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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Turkey

셀축행 버스타임


#1 여행중 만나는 사람들

외국의 명소들을 두루 구경하다보면, 코스가 비슷한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엊저녁 새벽에 파묵칼레에 막 도착해서 호텔 앞에 잠깐 모였을 때도 한국인들이 너댓 있었다. 한 여자 아이가 새벽부터 눈을 비비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호텔직원에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쏘아붙이는 게 참 보기 민망했더랬다. 그 친구 한 스물 초중반 쯤 되었을까. 뭔지 모르는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서늘한 새벽부터 맨다리를 드러내며 하의실종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을 때부터. 옆에 사람들에게 못알아 듣는다며 한국말로, 이런 호텔의 호객행위는 비싼 사기라며 자기가 다 비교해봤는데 한푼도 손해볼 수 없다고 떵떵거리며 캐리어를 끌고 턱을 꼿꼿이 든채 사라져버렸을 때.

 

한푼도 손해볼 수 없다라. 물론 야무지게 굴어서 엄한 바가지 쓰지 않는 것도 중요할 거다. 하지만, 나와 전혀 관련없던 나라에 호의적인 마음을 품고 방문하여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그 나라의 귀한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꼭 손해보지 않는다는 마음가짐만이 정답일까. 내가 쓰는 여행비용이 이 나라 사람들에게 고루 돌아가는 건 아니어도, 이 나라의 문화를 공유해준 데 대한 적당한 감사의 값을 지불할 필요도 있으니까. 교포사회에서 얌체같이 자기것만 챙긴다고 손가락질 받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약간은 겹쳐 보이기도 하고.

괜시리 쌉쏘롬했다.

 

▲ 왼쪽부터 은미양, 은정언니, 나, 그리고 내 버스옆짝꿍 호주배낭여행객


그리고

파묵칼레에서 셀축으로 이동하는 날 버스터미널에서 한국사람들을 또 만났다. 여자 둘.

보름일정으로 터키를 여행한다고 했다. 넉살좋은 첫인상에 수더분한 분위기가 있었다. 특히 수건을 목에 걸고 추리닝을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나타난 은미양. 수다스러우면서도 순수한 말투에서 터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나머지 일행인 은정언니는 조용조용 이야기했지만, 또한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터키 사람들은 눈빛이 좋았다면서. '눈빛'이라는 그 단어에서 오는 느낌. 굳이 그 단어를 골라 쓰며, 그 부분을 캐치해 낸 감성.


 

▲파묵칼레발 - 셀축행 버스


 

#2 차안에서

셀축으로 가는 차는 어느새 출발하여 지금은 데니즐리 오토가르에서 추가로 다른 손님들을 태우고 있다.

여태까지는 외국의 냄새를 못 느끼고 있었는데 버스에 사람이 꽉 들어차니 슬슬 외국인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은미와 은정언니가 앞 두자리에 앉았고, 그 뒤에 우리 부모님이 그리고 내가 그 뒤로 앉았다. 

나의 옆에 앉은 짝꿍은 전형적인 독립적인 자유로운 단독배낭외국여성여행자. 

호주출신의 수의사인데, 한달째 혼자 터키를 여행중이시란다.

 

우리 뒤에는 터키 할머니 둘.

그리고 왼쪽 너머 자리엔 잘생긴 외쿡 남자아빠와 잘생긴 외쿡 남자아이가 나란히 앉아 독서중.

그 앞에는 냄새 유발자 터키쉬맨. 모니터의 뮤직비디오를 정신없이 보고있다.

 


35인승 남짓한 셀축행 버스는 지난번 야간버스보다 분위기가 훨씬 좋다.

상큼한 오전시간이기도 하고, 푹 쉬고 나와 기분도 좋고, 같이 탄 이들도 가족같은 분위기이다.

소규모 도시여서 그런지 사람들 표정도 밝다.

 


▲ 핑크 깔맞춤 엄마

 

#3 엄마
엄마가 엉덩이를 들고 앞에앉은 두 한국인 친구들에게 사진을 구경시켜준다며 일어섰다 앉았다 법석을 떨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내 옆에 호주 아가씨가 Your mom is social 라며 웃었다.

