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묵칼레에 도착한 건 새벽동이 터올 때쯤이었다.
버스를 타고 마을 입구 앞에 내려진 손님들은 잠깐 모여있다가 각 호텔로 흩어졌다.
우리호텔로 들어가는 돌무쉬(마을버스)가 다닐때까지는 1시간쯤 기다려야 했는데
콜택시를 불러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왕복 비용도 만만치 않고 동네도 좀 둘러볼겸
아빠와 함께 근처 길 산책에 나섰다.
서서히 동이 터오는 작은 시골길은 무척 조용했고, 조금 서늘한 공기는 아직 덜깬 몸을 기분좋게 풀어주었다.
길을 걷다가 내가 문득 물었다.
"아빠, 여기도 낮에 많이 더울까? "
"저기 나무 좀 봐봐. 카파도키아에 있던 것보다 키도 훨씬 크고 잎이 넓지? 그건 식물이 잘 자란단 얘기니까
아마 거기보단 훨씬 더울 거야 ."
학창시절 넉넉찮은 형편 때문에 약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생물학을 공부했을 거라던 아빠.
어렸을 적부터 아빠에게 풀. 나무 종류를 물으면 모르는 게 없는게 늘 신기했었다.
그런 아빠에게 새로운 나라의 관심사는 "식생"이었다.
그동안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난 나무를 유심히 본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그리고 그게 여행지에서 새롭게 볼만한 관심사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카파와 파묵은 확실히 달랐다. 양귀비가 새빨갛고 무화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아빠가 아니었더라면 전혀 알지도 못했을 '여행을 즐기는 법'을 하나 더 배웠다.
마을을 지나 언덕을 따라 올라가니 새하얀 눈이 뒤덮인 듯한 산이 나타났다.
그 산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오, 바로 여기야. 이거 물건이로구만!"
아침햇살을 등지며 나타난 눈산은 석회로 뒤덮힌 석회산이었다.
하얀 석회는 녹기는 커녕 햇살을 반사해내며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산 앞에 펼쳐진 호수는 정말이지 상상속의 그림같았다.
석회암 바닥을 가진 호수는 에메랄드 투명한 물빛을 그대로 비춰내 신비로웠고
오리가 떠다니고 개가 뛰어노는 조용한 아침의 호숫가는
정말이지 말로 이을수 없을만큼 너무너무 좋았다.
▼ 호수 위 이 오리 사진은,
터키 여행중에서도 베스트샷으로 꼽을 만할 정도로 비현실적 고퀄을 자랑.
이정도면 뭐 내셔널 지오그래피전에 걸어도 괜춘하지 않겠음?
호수 면을 따라 한 20여분간 산책을 하는 동안 사진도 찍고 조용히 즐겼는데
이 짧은 20분이 터키여행의 어느 순간보다도 최고였다고 단언할 수 있을듯!
뭍으로 나온 오리들
카파도키아의 삼일, 그리고 파묵칼레의 여유로운 산책과 일정.
분과 초를 쪼개 깨알같이 채우는 해외여행을 해왔던 내게 조금은 생소할수도 있는 일정이었지만
부모님의 호흡에는 이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나의 호흡에만 맞춰왔던 지난 사년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
파트너가 뭘 원하는지 자세히 고려해보지 않았던 것.
그걸 조금은 생각해볼 수 있었던 터키여행.
* 빵우체통
'터키'하면 빵이 같이 기억 정도로,
맛있는 빵이 많았던 터키.
요 사진은 그냥 평범한 슈퍼 앞에서 팔고 있던
아침에 갓 구운 빵들.
지름 30cm정도 되는 거대사이즈이나
가격은 몇백원정도.
(신기해서 들어가는 길에 하나 사가지고 갔는데 결국 다 못 먹었다 ㅜㅜ)
파묵칼레에서 팔던 갖가지 색돌.
조금 조잡하기도 , 어쩌면 잘 뒤지면
귀한걸 건질 것 같기도 했지만
너무 피곤했으므로 구경만 슬쩍.
*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호텔은, 카파도키아의 동굴호텔과는 차원이 다른 5성급 호텔이었다.
체크인을 준비하시는 동안 로비에서 기다리며 구경했는데 밖에 이렇게 멋진 수영장이!
플로리다와 스페인 이후로 수영장 딸린호텔 첨이라 완전 씐나게 업업 되어 있는데
문제는 수영복을 안 갖고 왔다는 사실! ;ㅁ;
아침부터 수영복을 산다느니, 수영장 개장시간과 스파 개장시간을 알아본다느니 한참을 설레서 돌아댕겼는데
허무하게도 그날 파묵칼레를 돌아보고 오후에 돌아온 우리가족 모두는
피곤에 지쳐 다음날 아침까지 곱게 잠을 자고 말았다.
스파를 못한게 가장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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