓸한 느낌이 든다.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것도 같고, 집들이 차분한 색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것도 같다. 집의 벽돌색은 황토색과 노란색의 중간쯤 색깔이거나 혹은 붉은색을 사용했다. 크지 않은 벽돌사이즈. 간간히 보이는 간판도 화려하지 않고 한톤 낮은 죽은 색깔, 차분한 색깔. 이들이 말하는 신사의 품격이 이런 색깔인 것일까. 한편으로는 재미가 없는 기분. 단정하지만 창조적인 이벤트는 없을 기분.
* 이곳 영국 건축물의 느낌은 전통적인 건축물을 보존만 하는 유럽의 트렌드에서 벗어나 현대와 전통을 결합하는 시도를 여러방면에 다양하게 하고 있는 기분이다. 특히 현대 건축의 주 재료인 유리를 활용한 리모델링이 인상적이고, 과감한 개보수도 눈에 띈다. 건축의 외면은 매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이음매 같은건 눈에 띄지조차 않는데 문이 어딘지, 층이 어딘지 간단한 설명조차 아주 최소화하여 불친절하다고 느낄정도. (바비칸 센터도 입구 찾는데 엄청 오래걸렸다) 주거단지를 제외하고 시내에 있는 빌딩들은 거의 다 이런 아주 심플한 느낌이다.리모델링을 엄격히 금하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영국의 이런 변절(?)을 비난한다지만, 그래도 난 적절한 방향성을 찾아가는 지조있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건물들도 인상적이기도 하고, 재미는 좀 없지만 -
세인트 폴성당과 테이트 모던 미술관 사이에는 2000년을 맞아 건립된 '밀레니엄 브릿지'가 있다. 두 관광지의 동선을 고려하여 만들었다고 하는데 중세의 성당과 현대의 미술관을 이어주니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밀레니엄의 의미도 함께 담은 듯. 보행자 전용이라서 조용히 걷기에 좋았다. 다리조차도 화려하지 않고 차분한 느낌. 어쩌면 전반적으로 우중충한 날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밀레니엄 다리 위에서 아코디언을 든 아저씨가 타이타닉 주제가를 연주하고 있다. 너무 부드러운 소리가 신기하여 발걸음을 멈추고 동영상을 찍었다. 이십년동안 너무 많이 들어 이미 한껏 지루해져버린 이 음악이 이렇게 귀에 감기게 달리들리긴 처음. 난 부드러움과는 조금 거리가 먼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부드러움에 대한 갈증이 시작된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음악에 부드러움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팔할은 아름다운 선율 덕이겠지.
천천히 걷는 길거리가 호들갑스럽지도, 들뜨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딱 내 기분 같았다. 이토록 유명한 도시가 이렇게 차분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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