나도 조금은 겸연쩍게 웃으면서  Too much social.. 이라 대답했다.

 

은미는 여행을 다녀온 한참 후에 만나서도  "너희 어머니 되게 유쾌하시다." 는 말을 몇번이나 했다.
그 말은 우리엄마가 그만큼 어른 특유의 위세나 권위가 없기 때문일 거다.

한국사람들이 낯선사람과 첫대면 자리에서 고작 한살 갖고도 얼만큼 어른대접을 원하는 지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편안하도록 맞춰주는 대화방식은 참 훌륭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 비즈팔찌!


 

엄마 손목에는 장난감처럼 반짝이는 파란색 비즈 팔찌가 달려있다.

 

윌귑의 기념품 가게에서 하나 골라오셨는데

싸고 예쁜거 샀다고 좋아하는 엄마를 보고 나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동조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 팔찌다.

 

화려한 걸 좋아하는 엄마는

이번 터키 여행을 위해 엄마 운동화 사시라고 드린 복지카드로 진한 핑크색 운동화를 사왔었다.

운동화를 봤을 땐 '헉' 했지만, "엄마가 행복한게 진짜 내 행복이야 ㅜ_ㅜ" 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  문제의 그 핫핑크 운동화!


 

데이투어중 다들 같이 움직이느라 바쁜데, 삼만원짜리 카페트가 예뻐서 굳이 사겠다고 안 올때.

마트에서 이상하게 생긴 토마토를 사진찍느라 불러도 아랑곳하지 않을 때. 

데린구유 지하 미로에서에서 개구쟁이처럼 굳이 다른 길로 들어설 때

엄마는 참 아이같았다.

 

아빠랑 나는 기본적으로 틀에서 많이 벗어나진 않도록 행동하는데

엄마는 자칭 언발라스하게 자유롭게 사는 영혼이다.

나는 언발란스가 부러우면서도 무서워서 하지 못하는 많은 부분들을

엄마는 그 나이가 드셔도 하고 계신 걸 보면 놀랍다.


▲ 심각한 아빠와 장난치려는 엄마.

 


#4 노래

버스가 출발한지 두시간째.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무슨 노랜가 했더니 엄마가 계속 부르던 찬양.

 

지난해부터 아빠와 엄마는 YWCA 부부합창단을 하고 있는데,

여행 다음달에 마침 합창단 공연이 있어서 그 악보까지 바리바리 싸와서 여행 중 내내 연습을 했다. 

합창곡 다섯곡이었는데, 엄마는 앨토, 아빠는 베이스인지라 메인 멜로디가 없어

내가 음역 딸리는 소프라노로 가끔 도와주곤 했다.

 

카파도키아에선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모녀를 기다리며 아빠가 옆에 앉아 찬양을 연습하고 있는 상황이 많이 벌어졌는데 그게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행복했다.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지키는 하나님 진흙같은 이몸을 정금같이 하시네~"

 

엄마는 노래는 듣기 가끔 괴로운데 아빠가 부르는 찬양은 굉장히 좋다.

아빠 목소리가 듣기 편안한 베이스 톤이고 음정이 안정되어 있어서

가끔 틀려도 그냥 그 한 음만 틀릴 뿐이지 엄마처럼 듣기에 점점 괴로워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음정도 자신이 있을 뿐 아니라, 가사를 외우는 것도 엄마보다 훨씬 뛰어나서

(우리 아빠는 지금 나이에도 공통수학 공식을 외우고 있다 -_-)

엄마가 가사를 막 섞어서 부르면 핀잔을 주면서 놀린다.

그 놀리는 상황이 재밌어서 그것 때문에도 한참을 웃었다.

 


어쨌든 이 다섯곡의 찬양과 함께 터키의 땅을 여행하고 나니, 세계 각 곳을 다니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며 창조주를 찬양하는 것만큼 고차원의 감상은 또 어디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낯선곳을 여행을 하면서 절로 노래가 나온다는 상황이란

분명 마음과 몸이 편안한 축복받은 상황일것이라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나와 부모님을 실은 버스는 이렇게 흘러흘러 셀축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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