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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삶의 한가운데 - 루이제 린저

# 줄거리랄 것이 특별한 것도 없이,

신중하고 차분한 성격의 한 남자의사가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한 젊은 여성을 만나, 그 여성을 20여년동안이나 짝사랑하며 그의 마음을 적은 일기의 내용, 그리고 둘과 그간 그들을 둘러싸고 일어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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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1984를 봤을 떄가 약간 이런 기분이었는데

뭔가 이 책을 내가 이번 한번에 소화하기에는 버겁다 이런느낌?

단순히 줄거리를 알게 되고 이런걸 떠나서 문장 하나하나가 지금 보기에 또 몇년뒤에 또 몇십년 뒤에 보기에 다 다르게 의미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책을 사서 곁에 두고 몇년뒤에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한번 본 책을 웬만해서는 다시 안 보는 내가 이런 기분이 들었다는 거 자체가 놀라웠다. 그것도 그냥 내용 자체는 로맨스 소설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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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라는 책을 빌려본적이 있다.

사실 결단을 잘 내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다 쥐고 놓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 대해서, 뭐라도 좀 이해해볼 실마리가 있을까 해서 빌린 책이었는데, 제목만큼의 위안을 주지는 못했던 그런 기억만이 남아 있다.

그런데, 그런 책을 볼 것도 없이. 이 책이 오히려, 그런 나에게, 혹은 그런 부류의 사람에게 끝판왕으로 위안을 주는 기분이 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슈타인을 보면, 그가 니나에게 품은 마음과 그 마음의 변화를 얼만큼 구구절절하게 (길면서도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디테일하게) 묘사하는지를 보면, 정말이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이 되면서도 그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느라 지쳐 너덜너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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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인은 니나를 보면서 젊음과 자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니나는 죽음과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둘 다를 자주 생각하는데, 니나처럼 단호한 가치 추구를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슈타인처럼 고민만 많은게 정말 딱 나의 머리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문장을 꺼내서 옮겨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삶을 제대로 산다는 것.

어떻게 사는 것이 자유로운 것인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인가 를 두 상반된 주인공의 성격을 통해 잘 드러낸다. 이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정말 깊었다.

출간당시 전세계적 '니나 신드롬'을 불러왔다는데, 이 독일 작가의 통찰력이 정말 너무 훌륭한 책이다.



나는 자주 이른 새벽에 깨어납니다. 모든 것이 아직 빈 상태이고, 회색으로 싸여있을 떄 말입니다. 그때마다 나는 삶에 대한 공포, 살아야만 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낍니다. 인간은 이런 공포에 단독으로 내맡겨져 있죠. 최악의 경우가 지나가면 나는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여러가지 대답이 나옵니다. 내가 인생에서 아무것도, 어떤 의미있는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내 인생은 그냥 사라지고 있으며 나는 살지 않았다는 불안감들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그 의미를 결코 알게되지 못할 거에요. 그것을 묻지 않는 자만이 해답을 알아요.

죽은 뒤에 생전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오 .내가 지은 죄란 결단을 회피했다는 것이오. 나는 그것이 비겁했기 때문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오. 그러나 그렇지 않소. 아마 유약했기 때문일 것이오. 그러나 의식이 끊임없이 주의하도록 경고하고, 모든 경우의 장단점을 일일히 다 고려해 보라고 명령한다면 어느 누가 결단을 내릴 수 있겠소. 더구나 이 때문에 정직한 추진력을 뺏기고,아는 것이 주는 우울함에 내맡겨진다면 말이오. 죽는 순간에도 나는 이 문제의 정답을 알지 못하오.

나는 결혼하고 나서 최초의 몇년을 빼고는 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물론 나는 이것이 행복일까, 하고 자문했다. 그러나 나는 불행하지 않았고, 삶에 대해 지나친 요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고 나 자신과 타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이후 당신은 내 삶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당신은 내 본질 중 굳어있는 부분을 용해시켰습니다. 나는 마치 숨쉬는 공기처럼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을 찾으려 나는 거리를 헤맵니다. 당신을 만나야겠습니다. 단 한줄이라도 좋으니 소식을 주십시오 나의 삶은 당신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우울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 온갖 아름다움이란 것이 일시적이고 다만 얼마동안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인간들 틈이나 나무와 극장과 신문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차가운 달 표면에 앉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누구나 다 우울하지. 우울은 인식의 시초일 뿐이야.


