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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17년 가을의 책

서재를 공유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1.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이 책 , 제목을 많이 들어봤는데 , 들을 때마다 참 귀여운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단어만 봐도, 작가의 정신(?)이 느껴지지 않나, 낮보다 밤, '걷는다'는 활동적인 움직임, 귀여운 아가씨, 현재를 소중히 -

게다가 저 제목은 귀엽게 반쯤 명령하는 듯한 어조가 더욱 더 좋았다. 이 문장은 실제 주인공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데, 그 장면에서 약간 탄성이 나올 정도. ㅎㅎ

내용은 다분히 일본 판타지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센과 치히로의 모험을 소설로 옮겨놓은 기분.

작가가 주로 교토를 배경으로 소설을 쓴다는데, 교토에 놀러와서 서점에서 일본 만화를 들춰보고 있는 그런 기분.

 

그리고

제목과 책 표지 디자인을 뛰어넘는, 귀여운 문장이 있을 수 있다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잔술을 마시고 뱃속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뱃속이 꽃밭이 되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 라고 얘기하는 책을 보고

오그라드는게 아니라, 흐뭇하게 미소짓고 있는 내 자신이 더욱 놀라웠다.

 

 

 2.

방황하는 칼날
국내도서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Keigo Higashino) / 이선희역
출판 : 바움 200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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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오랜만에 본 추리소설. 이 책 역시, 제목이 너무 익숙하고 매력적이라서 골랐는데, 나중에 보니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3년전에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개봉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나온 책은 책 날개에도 정재영의 얼굴이 버젓이 있네 ㅋㅋㅋ

이럴때 보면 책과 영화는 고객(?)을 유입하는 단계에서 서로 윈윈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쪽을 보게되면(특히 영화먼저) 나머지가 버려지게 되는 단점도 분명한듯 하다. 그래도 어쨌거나 책과 영화 둘다 있는 작품은, 작품성과 흥행을 인정받았다는 가장 쉬운 반증이므로, 독자(혹은 시청자)에게 플러스가 더 크긴 한듯 -

이 책은 성폭행과 살인사건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사건을 일으킨 고등학생들을 단죄하기 위해 직접 복수하는 이야기다. 사건이 벌어지고 아버지가 초반에 범인 중 한명을 우연찮게 만나 잔인하게 복수한 후, 사냥총을 들고 나머지 한명을 쫓고, 경찰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아버지를 또 쫓고, 도망다니고, 숨겨주고 하는 전개가 시간에 따라 단거리달리기처럼 쭉쭉 이어진다.

히가시노게이고의 전개는 여전히 흡입력이 있으나 , 이 책은 방대한 양에 비해 단층적인 구조로 줄거리가 약간 예상되어 밋밋한 것이 단점인데, 그러나 이 소설에서 작가는 아마도 복잡한 구성보다는, 주로 아버지의 심정과 그를 둘러싼 주변사람들의 변화하는 감정을(가해자에 대한 복수가 선인지 악인지 고민하는) 묘사하는데 공을 들이는데 목적이 있는 듯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여고생의 유치원생 살해사건 과 비슷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날로 심해져가는 미성년자의 범죄에 비해 개화를 목적으로 여전히 약한 처벌(소년법)을 유지하는 법제도에 대해서 사회적 경종을 울리는것, 법이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해줄수 있는 것,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것,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심정을 대변하는것, 언론의 폭로와 유가족들의 분노 같은 것들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

몇년전에 보았던, 한 독일의 변호사가 쓴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수 있을까" 라는 책이 연달아 생각이 났다. 잔인한 복수의 살인사건들 속 가해자의 사정(내막)을 들추었던 충격적인 실화들.  나 역시 아무일도 없는 3자의 입장이라 이렇게 한발 물러나 있지, 만약 내 가족의 이야기라면 이렇게 고민할 시간조차 사치였겠지. 한번쯤 고민해봄직하다.

