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
장맛비가 한달째 주룩주룩 내리던 주말, 평창을 찾았다. 평창을 찾을 때마다 나는 선자령을 떠올린다. 대관령 푸른 풀밭에 점점히 박혀있는 양떼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하얀색 풍차들.가슴이 답답할때 많이들 찾는 바다보다 오히려 가슴이 탁 트이고 평화로워 보이는 것은 초록 들판이라고 난 가끔 생각했다. 특히 평야지대도 아닌 높은 산위에 펼쳐진, 선산한 바람이 부는 푸른 들판.
원주근처 터널을 통과할때쯤 꾸물꾸물하던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 나타났다는 묘사처럼 산하나를 넘는 것이 얼마나 인위적 기후변화를 느끼게 하는지 짐작되는 대목이었다. 횡성을 지날때쯤엔 거의 폭포수 아래를 지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와이퍼가 더 빠를 수 없는 속도로 움직였지만 그 1-2초 사이 앞유리창에 번지는 물결로 앞이 부얘져서 앞뒤 분간을 할수가 없었다. 겁이 났다. 속도는 100km를 가뿐히 넘는 고속도로인데다 영동고속도로는 2차선이 끝없이 구불구불 이어져있었다. 이거 이렇게 안보이는데 고속주행이 가능한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옥의 운전 구간은 아주 길진 않았다. 정말 세차게 때려붓는 비는 조금 기다리면 멈추곤 했던 경험은 그럭저럭 들어맞았다. 어느덧 평창역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우리는 오빠네 부부를 태우러 이곳에 왔다. 이번 여행의 동반자분들. 어제 오후 기차를 타고 불쑥 강릉으로 향했던 그들은 다시 또 영동선 기차를 타고 평창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누굴 맞이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매트릭스 구조로 짜여진 철망 건너편 플랫폼으로 ktx산천행 하나가 서서히 진입하는 것이 보였다. 왜인지 내가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역사 현관 앞에서 기다리자니, 긴 에스컬레이터 위로 두 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 숙소
오빠네와 1박으로 놀러간 적은 몇번 있었어도 2박 본격은 처음이었다. 방을 잡을 때부터 2룸 이상으로 두 가족이 편안히 머물 수 있는 곳을 세심하게 찾았다. 그래서 걸려든 더 화이트호텔. 입구 왼편과 오른편에 똑같은 모양의 침실이(화장실 포함) 쌍둥이처럼 마주보고 있는 특이한 구조의 숙소였다.
떠나기전부터 비 예보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별다른 계획을 하고 오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라고 하면 그저 '쉼'이다.그렇지만 그저 계속 쉼 하기도 쉽지 않은 법이라 이번엔 재미난 걸 생각해봤다. 그건 인당 하나씩 게임을 준비하기로 하는 것. 누구는 초성퀴즈를, 누구는 음퀴를, 나는 인물퀴즈를 준비했다. 전세계 셀럽을 찾아서 인물을 뽑아내는 준비 과정이 신선했다. 저녁밤이 기대가 된다.
심심한 낮부터 길고긴 밤까지 심심찮게 놀았다. 보드게임부터 음퀴, 인물퀴즈, 초성퀴즈 스피드퀴즈까지! 이렇게 휴가를 보낼 수도 있구나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둘만 와서는 쉽지 않을 일이다. 여행이 다채로워진 기분. 술말고 좀더 건전한 즐길거리가 더욱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 먹거리
대관령 한우마을 - 평창올림픽도 식후경이라고 대관령 한우마을을 찾아서 첫 저녁을 먹었다. 크나큰 식당 마당 한구석에 설치된 무대에서 비가오는데도 어떤 초대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앞 마당에 덩실거리며 나와서 춤추는 몇몇 어르신들. 분위기는 벌써 무르익었다. 오빠가 그 가수를 보고, 혼자 남아서 부르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비참하고 쓸쓸한 일일 거라는 걸 생각해보면 아는데, 먼저 짐작해주진 못했다.
문제의 한우는 분명 꽤나 몇 점씩이나 있었는데, 첫 점 입에 넣은 이후로는 행방이 기억나지 않는다. 죄다 사라졌다.어디로??
다음날 해장국 대신 찾은 봉평순씨의 미가연 막국수. ‘메밀분야 월드마스터, 봉평을 세계에 빛냈다’고 쓰인 현수막이 봉평시내 여기저기 붙어있었기 때문에 호기심과 믿음이 절로 생겨났다. 먹어본 평은 한마디로 막국수 같지 않은 막국수랄까? 면의 찰기와 냉기가 독특하고 또 매우 건강한 느낌의 맛. 쓴 메밀이 익숙치 않을 수 있긴 하나, 독보적인 맛은 인정한다.
그리고 대망의 봉평 월이 닭강정. 우리는 이 집에 가기 위해 봉평에 들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년전 봉평을 지나가는길에 우연히 찾은 이 맛집에 다시 오기 위해 남편님이 외쳐댄 구호가 몇번인지. 우리는 2박 중 2번 모두 이 집의 닭강정을 포장하여 저녁식사에 함께하였다.
송어의 발견, 흥정송어횟집
송어를 흥정하는 곳이 아니다. 흥정산에 흐르는 흥정계곡에서 싱싱한 송어를 잡아 요리하여 전문으로 파는 곳. 붉은 생선계 연어가 권위를 위협받을만큼 쫀득하고 감칠맛 나는 회를 맛보았다. 테이크아웃 3만5천원의 가격이 감동적이었다.
# 이천
이름도 촌스럽지 이천 예스파크. 서울 오는 길에 갈데를 찾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생각보다 부지가 넓직하고 한가롭고 평화로워 놀랐다. 마치 파주의 출판단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와 같은 그런 힐링포인트.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아무것도 사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릇에 매력을 느끼다니. 나이들었나 .
#
계속 비가 오기도 했고, 즉흥적으로 움직이는데다 숙소에서 별것 없이 게임만 했지만 어느때보다 재미는 있었던 시간. 부부동반을 가족끼리 한다고 했을때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짓는 횟수를 세어보니 , 우리의 이 모임이 흔하지 않은 귀한 사례인 것은 잘 알겠다. 덕분에 이 관계에 더욱 공들이게 되고 잘 발전시켜나가고 싶은 욕심이 드네.
평창 여행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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