얼마후 잠에서 깨었을 때 거울속에 늙은 잿빛의 얼굴이 있었다. 이 모습은 나에게 커다란 만족감을 주었다. 그러나 이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곧 내가 계속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알았다. 내 인생에는 전혀 방해물이 없었다. 상처도 없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은 잘 되어왔다. 분명히. 그러나 또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아무것도. 나는 자기 배를 항구에 매어둔 상인과 같다. 배를 내보내야 돈을 벌어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를 바다에 내보내는 것은 위험했으며, 나는 본래 모험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었다.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남자가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노인들과 교제하다 보면 모든 인간에게 염증을 느끼게 되요. 팔십세가 돼서까지 악의를 품고있고, 고집불통이며, 시기하고, 이기적이며, 끝없이 탐욕스럽다면 인생이란 뭐죠? 나는 나이가 들면 좋아지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늙는 것에 두려워해본적이 없어요. 그러나 내가 그렇게 된다면? 그러면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가요?


낮이나 밤의 어느순간 나는 공포가 인간에게 적합한 상황이라고 느낀다. 이것은 특별히 새롭지는 않으나 나에게 직접 닥치고 보니 나의 삶과 인간 존재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부여하는 매우 중요한 인식이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어요. 봐라. 너는 중요한 인식의 순간에, 적나라한 진실 앞에서, 도망치고 있다. 다시 들어가라 노인을 보고 너 자신을 보라. 비록 두렵기는 하겠지만 전혀 해는 안되는 법. 이것도 삶의 일부일 뿐,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한다. 추악한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바로 그순간. 할머니가 막 운명하시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이룬 것을 손안에 쥐고 조금이라도 기뻐하려고 하면 그순간 그것은 분해되어서 사라지고 마는 거야. 모든 아름다운 것이 사라진다는 것,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는 것, 그리고 이런것에 대한 슬픔. 완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 철저하게 순수한 절망도 없으며 값싼 혼합물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 인간은 행복할 수 없으며, 행복을 단념해도 평안에 이르지 못한다는 생각. 완전한 삶을 느낄때도 이런 생각은 어김없이 떠올라 나에게 속삭이는 거야.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너의 법이라는 것을. 울어도 소용없고 저항해도 소용없어. 나는 끌려가는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전에는 이런 수상한 시대에는 자식이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전혀 없는 것보다는 그것을 잃고 슬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니나가 자유를 얻어내려고 했을 때, 니나를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갑자기 나타났다. 유혹적이고도 두려운 가능성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분명한 결단을 요구했다. 그전에도 그랬고 후에도 그랬듯이 나는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토록 자유를 사랑하는 여자를 속박하는 것을 저어하는 분명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쯤만 사실일 뿐이다. 속박을 두려워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리움과 두려움이 여러해 동안 격렬한 투쟁을 계속해 불치병이 걸리고서야, 죽음이 임박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야, 이 부끄럽고 괴로운 갈등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니나를 얻기 위한 투쟁은 한 특별한 여성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특수한 방향으로 나 자신의 본질을 인식하고 발전시키려는 투쟁 뿐이었다. 니나는 나 자신에게서 부인하려고 한 이런저런 부분과 가능성의 회신이 아니었을까. 마음이 아프다.

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해요. 그러나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은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삶을 비켜갔어요. 한번도 모험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도 못했고 잃지도 않았어요. 당신은 행복한가요? 그렇지 않아요. 행복이 무엇인지 당신은 전혀 몰라요. 그러나 나는 행복해요. 나는 당신이 나의 인생을 당신의 인생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요. 얼마든지 나를 부박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마 삶의 대한 당신의 불안이 삶을 사랑하는 내 방식보다 더 부박할지 몰라요.


당신의 힘을 낭비하지 말라는 거요. 진정한 재능은 집중을 필요로 해요.


그리고 당신은요?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죠? 당신은 걱정이 없어요. 애들도 없어요. 당신의 인생은 아주 조용히 흘러가요. 당신은 상당히 안정된 지위에 있으며 쉽게 고상해질 수도 신중해질 수도 있어요. 나 같은 불안정하고 의심쩍은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낄수 있지요. 어쨌거나 내가 제멋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렸어요. 저는 남들을 따라서 사는게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있어요. 내 말을 이해해주길 바래요. 당신도 살기위해 한번쯤은 그 고상한 조심성을 방기해도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거에요.


삶의 한가운데
국내도서
저자 :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 박찬일역
출판 : 민음사 199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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