 

 

기린의 날개
국내도서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Keigo Higashino) / 김난주역
출판 : 도서출판재인 20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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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린의날개

일단 기린이 그 목 긴 기린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반전인가. ㅋㅋㅋ 기린이치방의 기린이란다. 맥주 캔에 나오는 그 기린. 중국 전설에 나오는 용과 비슷한 동물이다. 난 여태껏 기린이 맥주회사 이름인줄만 .. (정작 기린이 제목에까지 등장한 것에 비해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게 스포라면 스포)

방황하는 칼날보다 더 재미있었다. 처음부터 단선적으로 짜여진 구조가 아니라서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웠고, 그 결말이란게 막판에 너무 갑자기 스르륵 털려나온 것이 좀 허무하긴 한데,,  여하간 ㅎㅎ  (생뚱맞은 동기와, 아버지의 다잉메세지가 특히)

그래도 판타지스러운 제목 때문에 걱정했는데 내용은 충분히 추리소설다웠다.

일본 특유의 신사문화가 많이 나와서 좀 몰입을 방해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형사의 입장에서 실마리를 하나씩 발견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그런 맛이 좀더 있던 느낌. 하지만 여전히 트릭을 풀기위해 읽는 추리소설은 아닌, 히가시노 게이고.

독자들에게 정보제공이 불충분하니까 . ㅎㅎ

 

나중에 알았는데 가가형사 시리즈로 유명한 작품이고 벌써 9번째나 되며, 심지어 올해 초에 나온 신간이네 이 책. 나이스~

 

 

4. THE GIRL ON THE TRAIN 걸 온 더 트레인

걸이 맞나 , 이혼여성이 주인공이니 Woman on the train 정도가 내용에는 더 맞을듯한데, 걸온더크레인이 더 호기심이 나고 입에 촵 붙는 건 인정 ㅋ

 

일단 이책 , 본격 알콜중독 방지 서적 같다. 주인공 레이첼이 너무 취해서 무슨 소린지 횡설수설하면서 충동적으로 움직이고 이남자 저남자 껄떡대는게 책의 2/3정도를 차지하는데, 취한 사람의 정신없는 심리묘사가 훌륭하다면 매우 훌륭.  책을 보면서 내가 다 술먹기 거북해질 정도라니 대단하다.

중간에 카말이라고 정신과 상담 의사가 등장하고, 그가 여기 등장하는 여자 인물들의 넋두리를 참을성있게 들어주는 장면이 여러번 나왔다. 나는 그걸 보면서 마치 그 제멋대로 횡설수설하는 환자의 상담을 해주는 의사처럼 같이 머리가 아프고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진 빠지기로는 책의 구조도 한몫했는데, 레이첼, 매건, 애나 이 3명의 여자 주인공이 각기 겪은 일을 각자 시점에서 날짜를 섞어서 뒤죽박죽 배치해 놓는 바람에 여간 줄거리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나처럼 짬날때 틈틈히 띄엄띄엄 읽고 있다면 더욱)

특히 일부러 자기이야기 중에서 중요한 사건을 빠트리고는 며칠 뒤 다른사람의 이야기에서 미리 알고 있는 당연한 과거처럼 언급하는 짖궂은 방식은 내 에너지를 너무 소비하여 책장 넘길 동력을 자꾸만 잃게 하였다. 400쪽이 넘는 소설이라면, 쭉쭉 진도가 나가야 탄력이 붙는데!
끝까지 그냥 주인공들처럼 1차원적 시선으로 접근하게 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 아무튼 불친절한 추리소설이다.

 

그래도 참을성있게 읽다보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긴박한 전개가 막판에는 그래도 이 소설이 할맛은 하는구나 싶은 순간이 온다. 특별히 장황한 배경묘사 없이 인물과 사건이야기만 하는데도 450페이지를 꽉채운 필력도 대단하고. 책장을 딱 덮을때는 막 여운이 많이 남는다기보다 그냥 무서운 영화 한편을 집중해서 보고 나온 기분이 든다.  

그리고 막판의 결과가 좀 짜릿하긴 함. 어찌보면 뻔한데도 생각도 못했다. 막판까지 예상치 못하게 한데는 내가 내내 힘들어하던 바로 그 서사구조가 한몫했다는 거 인정한다. 마치 메멘토처럼 말이지.

그치만 너무 길었어 ㅋ '재밌다'보다 '드디어 다봤다'는 기쁨이 더 큰걸보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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